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는 끝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조조 모예스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Me Before You>. 흔한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화면은 검게 바뀌었지만 일어설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들리던 두 사람의 목소리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원작 소설을 펼쳤다. 영화에서 스쳐 지나간 표정과 침묵이 문장 안에서는 오래 머물렀다. 윌과 루이자는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루이자는 온 세상의 색채를 껴입은 듯한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윌 앞에 나타난다. 화려한 줄무늬 스타킹, 엉뚱한 농담,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얼굴. 반대로 윌은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차갑고 무표정하다. 처음부터 부딪히기만 했던 두 사람 사이에 조금씩 온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클래식 음악만 흐르던 윌의 방에 그녀의 엉뚱한 수다가 채워지기 시작했을 때, 윌의 굳어 있던 입 꼬리가 아주 잠깐 올라갔다. 그 순간 나도 웃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음악을 듣고, 낯선 곳에서 바람을 맞는다. 전신마비로 휠체어에 앉은 윌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미소가 번졌다. 그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나는 윌의 눈빛에 시선을 고정했다. 루이자처럼 살아 있고 싶어서 웃는 사람과, 사랑하면서도 이별을 준비하는 윌의 눈빛은 달랐다.
사랑이라면 기적 하나쯤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의 웃음을 보고 있자니, 루이자가 곁에 있다면 윌도 살아가기로 결심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윌은 루이자를 만난 뒤에도 처음의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 예정대로 스위스로 떠나 조력 자살을 택한다.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죠. 하지만 내 인생은 아니에요. 난 내 인생을 사랑했어요. 진심으로요.”
문득 비행기 안전 수칙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을 돕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산소마스크를 착용하십시오.’
처음에는 그가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는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잃은 것은 몸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몸은 단순한 육체가 아니었다. 바이크를 타고, 스카이다이빙과 같은 레포츠를 즐기며 세상을 온몸으로 살아냈던 사람에게 몸은 곧 삶 자체였다. 여행을 떠나고, 달리고,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었던 시간 말이다. 루이자와의 사랑 또한 그의 시간을 따뜻하게 만들었지만, 사고 이전의 삶까지 되돌려 주지는 못했다.
그는 루이자를 붙잡는 대신 떠나보낸다.
그녀에게 남긴 것은 돈이 아니었다. 자신이 끝내 살아갈 수 없었던 삶을 그녀만큼은 살아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와닿았다.그제야 제목이 와 닿았다.
‘Me Before You.’
'너보다 내가 먼저'는 이기심의 선언이 아니라, 너를 만나기 전에도 나는 나였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 삶을 잃고 싶지 않았다는 절박한 고백처럼 들렸다. 동시에 그것은 루이자의 고백이기도 했다. 윌을 만나기 전의 좁은 세상을 벗어나 비로소 더 넓은 삶으로 걸어 나갔다는.
기차역에서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의 눈빛, 애써 담담하려는 얼굴, 끝내 붙잡지 않는 사랑. 누구도 크게 울지 않는데 오히려 그 침묵이 더 크게 마음을 흔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도 한동안 창밖만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노을이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저녁인데도 왠지 적막했다. 허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잠시 모호했다. 어디선가 루이자가 환하게 웃고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그의 마지막 편지가 마음속에서 다시 펼쳐진다.
“당신은 내 심장 깊이 새겨져 있어요... 그냥 잘 살아요. 당신의 걸음걸이마다 함께 걸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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