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이야기
오늘은 이 주 만의 휴일이다. 쉬고 있으니 가게에서 있었던 어느 오후가 생각난다.
늦은 오후, 빨간 리어카를 끌고 할머니 한 분이 오셨다. 몸은 앙상했고 머리카락은 새하얬다. 들어오실 때부터 목소리가 크셨다. 할아버지 흉을 한참 보시더니, 배가 고파 콩을 팔아 빵을 사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오백 그램쯤 되어 보이는 땅콩 한 봉지를 내미셨다.
“할머니, 저희는 땅콩이 필요 없어요.”
누나가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그런데 할머니는 조금 다른 계산을 하고 계셨다.
“이거 한 봉지에 만 오천 원이야. 닭칼국수 하나 주고 오천 원 거슬러줘.”
우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누나는 남의 부탁을 거절하는 일이 유독 어려운 사람이다. 필요 없다는 말씀을 몇 번 드리고도 마음이 쓰였는지, 주방으로 들어와 내게 사정을 설명했다.
“어떡하지?”
우리는 그냥 한 그릇 대접하기로 했다. 사정이 어려워 밥을 못 드시는 분께는 한 번쯤 식사를 드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평소에도 이야기하곤 했었다.
칼국수를 끓여 내보냈다. 누나와 눈이 마주쳤다. 괜히 조금 뿌듯했다. 우리 형편에도 이 정도는 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다른 손님들의 눈치를 살폈다.
가게에는 세 팀 정도가 식사하고 계셨다. 할머니의 큰 목소리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으실까. 혹시 소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한 그릇 드리자고 해놓고도 나는 자꾸 홀을 내다봤다.
그때 창가에 앉아 계시던 단골손님이 계산대로 오셨다. 드신 음식값을 계산하고 포장 주문을 하시더니, 누나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저 할머니 식사도 같이 계산해 주세요.”
누나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저희가 드리고 싶어서 드리는 거예요. 계산 안 하셔도 돼요.”
그러자 손님도 손사래를 치셨다.
“저희도 해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같은 말을 서로에게 하고 있었다.
누나는 더 사양하지 않고 감사히 받았다.
나는 할머니가 식사를 마치시면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창가에 계시던 손님이 식사값을 내주셨다고.
그러다 우리가 하려던 일이 떠올랐다.
원래 우리도 한 끼를 대접하고 싶었다. 손님이 밥값을 내주셨다고 해서 그 마음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 곁에 놓인 땅콩이 보였다.
주머니에서 만 오천 원을 꺼냈다.
“할머니, 그 땅콩 저한테 파세요.”
솔직히 내게는 조금 비싼 땅콩이었다.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평소 같았으면 선뜻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사고 싶었다. 사서 조금 나누고 싶었다.
할머니의 식사값을 내주신 손님께 반 봉지를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콩을 두 봉지로 나눴다.
포장한 음식을 가지러 손님이 다시 오셨을 때, 그중 한 봉지를 함께 건네드렸다.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내밀 것이 생겨서 좋았다.
처음에는 우리가 할머니께 밥 한 끼를 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다른 손님들의 눈치를 보는 동안, 창가의 손님은 할머니의 밥값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나는 그 마음을 전해 듣고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누가 먼저 하자고 정한 일도 아니었다.
누나는 내게 “어떡하지?” 하고 물었고, 손님은 “저희도 해드리고 싶어서 그래요”라고 말했다. 나는 땅콩 한 봉지를 사서 둘로 나눴다.
그렇게 각자 할 수 있는 만큼을 보탰다.
할머니는 칼국수를 드셨고, 손님은 포장한 음식과 땅콩 반 봉지를 가져가셨다.
내게도 반 봉지가 남았다.
쉬는 날이 되어 그 오후를 떠올린다. 할머니의 큰 목소리도, 누나의 난처한 얼굴도 생각나지만, 가장 오래 남는 건 계산대에서 서로 손사래를 치던 모습이다.
저희가 드리고 싶어서요.
저희도 해드리고 싶어서요.
땅콩은 절반을 건넸는데, 내게 남은 것이 적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