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첫 번째 학기가 끝났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시작한 대학 생활이지만, 조금씩 정상화되며 대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와 활기를 되찾아갔습니다. 수업과 과제로 만만치 않은 일정들이 이어졌지만 ‘카이스트는 과학고의 확장 버전’이라는 소문은 과장된 것이라는 것이 아들의 입장이었습니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 하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들을 하나씩 해나가며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마음껏 즐기는 듯했습니다. 응원단 활동으로 늦은 시간까지 연습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캠퍼스를 누비는 모습은 제가 상상했던 공부만 하는 ‘카이스트생’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아들은 그렇게 1학년 1학기를 젊음과 열정으로 불태웠습니다.
아들이 대학생이 되고 난 뒤 맞는 첫 여름방학. 아마도 아들보다 저희가 더 기다린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2달 반 가까이 되는 대학생의 긴 방학 동안 매일 같이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아들맞이 대청소를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여름방학 기숙사 신청을 했어요. 기숙사비 입금이 필요합니다.”
“여름방학은 집에서 보내는 거 아냐?”
“엘카(카이스트 응원단) 연습도 해야 하고, 학교에 남아서 할 게 많은데요?”
아들의 전화에 갑자기 모든 게 시큰둥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대청소도 하기 싫고, 여름 이불도 꺼내놓는 게 귀찮아졌습니다. 남편도 적잖게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아들이 방학 동안 기숙사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겁니다. 이제 막 첫 학기를 보낸 아들은 기숙사 짐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막막한 듯했습니다.
저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우리가 갈게.”
사실 옮기는 기숙사가 먼 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정도는 혼자 하게 두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먼저 부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아들이 보고 싶어 핑계 삼아 나선 것이죠.
아마 가만히 두었다면 방법을 찾았을 겁니다. 그 이후에는 친구들과 상부상조하며 무거운 냉장고까지도 알아서 옮겼으니 말입니다. 그저 아들이 보고 싶은 저희의 마음이 앞섰던 것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들은 이미 혼자 생활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었습니다. 기숙사 생활도, 학교 생활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희는 아이가 혼자 잘 해내리라는 걸 알면서도 쉽게 놓아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저희가 대전에 간 이유는 기숙사 짐을 핑계로 조금 더 아들 곁에 있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아들의 허락(?)에 저희는 신이 났습니다. 집에서 이것저것 챙기면서 들떴습니다. 여름 이불과 베개, 먹거리들을 싣고 대전 가는 길이 소풍을 가는 것 같았습니다.
대전에 도착한 뒤, 남편은 아들의 기숙사 이사를 도왔습니다. 가벼운 짐들은 이미 옮겨놓은 터라 무거운 짐 위주로 기숙사 안까지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신입생 때와 달리 어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자유자재로 들락거렸던 남편은 우쭐해했습니다.
“이제부터 형이라 불러.”
안 그래도 아들 친구들로부터 아빠가 너무 젊다는 말을 들어왔던 터라, 남편의 콧대가 더 높아졌습니다.
“진짜 신기하네요. 어떻게 통과했지?”
아들 역시 신기해했지만, 그날 일은 미스터리로 남았습니다.
아들의 방학맞이 첫 기숙사 이사는 늙수그레한 대학원생 몰골을 한 아빠의 도움으로 쉽게 끝났습니다. 저희는 아들과 헤어지기 전, 식사를 하며 저희 가족만의 룰을 정했습니다.
3~4주에 한 번은 집에 내려오기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엔 반드시 참석하기
겨울 가족 여행을 위한 시간은 비워두기
결혼기념일과 겨울 가족 여행은 아들의 나이만큼 해왔던 일들이지만 대학생이 되었다고 변하진 않는다는 것, 무엇보다 가족이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아들도 흔쾌히 동의하였습니다.
그런데 학기 중과 마찬가지로 한 달에 한번 내려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들은 매주 집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입학 전 저희 가족을 ‘사교육 딜레마’에 빠뜨렸던 그 과외를, 정말로 하게 되었거든요.
매주 아들을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습니다. 다만 그 기쁨에는, 저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주말 일상이 함께 따라왔습니다. 대학생 아들의 ‘사교육 입성’을 위한 라이딩이 시작된 것입니다.
밀리의 서재 '밀리로드'에도 진출해 있습니다.
작가님들의 밀어주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https://www.millie.co.kr/v4/millieRoad/38141
현재, <박사 둘, 학사 하나>는 화요일, 금요일 연재 중입니다만, 다음 주부터 월요일, 목요일로 변경됩니다.
그 외 독후감이나 일상 이야기는 틈틈이 작성하겠습니다.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