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시간의 감촉
아침 일찍 정형외과에 왔다.
족저근막염을 치료하러 왔다.
병원 대기실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다.
대부분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다.
병원 입구에서 노부부를 보았다.
두 사람은 아주 천천히 걸었다.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며 한 사람이 한 걸음을 옮기면 다른 사람도 한 걸음을 옮겼다.
서두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두 사람에게만은 다른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아 보였다.
'저곳은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곳, 그러나 곧 내가 가닿을 자리'
문득 마음이 이상해졌다.
대기실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본다.
말없이 앞을 바라보거나 기웃대며 다른 사람을 살피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는 무표정한 얼굴, 어딘가 화가 난 듯한 얼굴, 그냥 기운이 없어 보이는 얼굴도 있다.
예전에는 그런 표정을 보면 고약하거나 무뚝뚝한 노인일 거라 상상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저 얼굴에도 사정이 있겠지.'
밤새 아픈 무릎 때문에 잠을 설쳤을 수도 있고, 잘 들리지 않는 귀 때문에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되물었을 수도 있다. 집을 나서기까지 젊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그들에게는 아침의 큰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굳이 이런 생각에 이르런 이유는 친정엄마 탓이다.
어제 엄마를 입원시켜 드렸다.
엄마는 귀가 많이 어두워졌다.
잘 들리지 않으니 목소리도 커졌다.
그리고 외로워서인지 사람만 만나면 말을 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묻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왜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하느냐고.
오늘 아침에는 딸아이에게 말 한마디를 잘못했다가 폭탄처럼 쏟아지는 짜증을 변명할 틈도 없이 들었다.
순간 서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그러다가 병원에 와서 이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으니 이상하게도 어제의 엄마가 생각나는 것이다.
내가 엄마에게 보낸 짜증은 단 하루 만에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물론 삶이 그렇게 단순한 인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딸의 짜증은 엄마에게 짜증을 낸 나에 대한 벌도 아니고, 내가 엄마처럼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시간은 가끔 이런 식으로 사람을 한자리에 세워놓는다.
어제는 딸의 자리에서 늙은 엄마를 바라보게 하고,
오늘은 엄마의 자리에서 젊은 딸을 바라보게 한다.
그 사이에는 겨우 하루가 있었다.
얼마 전 읽은 은희경의 <시간의 감촉>을 떠올린다.
바카라을 읽으며 오래 남았던 것은 시간이 달력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지나간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몸 어딘가에 감촉으로 남는다.
같은 시간을 함께 지나온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감촉으로 그것을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늙는다는 것도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날들이 몸에 조금씩 내려앉는 일.
잘 들리던 것이 조금씩 들리지 않고, 빠르던 걸음이 조금씩 느려지고, 혼자 견딜 수 있었던 외로움을 누군가에게 자꾸 말하고 싶어지는 일.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식들은 아직 그 감촉을 알지 못한다.
나도 몰랐다.
어쩌면 지금도 모른다.
다만 오늘 아침 정형외과 대기실에서 아주 조금, 그 시간의 가장자리를 만져본 것 같다.
입구에서 보았던 노부부는 지금 어디쯤 진료를 받고 있을까.
서로에게 몸을 조금씩 기울이며 걷던 두 사람을 생각한다.
젊은 날의 우리는 혼자 똑바로 서 있는 것이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 살아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마지막까지 우리를 걷게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조금 기대고 누군가의 무게를 조금 받아주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저러한 모습으로 대기실의 한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니 어제의 엄마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나와 무관한 세상사람들 얘기를 쏟아놓아도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서겠다 하며 그냥 들어보아야겠다.
시간이 나에게 아직 그럴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두었으므로.
그리고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누구나의 그 언젠가 모든 노년들에게 <시간의 감촉>에 붙인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 우리는 하나의 삶을 여러 번 반복하며 사는 건지도 모른다. 현재가 최근이지만 가장 오래된 날이듯이. 언젠가의 나에게는 첫 순간이 되듯이. 우리 모두 그 언젠가의 시간 속 얼굴이 ' 웃을 때에 가장 예쁜 얼굴'이 되기를 바란다.
- <시간의 감촉> 중 작가의 말에서, p. 382. 은희경,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