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야마는 왜 아직도 '봇짱'을 기억하는가

나쓰메 소세키의 <坊っちゃん(봇짱, 도련님)> 을 따라 걷다

by뭉클

일본 시코쿠 에히메현의 중심도시인 마쓰야마는 오래된 온천과 성, 트램이 남아 있는 도시다.

대도시의 화려함보다는 느리고 조용한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요즘 즐겨 찾는 일본 여행지이기도 하다.

낮은 건물 사이로 전차가 지나가고, 오래된 상점 곁에는 세련된 카페와 작은 특산품점, 소품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은 채 한 거리 안에서 나란히 시간을 이어가고 있었다.

마쓰야마를 걷다 보면 한 이름을 자주 만나게 된다.

봇짱열차, 봇짱시계, 봇짱당고, 도고온천의 봇짱 관련 공간까지 도시 곳곳에 ‘봇짱’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봇짱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坊っちゃん> 봇짱, 우리말로 '도련님'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젊은 시절 마쓰야마의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가 이 도시에 머문 기간은 불과 한 해 남짓이었으나, 그 짧은 교사 생활은 훗날 소설 <도련님>의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 봇짱은 성급하고 솔직하며 세상일에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지방 중학교의 수학교사로 부임한 뒤 학생들의 장난과 동료 교사들의 위선, 조직 안의 권력관계에 부딪힌다.

옳지 않은 일을 보면 참지 못하지만, 사람을 충분히 이해하기 전에 먼저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물이다.

정의롭지만 미숙하고, 솔직하지만 무모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도련님>은 단순한 학교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라는 작은 슬롯 안에서 인간의 허영과 비겁함, 선의와 계산, 정의와 처세가 충돌하는 이야기다.

마쓰야마를 걷는 동안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따라다녔다.

한 작가가 이 도시에 머문 시간은 겨우 한 해였는데, 마쓰야마에는 왜 백 년이 넘도록 그와 <도련님>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일까.


마쓰야마에서 봇짱열차를 처음 만난 것은 여행 둘째 날이었다.

짙은 녹색 차체에 붉은 선이 둘러져 있고, 앞쪽에는 높다란 굴뚝이 솟아 있었다. 나무로 꾸민 작은 객차와 고풍스러운 창, 복고풍 제복을 입은 승무원을 보고 있으니 백여 년 전의 열차가 잘못 시간을 건너와 오늘의 거리에 멈춰 선 것 같았다.

봇짱열차는 마쓰야마를 달렸던 옛 증기기관차의 모습을 되살린 관광열차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에도 주인공이 작은 열차를 타는 장면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그 기억을 소설의 제목과 함께 ‘봇짱열차’라고 부르게 되었다.

오늘날의 자동차와 노면전차 사이에 놓인 작은 열차는 소설 속 한 문장이 백 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의 마쓰야마를 달리는 모습처럼 보였다.

딸은 열차를 발견하자마자 소리쳤다.

“완전 럭키다!”

하루 운행 횟수가 많지 않아 일부러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타기 쉽지 않은 열차였다.

일반 전차보다 훨씬 비싼 요금에 잠시 망설였지만, 여행에서 이런 우연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우리는 봇짱열차의 작은 객차에 올라탔다.

덜컹거리는 차창 밖으로 마쓰야마의 풍경들이 천천히 지나갔다.

오래된 열차 안에서 마쓰야마의 거리를 바라보는 동안, 과거와 현재가 잠시 같은 선로 위를 달리는 것 같았다.

딸은 우리에게만 부여된 뜻밖의 행운을 만난 사람처럼 여러 번 “럭키”라고 말했다.

그날의 우리는 잘 웃고 있었다.


다음 날 소세키의 흔적을 따라 찾아간 곳은 ‘소세키 카페 애송정’이었다.

마쓰야마성 아래 반스이소 곁의 푸른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오래된 별장처럼 고요한 카페가 나타난다.

이곳은 단순히 소세키의 이름을 빌린 카페가 아니었다.

젊은 소세키가 마쓰야마중학교의 영어교사로 부임한 뒤 한동안 머물렀던 하숙집 ‘애송정’의 이름과 기억을 이어받은 장소였다.

백여 년 전에 낯선 지방도시에 처음 도착한 젊은 교사가 이 언덕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아직 <도련님>을 쓰기 전의 소세키가 이곳에서 학교로 출근하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이 떠나온 도쿄와 마쓰야마 사이의 거리를 가늠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바라보았을 풍경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었다.

봇짱열차와 시계탑처럼 소설 이후에 만들어진 흔적도 흥미로웠지만, 애송정에는 작품보다 앞선 한 인간의 시간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작가가 되기 전의 소세키, 아직 한 편의 소설로 정리되지 않은 채 낯선 학교와 도시를 살아내던 젊은 교사의 시간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더운 날씨에도 언덕을 올라 그곳을 찾아갔다.

고전적인 분위기의 공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소세키가 이 도시에서 보낸 날들과 소설 <도련님>이 태어나기 전의 시간을 천천히 상상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카페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출입을 막는 표지가 놓여 있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에서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 닫힌 문 앞에서 딸과 나의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사실 문이 닫혀 있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여행 내내 조금씩 쌓였던 피로와 서운함이 그 문을 핑계 삼아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것 같다.

딸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찾고 일정을 맞추느라 지쳤을 것이고, 내가 하는 말 가운데 어떤 것은 지나치게 무겁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35도를 넘나드는 지독한 더위도 크게 한몫했을 것이다.

여행은 사람을 낯선 곳으로 데려가지만, 익숙한 관계의 균열도 낯설게 드러낸다.

평소에는 지나칠 수 있었던 말이 여행 중에는 더 크게 들리고, 오래 묵은 감정까지 흔들어놓는다.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상대의 속도와 취향, 약점까지 오래 견뎌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잠시 잊고 있었다.

그 순간 우리는 문학기행의 우아한 주인공들이 아니라, 더위와 피로에 지친 평범한 엄마와 딸이었다.

“이번에는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놀다 와.”

남편의 배웅 인사는 이성이 조금 돌아온 뒤에야 생각났다.


“도고온천 족욕탕에 갈까?”

딸이 먼저 말을 걸었다.

우리는 다시 도고온천으로 향하는 트램에 올랐다.

전차 안은 다른 날보다 한산했다.

창밖으로 낮은 건물들이 천천히 지나갔다.

하늘은 유난히 파랗고, 흰 구름은 뜨거운 여름날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선명했다.

딸은 어느새 휴대전화를 들어 차창 밖의 풍경을 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울고 화내던 아이가 다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보았을법한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전차가 지나가는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을 조용히 화면에 담고 있었다.

마음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딸은 다시 풍경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런 딸의 모습을 바라볼 여유를 되찾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도고온천장 언덕 위 족욕탕에 도착했다.

아래로는 오래된 도고온천 본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겹겹의 지붕과 목조건물의 선은 마치 오래된 이야기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온천장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더구나 소세키의 <도련님> 속 주인공이 즐겨 찾았던 바로 그 온천이었다.

소설과 영화, 백 년 전의 시간과 오늘의 여행이 한 풍경 안에 펼쳐지고 있다.


뜨거운 온천물에 발을 담갔다.

처음에는 발끝이 아릴 만큼 뜨거웠다.

금방이라도 발을 빼고 싶었지만 조금만 더 견뎌보기로 한다.

뜨거운 물속에 담긴 발끝에서부터 온몸으로 피가 유연하게 퍼져 나가는 듯하다.

처음 따끔하고 짜릿했던 열기가 종아리를 타고 온몸으로 느슨하게 풀려갔다.

견디기 힘들었던 바깥의 더위는 더 이상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열치열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때까지 미처 느끼지 못했던 바람도 불어왔다. 언덕을 타고 올라온 가벼운 바람이 달아오른 얼굴을 천천히 식혀주었다.

마음은 명상하듯 차분해졌다.

조금 전까지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서운함과 미안함도 온천수 속으로 조금씩 풀려 내려가는 듯했다.


우리 곁에는 모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족욕중이었다.

딸은 내 딸과 비슷한 또래쯤 되어 보였다.

엄마는 뜨거운 물이 오히려 시원하다며 이 정도쯤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고, 딸은 왜 굳이 힘든 것을 참아야 하냐며 티격태격 실랑이 중이다.

옆자리의 딸은 여전히 뜨겁다며 발을 들었다 놓았고, 어머니는 조금만 더 있어 보자며 웃었다.

투정과 달램이 오가는 그 짧은 대화 속에서, 부모와 자식이 평생 반복하는 익숙한 장면이 보였다.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각자가 느끼는 온도만큼은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몇 번이나 물의 온도를 확인하더니 딸도 나를 따라 발을 담긍다.

" 엄마, 진짜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아, 마음도 차분해지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행복해졌다.

화해란 어쩌면 모든 말을 다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같은 온도 속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의 속도를 맞추는 일이었나 보다.


족욕을 마치고 언덕을 내려오는 길 도고온천장 앞에 세워진 나쓰메 소세키의 봇짱(도련님)

기념비를 본다.

거기에는 소설 <도련님>의 문장이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무모함 때문에 어릴 때부터 손해만 보고 살아왔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학교 건물 2층에서 뛰어내렸다가 일주일 정도 허리를 삐어 일어나지 못한 적이 있다.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무모한 성미 때문에 어릴 적부터 손해만 보았다...
-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중에서

사람은 부모에게 얼굴과 체질만 물려받는 것이 아닐 것이다.

쉽게 상처받는 마음, 성급하게 판단하는 습관, 사랑하면서도 거친 말로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까지도 알게 모르게 이어받고 전해준다.

나는 딸에게 무엇을 물려주었나.

딸의 말과 태도 속에는 분명 나를 닮은 부분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내가 딸에게 언짢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 가운데 일부는 어쩌면 오래전 내가 누군가에게 건넸던 -이를테면 우리 엄마- 표정과 말들이 되돌아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도련님>의 주인공은 옳지 못한 일을 보면 참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의 판단을 너무 쉽게 믿고, 분노를 정의와 혼동하기도 한다.

그날의 나 역시 딸의 마음을 충분히 듣기 전에 내 화부터 챙겼는지 모르겠다.

족욕탕에서 우리는 같은 물에 발을 담그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 마음을 맞추었다.

그리고 소세키의 문장 앞에서 나는 화해가 상대를 이해하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화해는 때로 내 안의 미숙함을 들여다보는 일이 우선이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한 작가는 오래전에 마쓰야마를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인물과 문장은 여전히 이 도시의 열차와 시계, 온천과 거리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나에게 마쓰야마는 딸과 말다툼하고 다시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을 회복한 도시로 남게 되었다.

도시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에 붙여지는 또 하나의 이름인지도 모른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