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5년 전쯤 제가 모 대학에서 계약직 연구 교수로 일할 때였습니다. 강의를 하고 나오는데 어떤 남자분이 복도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OOO 교수님이십니까?”
“네, 그런데요?”
“저는 OO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OOO입니다.”
그 사람은 본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직원이라며 자신을 소개하더니 대뜸 학생 한 명을 인사시키는 겁니다. 가만 보니 좀 전에 강의실에서 봤던 아이였습니다.
“제 아들입니다. 한 학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네.”
뭔가 의미를 담은 듯한 그분의 그윽한 눈빛이 부담스러워 대충 얼버무리고 나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어쩌라고.’
아마도 그 당시 저는 대학생 아들의 학점까지 신경 쓰는 건 좀 유난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그 상황이 불편했던 거겠죠.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내 아들이 크면 저러지 말아야지!’
그런데 아들이 미성년자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럼에도 진상 부모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최대한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아이의 학교생활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개입해야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학교생활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캠퍼스 이동에 필요한 자전거나 오토바이, 혹은 킥보드가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길 했습니다. 사실 입학 전부터 캠퍼스가 넓으니 필요할 거라는 이야길 듣긴 했는데, 캠퍼스에 공유 자전거와 킥보드가 잘 구비되어 있길래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대면 수업이 늘다 보니 개인 교통수단이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물론 학교에도 자전거 상점이 있긴 합니다만, 아들이 쓰던 성능 좋은 자전거가 집에서 놀고 있기에 그걸 보내주는 걸로 합의를 봤습니다.
그런데, 자전거를 대전까지 보낼 방법이 없는 겁니다. 남편 차로 직접 보내려니 자전거를 분해해야 하고, 분해하자니 도구가 없었습니다. 택배로 보내려고 해도 크기가 커 제한이 많았고요. 폭풍 검색 끝에 자전거 택배 대행을 해준다는 자전거 대리점을 찾았습니다. 이럴 땐 브랜드 자전거를 산 게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사장님은 자전거를 분해하고 포장해서 택배 발송까지 해주시기로 했고, 아들이 받은 뒤에는 근처 자전거 대리점 아무 곳이나 가서 5천 원 정도 주면 조립 가능할 것이라는 조언까지 해주셨습니다.
아들은 무사히 택배를 받아 자전거 대리점에 가지고 갔는데, 그쪽 사장님께서 조립비로 2만 5천 원을 부르신 겁니다. 아들은 어린 마음에 당황한 나머지 대꾸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2만 5천 원을 지불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전거 조립이 궁금해 전화한 저희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였습니다.
아들의 말에 역시나 감정적인 엄마와 이성적인 아빠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속상했겠다. 어리다고 사장님이 바가지 씌운 건가?”
“왜 2만 5천 원인지, 왜 여긴 비싼지 물어봤어?”
아빠의 반응에 아들은 당황했습니다. 저 또한 이제 겨우 만 17살인 아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고 남편에게 대꾸했죠. 이런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일 테니까요. 결국 남편이 나서서 사장님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핸들 조립 외, 안전하게 타고 다닐 수 있게 이것저것 손 봐줬기 때문에 2만 5천 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조곤조곤 논리적으로 불필요한 서비스에 대해 정중히 항의를 했습니다. 결국 만 5천 원으로 합의를 보는 선에서 해결이 되었답니다. 이 사건은 미성년자 대학생 아들에게는 슬롯의 매운맛을 제대로 본 일이었죠.
아이를 키우는 동안 불합리한 일들이 종종 생기곤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충실히 생활하는 모범적인 아이였지만 간혹 오해를 받아 속상해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아들의 말을 듣고 난 뒤,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가 전화해 줘?”
“누구한테요?”
“교장선생님?”
물론 단 한 번도 전화한 적은 없습니다. 이성적인 남편도 아들 앞에서는 늘 이렇게 공감과 응원을 보냈거든요. 그 한마디에 아들은 속상함을 털어내고 활짝 웃곤 했죠.
대학에 들어가서도 그랬습니다. 학교 제도나 정바카라 때문에 아들이 속상해하는 일이 생기면 이렇게 말했죠.
“아빠가 전화해 줘?”
“누구한테요?”
“총장님?”
그런데 실제로 자전거 수리점에는 전화를 했네요.
아이가 다섯 살이면 부모도 다섯 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아이가 스무 살이 되어갈 즈음, 저희도 스무 살 부모가 되어가는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의 일이 해결되고 나자, 문득 강의실 앞에서 만났던 그때 그 교직원분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때 아이가 너무 어려 그분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대학생이 되고 보니, 어떤 마음으로 저를 찾아오신 건지 너무 이해가 되는 겁니다.
늦었지만, 그날 속으로 뱉었던 ‘어쩌라고’를 이제야 회수합니다.
죄송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