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E인 줄 정말 몰랐어!

byMy Way

저희 가족의 주말 풍경은 너무나 평온한 편입니다.

아이가 초등학생 때는 보드게임을 하거나 아주 가끔 나들이를 가는 정도였고, 대부분은 조용히 보냈습니다. 집순이 엄마와 집돌이 아빠는 사람들을 만나면 진이 빠지는지라 가능하면 주말은 집에서 바카라을 읽거나 TV를 보면서 보내는 걸 좋아했습니다. 아들도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일이 한 달에 한번 꼴로 있을까 말까 했고, 그마저도 집 앞 놀이터나 학교 운동장에 축구를 하러 가는 정도였습니다.


아들이 중고등학생이 되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평일에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서도 굳이 친구들을 학원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오곤 했지만, 주말에는 저희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같이 예능을 보고 웃고, 산바카라을 하고, 탁구를 치러 가는 등 소소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치열한 과학고 생활 때문에 주말은 체력을 보강하고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느라 쉴 틈이 없었기에 더욱 평온한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내내, 저희는 당연히 아들도 저희와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습니다. 내향인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모태 집돌이라고 말이죠.


아들이 대학생이 되고 난 후, 매일 같이 사람을 만나러 다니고 약속이 있는 듯했지만, 신입생 때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극 I 형인 저도 대학 1학년 때는 학교에 적응하느라 선배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저희의 착각이었습니다.

집을 벗어나면서 아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자신의 성향을 점점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바쁜 학교생활 탓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밥약(밥 약속)이나 술약(술 약속)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혼자 기숙사에 있는 것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MBTI가 유행하면서 가족 모두 진단을 받아보고 난 뒤에야 아들의 성향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MBTI는 ENTJ였습니다.

정말로 E인 줄 몰랐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아들은 E로 태어났는데, 제가 아들의 성향을 알아채지 못하고 '나와 같은 아이'일 것이라 단정 지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내향인이라 생각해 버린 것이죠.

그러고 보니, 제가 놓쳐버린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들의 유일한 놀이 상대는 대부분 저였습니다. 외동인 데다 엄마인 제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리는 내향인이다 보니, 놀이터나 키즈카페를 가더라도 단둘이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습니다. 저질 체력인 제게,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들의 무한 체력은 늘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기꺼이 키즈카페 오픈런에 도전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아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며 또래들과 어울리기 시작하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분명 엄마와 함께 왔는데, 어느새 또래 무리 속에 섞여 놀고 있는 겁니다. 이미 자기들끼리 뭉쳐있던 아이들 틈에 어떻게 끼어들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입니다.

보호자로 따라간 저는 멀뚱멀뚱 아들의 놀이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꼭 묻곤 했습니다. 혹시 다음에 또 만나 놀 수 있는 인연일까 싶어서였죠.


“빨간 바지 입은 친구랑 진짜 재미있게 놀더라. 그 친구 이름은 뭐야?”

“몰라요.”


이름도, 나이도 모른 채 그 틈에서 완벽하게 어울려 놀다 오는 아이. 저는 아들의 그런 모습이 친구들 틈에서 살아남으려는 외동아이의 ‘생존 본능’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대학생 아들의 MBTI 검사 결과가 외향적인 성향(E)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오래전 그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아들은 어색함을 무릅쓰고 억지로 어울렸던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즐기다 온 거였습니다. 어색하고 불편해서 어쩔 줄 몰라했던 건, 사실 아들이 아니라 저 혼자였던 셈입니다.


아들의 성향이 E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들의 모습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집에 내려오면 늘 그렇듯 집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하며 저희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끔 동창들을 만나러 나가기도 했지만, 집에 내려오면 최대한 약속을 잡지 않으려 애쓰는 듯했습니다.

그저 집에 있는 것이 편하고 좋아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들 바라기인 엄마, 아빠를 위한 배려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MBTI가 모든 성향을 대변하진 않겠지만, 덕분에 아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얻고, 집에 오면 그 에너지를 저희와 함께 나누는 아이였습니다.


E인 아들과 I인 엄마, 아빠.

저희 가족은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조합인 것 같습니다.




밀리의 서재 '밀리로드'에도 진출해 있답니다.

작가님들의 밀어주리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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