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아이에게 좋은 것만 물려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유전은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중 하나더군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도대체 누굴 닮았길래……”라는 말을 종종 하게 됩니다. 좋은 점은 서로 자신을 닮았다 하고, 그렇지 않은 점은 슬그머니 상대방 탓으로 돌리죠.
그런데 저희 부부는 그 바카라임을 서로에게 미룰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털’입니다.
저는 머리숱이 굉장히 많습니다. 나이가 들어 많이 빠졌음에도 여전히 평균 이상의 머리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릴 때는 시중에 나와 있는 머리핀이 맞지 않아 고무줄 방울만 쓸 수 있다는 것이 싫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머리카락 한 올씩을 뽑아 서로 당기던 ‘머리카락 강도 씨름’에서 단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는 굵고 건강한 머리카락이 있다는 건 나름의 자랑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만큼이나 풍성한 머리숱을 가진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 남자는 저보다 더해 온몸에 털이 많은 남자였습니다. 연애 시절, 하얗고 뽀얀 피부에 나 있는 거뭇거뭇한 수염 자국이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반나절만 지나도 올라오는 수염의 거칠거칠한 면을 손으로 쓰다듬는 게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남자 친구였던 그는 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시중의 웬만한 면도기들은 그의 수염을 6개월도 견디지 못했고, 여름철 모기조차 그의 다리털에 엉켜 죽어갔습니다.
결국 수염을 제모하기에 이릅니다. 당시 ‘평생 당신의 털을 바카라임진다’는 무모한 홍보를 하던 피부과에서 제모를 했고, 그 피부과는 아직도 제 남편의 수염을 무료로 관리해 주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덕분에 남편은 하얗고 뽀얗던 피부를 다시 되찾아 회춘하는 중입니다.
아들을 낳은 후, 저희에게는 이 풍성한 ‘털’들로 인한 고민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번째는 배냇머리였습니다. 갓 태어난 아들의 머리카락이 너무 가늘어 보여 배냇머리를 밀면 머리숱이 많아진다고 하는 속설을 믿어보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산후조리를 도와주셨던 친정엄마께서는 엄마,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면 필시 숱도 많고 건강한 머리카락을 가질 거라며 만류하셨습니다.
역시나 아들의 머리카락은 잔디인형처럼 쑥쑥 자라나 머리숱이 굉장히 많은 아이로 살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고 2차 성징이 나타나면서 남편을 닮은 뽀얀 얼굴에 수염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지체 없이 아이 손을 이끌고 피부과로 갔습니다. 자신처럼 턱수염을 뒤늦게 제거하느라 겪는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아들은 일찌감치 제모를 시키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남편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아들은 아빠 덕분에 면도로부터 해방되었고, 제모를 하러 간혹 피부과를 들르지만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털’에 관한 고민은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대학생이 되고 난 뒤,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던 1학년이 끝나자 얼굴에 생긴 여드름과 팔다리의 털에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저는 여드름이 난 적 없는 피부라, 아들의 원망은 아빠에게로 향했습니다.
남편은 순순히 물러났습니다. 여드름 치료를 할 수 있게 지갑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팔다리의 털에 관해서는 이견을 보였습니다.
“이거 봐봐. 아빠도 너만 할 때는 이렇게 굵고 무성했지만, 나이 드니까 빠지고 가늘어졌잖아.”
“저는 지금 반바지가 입고 싶은데요?”
“입으면 되지.”
“이런 다리로?”
요즘 남자아이들의 매끈한 다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 털이 무성한 다리로는 절대 반바지를 입을 수 없다는 아들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결국 남편이 한 걸음 물러나며 일단락되었습니다. 아마도 아들의 말을 들은 후, 주변의 젊은 친구들을 유심히 관찰한 듯했습니다.
‘라떼’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남편은 한 달 뒤 아들이 다시 한번 제모 이야기를 꺼내자 마지못해 허락했습니다.
“정 그렇다면, 밀어야지 뭐.”
남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가 끼어들었습니다.
“이건 아빠 바카라임이니까, 아빠가 돈 내는 걸로.”
아들은 저를 보고 방긋 웃어주었고, 저는 남편의 당황한 기색을 모른 체했습니다.
“그렇네. 피부도 내 탓, 털도 내 탓이네.”
남편은 포기한 듯 수긍했고, 다음에 내려오면 함께 제모를 하러 가기로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한 마디를 덧붙이며 무너진 자존심을 챙겼습니다.
“나중에 분명 아빠에게 감사하게 되는 날이 올 거다. 털이 많아 불편한 점도 있지만, 털이 많은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될 거야.”
그 말에는 저도 선뜻 동의했습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좋은 것만 물려주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함께 고민하고, 아이가 그것과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어쩌면 그것이 부모의 역할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