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석사과정생이었을 때, 교수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1차 회식을 마치고 술이 거하게 취하신 교수님께서 연구실원들을 모두 집으로 이끄셨죠.
“집에 꼬맹이 밖에 없어. 와이프는 학회 갔어.”
부부 교수였던 사모님께서는 학회를 가시고 꼬맹이만 혼자 집에 있다며 가자고 하실 때 사실 저는 의아했습니다.
‘꼬맹이 혼자 집에 뒀다고? 강하게 키우시네.’
그런데 집에 가서 보고 너무 놀랐죠. 교수님이 인사시킨 꼬맹이는 키 큰 교수님을 닮아 180cm가 훌쩍 넘은 중2 남학생이었습니다.
“쟤가 교수님께서 매일 말씀하시는 그 꼬맹이예요?”
저는 옆에 있던 선배에게 소곤소곤 귓속말로 물었습니다.
“응, 너도 적응 안 되지?”
마주 보고 웃었던 저희는 그때 알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부모가 된 저희도 똑같이 다 큰 자식을 ‘꼬맹이’ 취급하게 되리라는 것을요.
아들은 점점 혼자 하는 일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제 눈엔 어리고 미숙해 보였습니다. 미성년자 대학생 딱지를 2학년 때까지 달고 있었으니 더했습니다. 남편은 이제 대학생이니 알아서 하겠지라고 말했지만, 저는 불안한 날이 많았습니다. 특히 연락이 되지 않을 때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어릴 때, 아들은 예민한 아이였습니다. 큰 소리에도 잘 놀라고, 바닷가 모래가 발가락에 끼었다고 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잠만큼은 달랐습니다. 잠들기까지는 오래 걸려도,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깊이 잤습니다. 아빠를 꼭 닮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대학생이 되자 그 잠성은 제게 골칫덩어리였습니다. ‘네가 잠자는 왕자여?!’를 속으로 수없이 외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아들은 저희에게 하루의 일과를 미주알고주알 알려주진 않았지만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고, 아빠의 호기심을 채워주고자 매 학기 시간표를 공유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1교시 수업이 있는 날, 9시가 넘어도 가족 단톡방에 ‘1’이 사라지지 않으면 연락이 올 때까지 제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전날 늦게까지 행사가 있었다고 한 날 아침도 그랬습니다. 되도록 전화는 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아들과 연락이 닿을 때까지 안절부절못하는 날들이 생겼습니다.
가끔 의논할 일이 있어 전화했다가 연락을 통 안 받아서 갑자기 불안해진 적도 있었습니다. 아들이 전화를 안 받고 단톡을 읽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잠 때문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돼?”
“낮잠 잤어요.”
아들의 그 한마디는 저를 허탈하게 만들기도 했고,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 동안의 제 불안은 아들과 연락이 닿는 순간 눈 녹듯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른 새벽 휴대폰 문자 알림에 눈이 떠졌습니다. 이 새벽에 뭐지 싶어 눈을 반쯤 감은 채 확인했는데, ‘OO병원 응급실’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응급실’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잠이 확 달아났습니다. 결제 금액은 6만 원이 넘었습니다.
아들이 미성년자다 보니 체크카드 결제 내역이 제게 날아오도록 설정되어 있었는데, 그 문자를 보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MT를 갔다가 위경련이 생겨 한 선배와 함께 가까운 응급실을 방문한 거였습니다. 별일 아니었다고 하니 한시름 놓았지만, 물가에 내놓은 것처럼 불안한 나날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열 번 중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한번 때문에 저는 늘 걱정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모두 ‘과거형’입니다.
아들이 만 19세가 되면서부터 결제 내역이 더 이상 제게 날아오지 않습니다. 처음엔 사실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불안의 근원이 사라져서인지, 지금은 예전만큼 예민해지지는 않습니다.
밤늦은 과제와 시험이 일상화되어 있어 아침 시간이 다른 곳과 조금 늦게 시작한다는 ‘카이스트의 시간’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꿈자리가 사나워 다시금 불안과 걱정이 고개를 내밀곤 합니다. 신기하게도 제 꿈은 아들에 관한 한 딱 들어맞는 경우가 많아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아들의 일상을 이해하고 관심을 내려놓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과거 지도교수님의 ‘꼬맹이’가 떠오릅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교수님의 마음을, 저의 ‘꼬맹이’를 키우며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