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와 삼십 년 넘게 떨어져 살았다

내 이야기

by박성욱

엄마란 무엇일까.

나는 엄마와 삼십 년 넘게 떨어져 살았다. 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엄마라는 말은 알고 있었지만, 엄마와 함께 사는 일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몰랐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많이 흐려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엄마가 큰 여행 가방을 끌고 고향의 큰길을 걸어가고 있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간다. 엄마는 터덜터덜 걷고, 나는 엄마를 부른다.

“엄마, 어디 가?”

엄마가 대답한다.

“성욱아, 엄마가 딸기 사 올게. 기다려. 알았지?”

그때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엄마가 입었던 옷이나 그날의 날씨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딸기를 사 오겠다는 그 말은 잊히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믿고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언제부터 기다리지 않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흘렀고, 나는 어느새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청소년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어린 나에게는 조금 쉬웠던 것 같다.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왜 곁에 없는지 매번 생각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런데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동안에도, 엄마와 하고 싶은 일은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서른 중반쯤이었을 것이다. 정확한 때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와 아빠와 누나가 함께 모여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많이 방황했다. 아버지는 사고뭉치 아들을 어떻게 바른길로 데려가야 할지 잘 몰랐다고 하셨다. 엄마는 그렇게 떠났지만 언제나 누나와 내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이미 다 자란 아들이 되어, 그때의 엄마와 아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일도 있었고, 처음 듣는 마음도 있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 우리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이야기했다.

나는 평생 엄마와 아빠를 미워한 적은 없었다.

다만 살아 있는 동안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우리 네 식구가 한집에서 함께 살아보는 것.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고, 누나가 있는 집. 누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차를 타지 않아도 되는 집. 밥을 먹고 나서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

나는 그런 것을 해보고 싶었다.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

괜히 곁에 붙어서 그런 말도 하고, 하루 종일 뒹굴다가 오늘 있었던 일을 주절주절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 오늘 힘들었어.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어.

나이 먹은 아들이 그러면 좀 우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에 다 부리지 못한 어리광이 내 안에 오래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네 식구가 한집에 모여 사는 일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대신 주말이면 누나가 모시던 아빠와 누나, 내가 엄마가 사는 덕산으로 왔다.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살을 부볐다. 그렇게라도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언젠가는 네 식구가 같이 살아야겠다는 생각 속에는 늘 아버지도 계셨다. 그런데 그 언젠가가 오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가셨다.

그 뒤 엄마는 당뇨를 앓게 되셨다. 급성 저혈당으로 두 번이나 중환자실에 실려 가셨다.

그제야 내일이라는 말을 믿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자리를 잡으면.
조금 더 돈을 벌면.
조금 더 형편이 나아지면.

그렇게 미루다가 엄마와 하고 싶은 일까지 마음속에만 남을까 봐 겁이 났다.

엄마를 내가 모셔야겠다. 곁에서 함께 살아야겠다. 진짜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다.

그 마음으로 덕산에 왔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엄마의 체중은 삼십사 킬로그램이었다. 걷는 것도 힘들어 보행기에 의지하셔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십 킬로그램 가까이 체중이 늘었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가게까지 걸어오신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좋아지셨는지 내가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가까이서 엄마를 보고 있으면, 자식들 곁에서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엄마는 누나와 나보다 먼저 가게에 나와 계실 때가 있다. 김치를 챙기고, 청소를 하고, 밥을 하신다. 바빠서 손이 모자라면 어느새 나타나 함께 움직여주신다.

나는 엄마를 돌보겠다고 내려왔는데, 엄마는 자꾸 나를 돌본다.

가끔은 이제 그만하고 앉아 계시라고 하고 싶다. 엄마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좋은데, 엄마는 우리에게 해줄 일을 찾으시는 것 같다.

누나와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게 기적 같지 않아?”
“엄마는 초능력자야.”

함께 웃고 장난치다가 밥을 먹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기적 같을 때가 있다. 얼마 전까지 걷는 것도 힘들었던 엄마가 우리와 같은 자리에서 밥을 먹고, 말을 하고, 웃고 있다.

나는 요즘 엄마와 함께 사는 일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일하다 고개를 들면 엄마가 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다음에 만날 때까지 기억해두지 않아도 된다. 그냥 지금 말하면 된다.

“엄마, 오늘 말이야.”

그렇게 시작하면 엄마가 듣는다.

내가 오래 하고 싶었던 일이 이런 것이었구나 싶다. 특별한 날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지만, 사실은 오늘 있었던 일을 오늘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럴 때 아버지가 생각난다.

조금만 더 살아 계셨다면, 우리와 함께 이 생활을 하고 계셨을까. 가게 한쪽에 앉아 밥을 드시고, 우리가 장난치는 모습을 보며 웃으셨을까.

궁금한데 물어볼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와 누나와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가 했던 말, 아버지와 있었던 일. 셋이 모여 한 사람을 이야기하다 보면 잠깐 네 식구가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쩌면 지금의 생활은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이야기의 다음 편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이 자리에 안 계시지만, 우리가 함께 기억하는 일들 속에는 여전히 계신다.

엄마란 무엇일까.

아직도 한마디로는 잘 모르겠다.

내게 엄마는 큰 여행 가방을 끌고 걸어가던 뒷모습이기도 하고, 나보다 먼저 가게에 와서 밥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오래 곁에 없었던 사람인데, 지금은 고개만 들면 보이는 사람이다.

그 사이에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이 있다.

없었던 시간을 전부 채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 어리광을 부릴 수도 있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릴 때 나는 딸기를 사 오겠다는 엄마를 기다렸다.

지금은 엄마 곁에서 음식을 만든다.
내가 끓인 음식을 엄마가 드신다.

나는 그 사실이 가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언젠가는 나도 죽을 것이다.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다시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꼭 한 번은 우리 네 식구가 모였으면 좋겠다.

그때는 내가 칼국수를 끓이겠다.

엄마와 아빠와 누나가 앉아 있으면, 나는 그릇 네 개를 꺼낼 것이다. 내 것까지 나란히 놓고, 나도 자리에 앉을 것이다.

누구를 만나러 갈 필요도 없고, 먼저 돌아갈 사람도 없는 밥상이었으면 좋겠다.

국수를 먹으며 이야기하고 싶다.

아빠, 우리 가게 열었어.
엄마가 이제 혼자 걸어서 가게에 와.
누나랑 나랑 같이 일해.

그동안 못 한 이야기가 많다고.
천천히 다 들려주겠다고.

그리고 예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하겠다.

엄마, 아빠, 누나.
사랑해.

그 말을 하고도,
한참 더 같이 앉아 있고 싶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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