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가게를 처음 열었을 무렵, 내가 좋아하는 자리가 하나 있었다. 가게 앞에 펼쳐놓은 캠핑의자였다.
손님이 뜸하면 그곳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잠깐 머물렀다 멀어지는 차들을 바라봤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없이, 잠시 밖에 앉아 있는 시간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헐레벌떡 뛰어나오셨다.
“성욱아,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해. 빨리 들어와.”
나는 어머니를 올려다봤다. 의자에 앉아 하늘을 보는 일이 왜 이상한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예전에 내가 지내던 곳에서는 가게 앞이든 어디든 의자를 놓고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인사를 건넸고, 누군가는 그냥 지나갔다. 그곳에서는 그저 잠깐 바람을 쐬는 사람이었던 내가, 여기서는 걱정스러운 아들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은 비가 내렸다.
나는 비를 맞는 것을 좋아한다.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고 눈을 감으면, 빗방울이 눈꺼풀을 가볍게 두드린다. 눈앞은 어두운데 얼굴 위로는 하늘이 닿는 것 같아서, 그 감촉이 좋다.
그날도 그렇게 서 있었다. 어머니가 다시 나와 나를 부르셨다.
“성욱아,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으로 봐. 들어와.”
내가 지내던 곳이었다면 어땠을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누군가가 웃으며 옆으로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같이 비를 맞다가, 젖은 얼굴을 보고 한바탕 웃었을지도.
물론 내 기억 속 그곳이 조금 더 다정하게 남아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 이렇게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말이 답답했다. 나는 잠깐 하늘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자꾸 사람들을 보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이곳에서 나보다 오래 살아오셨다. 누구의 말이 누구에게 닿는지, 가볍게 꺼낸 이야기가 얼마나 오래 남는지도 알고 계셨을 것이다. 아들이 괜한 말에 오르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늘 “들어와”라는 말로 먼저 나왔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아지면서도, 나는 여전히 비가 좋다.
사람은 오래 머무는 곳을 조금씩 닮아가는 모양이다. 말투와 생활의 속도뿐 아니라,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접어두어야 하는지까지 배운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시선도 어느 순간 내 안에 들어와, 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이 될지 모른다.
여기서 오래 살다 보면 나도 비를 맞는 사람을 보고 먼저 “들어가요”라고 말하게 될까. 그 사람이 왜 웃고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전에.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려면 서로를 헤아려야 한다는 걸 안다. 어머니의 걱정도, 이곳 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도 조금씩 알아가고 싶다. 다만 그러는 동안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전부 접어두지는 않았으면 한다.
언젠가 어머니가 가게 밖에 앉은 나를 보며 이렇게 물어보시면 좋겠다.
“뭐가 그렇게 좋아?”
그러면 하늘을 한번 가리키고, 의자를 하나 더 펼쳐드리고 싶다.
“엄마도 잠깐 앉아봐.”
내가 이곳에 물들듯, 이곳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조금은 묻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