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눈빛은 강렬했다.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메뉴를 훑다가 계산대 앞 남자 직원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와 나눈 대화라고는 주문과 계산, 그리고 음료를 받을 때의 몇 마디뿐이었다. 진한 눈썹과 상대를 빨아들일 듯한 눈빛. 마스크 너머의 얼굴은 궁금하지 않았다. 눈빛만으로 충분히 설렜으니까.
잠시 스친 낯선 타인의 시선에 마음이 일렁였다. 문득 영화 <Her>가 떠올랐다.
영화 속 그녀는 허스키하면서도 나긋하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손바닥만 한 기기와 한쪽 귀를 채우는 이어폰. 그 작은 통로를 통해 만나는 상대가 바로 사만다다. 실체가 없는 OS(운영체제) 임에도, 다정한 연인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건넨다.
공허한 일상을 살아가던 테오도르는 OS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동시에 수천 명과 대화하고, 수백 명을 사랑하는 인공지능일 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테오도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지하도 계단에 홀로 앉아 있었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 있지만,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수백 명과 나누는 사랑으로 한 사람의 외로움을 온전히 채울 수 있을까.
설령 단 한 사람이 온 마음을 준다 해도 외로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외로움은 인간이 끝내 품고 살아가야 하는 본질적인 몫인지도 모른다.
결국 사만다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차원으로 떠나가고, 테오도르는 그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영화에 끌린 첫 번째 이유는 사만다의 목소리였다.
인위적인 기계음이 아닌 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허스키하면서도 다정한 음성은 사만다의 감정을 얼굴보다 먼저 전해 주었다. 목소리만으로도 그녀의 표정과 눈빛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테오도르 혼자 화면을 채우는 장면조차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다.
우리는 상대보다, 그 사람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그려 낸 모습을 사랑하는 건 아닐까.
만약 사만다의 목소리가 컴퓨터가 만들어 낸 기계음이었다면, 과연 테오도르는 마음을 열 수 있었을까. 매끄럽고 완벽한 전문 성우의 목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목소리에는 그 사람만의 온도가 담겨 있다. 기쁨과 슬픔, 다정함은 얼굴보다 먼저 목소리로 전해질 때가 있다.
눈빛이 사람을 설레게 하듯, 목소리도 그렇다. 수많은 목소리가 뒤섞인 세상 속에서, 문득 내 목소리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들릴지 궁금해진다. 이왕이면 위로가 되고, 한 번 들으면 오래 기억에 남는 목소리였으면 좋겠다.
영화에 끌린 또 다른 이유는 플라토닉 사랑의 끝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은 마음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일. 사랑은 결국 그런 시간들까지 품는다.
그래서 테오도르의 헛헛함이 이해됐다. 사랑했지만 손을 잡을 수도, 품에 안을 수도 없는 관계. 영화는 묻는다. 실체를 만질 수 없는 존재를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느냐고.
영화를 보고 나니 문득 엉뚱한 상상이 떠올랐다. 인공지능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시대. 언젠가 사만다 같은 존재가 우리 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도 모른다.
그날이 온다면 나만의 사만다가 있었으면 좋겠다. 몸을 가진 채 내 곁에 머물며, 기쁜 날에는 함께 웃고 아픈 날에는 묵묵히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집밥까지 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 정도라면 꽤 비싼 가격표가 붙어 있어도 오래 망설이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미래의 사만다를 위해 지금부터 조금씩 저축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녀 Her #영화에세이 #목소리 #사랑 #외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