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유목민

byMy Way

아들의 대학 첫 학기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집에 내려온 아들이 제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용돈이 좀 부족해요.”


그 당시 저희는 70만 원을 용돈으로 주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월 5만 원도 안 되는 용돈을 받던 아이였고, 학원비 한 번 들어본 적이 없던 터라 저희에게는 꽤 큰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카이스트에 기숙사 전용 식당이 없는 것을 감안하여 나름 합리적으로 바카라정한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세끼를 학교에서만 해결하는 것도 아니고 동기나 선배들과 어울리다 보면 아무리 아껴도 밥값으로 거의 다 나간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에 아빠와 이야기해 보는 게 좋겠다. 얼마 정도면 될 것 같아?”

“100만 원 정도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날 저녁, 저는 식사를 하면서 아들을 위해 슬슬 운을 뗐습니다. 밥은 잘 먹느냐로 시작한 대화가 결국 용돈이 부족하다는 것까지 닿았습니다.


“그래? 그래서, 얼마면 될 것 같은데?”

아빠의 물음에 아들은 아빠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120만 원이요!”


순간,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분명 저랑 이야기할 때 100만 원이면 될 것 같다더니 그새 20만 원이 오른 겁니다. 그런데 곧 아들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120? 용돈이 지금 70만 원인데, 70% 이상 인상은 너무 파격적인데? 80만 원.”

“110만 원이요.”

“그럼, 90만 원.”

“100만 원이요.”

“좋아. 그럼 딱 중간 95만 원으로 인상. 더 이상의 협상은 없어.”

“네, 좋아요.”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 거죠?

저만 어리둥절한 채 두 사람은 좋은 협상이었다며 서로 바라보고 웃는 겁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아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아빠를 상대로 처음부터 협상 전략을 세운 것이었습니다.

아빠와 팽팽하게 협상을 벌이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새삼 대견했습니다.


그날 밤, 안방에선 아들 용돈에 대한 2차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아들이 카이스트에 입학했을 때, 주변에서는 등록금도 안 들고 학원비 한번 내보지 않은 효자 아들인데, 용돈이라도 많이 주라는 말들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하고 있었기에 95만 원이 아닌 100만 원을 맞춰주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한 겁니다. 하지만 남편은 단호했습니다.


“OO이의 노력도 물론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엄마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좋은 유전자가 있었기에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 그 부분까지 보상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늘 그렇듯, 저는 남편의 말에 쉽게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노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유전으로만 설명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용돈 인상이라는 기분 좋은 결과를 가지고 다시 학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용돈 인상과는 별개로 아들에게서 자꾸 예전에 봤던 애니메이션, ‘장화 신은 고양이’의 눈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내려와 기숙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제 팬트리에서 가져갈 때도, 쇼핑을 하다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을 때도, 그 눈빛으로 저희를 바라보는데, 그걸 어떻게 모른 척하겠습니까?

남편도 뭔가에 홀린 듯 카드를 내밀어 놓고서는 나중에야 “이걸 왜 내가 계산했지?”하며 웃곤 했습니다.

아마도 용돈을 최대한 아껴보려는 아들의 귀여운 꼼수에 저희가 당한 거겠죠?


아들과 옷 쇼핑을 하면서 제가 본 건 아들의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만이 아니었습니다. 옷을 선택하는 기준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제 눈에는 뭘 입어도 예쁜데, 아들은 아직 미성숙한 자신의 마른 몸매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단점을 가리고 장점을 부각할 만한 옷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는 듯했습니다.


"이 옷 색깔은 제 어깨를 너무 작아 보이게 만들어요."

"이 옷은 세탁하기 불편할 것 같아요."

"이건 너무 비싸요."


여러 가지를 꼼꼼히 따져보며, 매번 조금씩 추구하는 바도 달라졌습니다.

한마디로 패션 유목민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어릴 적부터 제 아들은 선택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고르는 연습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들을 스스로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게 옷이기도, 공부이기도, 진로이기도 한 거죠.


어쩌면 패션 유목민 시기는 어른이 되어 가는 아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밀리의 서재 '밀리로드'에도 진출해 있답니다.

작가님들의 밀어주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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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illie.co.kr/v4/millieRoad/38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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