카이스트에 입학하기 전 재능기부 형식으로 진행했던 후배와의 상담은 학기 중에도 이어졌습니다. 새로운 상담 요청은 없었지만, 이전에 상담했던 후배들이 종종 아들을 찾았습니다. 그중에는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는 후배가 있었습니다. 결국 아들은 대학생이 된 첫 여름방학에 그 후배를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카이스트생으로서의 첫 아르바이트, 첫 과외, 그리고 첫 사교육으로의 입성이었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들의 자기주도학습법이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인지가 궁금했습니다. 처음 저희가 우려했던 ‘사교육 딜레마’가 해소된 건 아니었지만, 엄마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정체성 때문에 아들의 아르바이트를 만류하는 것도 왠지 모순처럼 느껴져 더 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과외를 하기 위해 집에 내려온 주말, 저희는 아들보다 더 부산스러웠습니다. 과외를 받아본 적도 없는 생초짜 아들이 과연 어떻게 과외를 하려는 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과외는 학부모와의 관계도 중요하기에 더 조심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저희는 20년이 훌쩍 넘은 기억을 더듬어 가며 과거 대학생때 했던 과외 아르바이트에 대한 조언들을 쏟아냈습니다. 아들은 생각보다 담담했습니다. 저희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도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해 나름의 기준이 서 있는 듯했습니다.
첫날은 혼자 버스를 타고 과외를 다녀왔습니다. 저희는 아들을 집에서 기다리며 과연 어떻게 했을지 궁금해 조바심이 났습니다. 아들은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붉게 상기된 얼굴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땠어?”
현관까지 마중 나온 저희는 아들의 가방을 받아 들며 물었습니다. 아들은 싱긋 웃더니 저희에게 두툼한 흰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이거 뭐야?”
“과외비 주시던데요.”
현금다발로 받아온 과외비가 너무 두꺼워 깜짝 놀랐습니다. 카이스트생의 과외비 단가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아들은 첫 과외였던 만큼 과외비를 얼마로 받아야 할지부터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학부모님께서 미리 시세를 알아보고 과외비를 제안해 주셨다고 합니다. 아들의 의향까지 확인하셨다는 걸 보면, 첫 과외였을 선생님을 위한 배려였던 듯합니다.
그날 이후, 방학이 끝날 때까지 아들은 후배에게 과학과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주말마다 집에 오긴 하지만 오롯이 과외만 하다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금요일 밤에 내려와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하루 서너 시간 과외를 하고, 일요일 오후면 다시 대전으로 돌아가는 빡빡한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말마다 얼굴을 본다는 기쁨도 잠시, 막상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겨우 토요일 오후 정도라는 사실에 적잖이 실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쪼개가며 바쁘게 움직이는 아들이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와는 조금 다른 이유였겠지만, 아들 역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혹시 태워다 줄 수 있냐는 조심스러운 부탁에 남편이 흔쾌히 나섰고, 때아닌 주말 라이딩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시간을 오히려 즐겼습니다. 왕복 약 2시간가량 거리를 오가면서 아들과 오붓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두 남자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식사 준비를 하느라 거의 동참하지 못했지만, 아들의 과외는 저희 부부의 주말 일상에도 활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방학 동안 이어진 첫 번째 과외를 통해 아들은 자신의 자기주도학습법과 성적이라는 결과물로 이어져야 하는 과외식 공부법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사교육 없이 어떻게 공부했는지 공부법을 알려주고 자신의 문제 풀이 방식 노하우를 알려주려 노력하는 듯했습니다.
과학고를 졸업한 지 6개월도 안된 덕에 과학고 후배를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던 것 같지만, 과외 외에도 학원을 다니고 있던 후배는 아들이 가르쳐 주는 공부 방식을 흥미로워하면서도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진 못한 것 같았습니다.
후배와의 과외는 학기가 시작되며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후배도 과학고의 바쁜 생활로 학기 중엔 어려웠고, 아들도 더 바빠진 학사 일정 때문에 주말마다 집에 내려오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첫 과외는 아들에게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그 뒤 대학 생활동안 이어진 아르바이트의 80%가 ‘가르치는 것’이었던 걸 보면 만족도가 높았던 듯합니다. 다만 그 방식은 점점 진화되었습니다.
대전 KBS와 카이스트생이 함께한 학력격차 해소 프로그램에 참여해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KT 랜선 야학 프로그램을 통해 비대면으로 중학생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아들의 과외 아르바이트는 돈을 버는 일을 넘어,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쪽으로 조금씩 나아갔습니다. 결국 그 첫 과외는 돈보다 가르치는 기쁨을 알려준 첫 수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