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엠

byMy Way

제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이자 아쉬웠던 시기를 꼽으라면 단연 대학 시절입니다.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맘껏 자유를 누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유도 누려본 사람이 누리는 법인지, 제 스무 살은 몸만 떨어져 있을 뿐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했습니다. 기껏 동아리 하나 선택하는데도 제약이 걸렸으니까요.


사실 저는 밴드부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내향적인 성향이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미친 듯이 일탈을 즐겨보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동아리 활동보다 학업에 치중하길 바라셨습니다. 연년생 동생이 바로 다음 해에 대학생이 될 터라 장학금을 타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정 동아리 활동이 하고 싶으면 ‘불교 동아리’가 어떻겠냐는 제안도 하셨습니다.


밴드부 모집 마지막 날, 동아리 방 문 앞까지 갔던 저는 결국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대신 불교 동아리도 가입하지 않는 것으로 소소한 반항을 했습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크게 후회하는 지점 중 하나입니다.

“그때 한번 해 볼걸.”


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뒤, 저는 저의 대학 생활 이야기를 해주며 하고 싶은 건 다 해 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Carpe diem(카르페 디엠).”


그런데 제 이야기가 아들에게 무척 감명 깊었나 봅니다. 아들은 동아리 모집 기간 동안 배드민턴 동아리, 카이스트 응원단, 그리고 ‘카이티비’라는 유튜브 채널까지 세 곳을 신청했습니다. 다행히 모든 동아리가 나름의 심사를 거쳐 성실히 활동에 임할 수 있는 학생을 우선 선발하는 듯했습니다. 결국 배드민턴 동아리와 카이스트 응원단은 체력적·시간적 여건상 동시에 하기 어려워, 최종적으로 카이스트 응원단(ELKA)과 카이티비 활동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카이티비 유튜브 채널은 1년간 비정기적인 활동으로 동아리 활동을 마무리지었고, 이후 아들의 주 무대는 카이스트 응원단이 되었습니다.

목소리 출연(0:52~) ㅋㅋ


대학 응원단 중 가장 유명한 응원단은 고려대와 연세대입니다. ‘고연전’ 혹은 ‘연고전’을 다들 아실 겁니다.

그런데 비슷한 것이 여기에도 있었습니다. 이공계특성화대학인 카이스트와 포스텍이 만나 ‘카포전’ 혹은 ‘포카전’이라 부르는 학생 교류전을 하는데, 이때 각 학교 응원단이 멋진 응원전을 펼칩니다.


아들의 응원단 가입은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카이스트 특성상 신입생 때는 무학과로 입학하기 때문에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으면 꽤 외로운 학교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결속력이 강한 응원단은 든든한 선후배를 얻는 최고의 수확이었습니다. 또한 카이스트 응원단은 학교 공식 홍보대사인 ‘카이누리’와 더불어 학교의 얼굴이자, 학교를 위해 봉사하는 단체이기도 했습니다. 각종 행사에서 카이스트 대표로 응원 공연을 펼치는 만큼, 단순한 동아리 그 이상의 자치기구였습니다.


문제는 대학 생활의 많은 시간을 동아리 활동에 할애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빡빡한 과제와 시험공부 와중에 가장 힘든 동아리 활동까지 병행해야 했죠. 아들이 대학생이 된 후 집에 자주 내려올 수 없었던 것도, 살이 찌기는커녕 오히려 빠졌던 것도 다 이 응원단 때문이었습니다.

훈련은 학사일정을 피해 저녁 식사 후 주 2~3회 정도 이루어졌습니다. 중간·기말고사 2주 전에는 훈련을 멈추는 등 나름의 배려도 있었지만,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강도 높은 연습은 체력 소모가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한 달 만에 집에 온 아들과의 대화는 8할 이상이 응원단 이야기였습니다. 그만큼 아들의 대학생활에 응원단이 차지하는 몫이 커져갔습니다.

이사를 해 넓어진 거실에서 아들은 끊임없이 팔과 발동작을 연습했습니다. 마치 태권도에 다니던 초등학생 시절 쉴 새 없이 품새를 익히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덩치만 컸지 여전히 무한 반복 연습이 몸에 밴 아이였습니다.


2년간의 활동을 마친 뒤, 아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카이스트 응원단은 3학년으로 구성된 소수의 단장단이 2학년 정단원과 1학년 주니어, 각 8명씩을 이끄는 방식이었습니다. 아무래도 3학년은 군대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 단장단에 지원하고 싶은 마음과 소홀했던 학업에 신경 써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 듯했습니다.


“이왕이면 단장이 하고 싶어요”

아들의 말에 공감형인 저와 현실적인 남편의 반응이 갈렸습니다.


“힘들지 않겠어?”

“군대, 진학, 학점에 대한 고민은 끝난 거야?”


아들은 그간의 고민을 뒤로하고, 응원단장으로서 최고 위치에 올라 활동을 완벽하게 마무리 짓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들의 굳은 결심에 저희도 충분히 즐겨보라며 응원을 보냈습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대학생이기에 누릴 수 있는 그 귀한 시간을 제대로 누리는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미련 가득했던 저의 스무 살이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저희는 실물보다 영상 속 아들을 더 자주 보는 신세가 되었지만, 응원단장으로서 칼군무를 이끄는 모습을 보고 또 보며 허전함을 달랬습니다.


아들의 ‘카르페디엠’을 조용히, 누구보다 열렬히 응원하면서 말입니다.

2023 일반고 창글리(창의적 글로벌 리더 프로그램)


목요일 연재
이전 04화빈집 증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