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 Moscow
도착 : Kin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채 새벽 3시에 준비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모스크바의 이정표를 따라왔지만 내가 60일 이내 최종적으로 도착해야 하는 곳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이다. 그곳에서 국경을 통과하여 러시아를 빠져나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남은 거리는 약 700km.
남은 시간은 7일.
국경에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 며칠의 여유를 좀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대한 갈 수 있는 데 까지 달리다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다른 도움 없이 내 힘으로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모스크바에서 샹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몇 번이나 사람들에게 물으며 헤매던 중, 일반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안드레이라는 분을 만났다. 그는 일부러 약 7km를 함께 달리며 큰 도로까지 안내해 주었다. 혹시 어려움이 생기면 연락하라며 자신의 연락처까지 적어 주었다.
오전 9시쯤 상트페테르부르크 방면으로 향하는 길목의 카페에 도착해 햄버거를 주문했다. 긴장으로 가득했던 지난밤이 지나고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식당에 앉아 있으니 긴장이 풀리고 저절로 눈이 감겼다. 햄버거를 먹으며 의자에 기대 잠시 눈을 붙였다.
가까운 모텔에서 제대로 쉬어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근처 숙박업소를 찾았다. 하지만 숙박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몇 곳을 들렀지만 모두 안된다는 이야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어떠한 이유도, 설명도 없다. 그저 그들은 "NO!"만 외칠뿐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길을 나섰는데,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승용차 한 대의 사이드미러가 부서져 있었고 차체에도 흠집이 나 있었다. 운전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상황을 보니 다른 차량과 접촉사고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내 자전거까지 충격을 받은 듯했다. 곧 경찰차가 도착해 괜찮으냐고 물었다. 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어 큰 이상은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앉아 있다 보니 머리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고 오른쪽 어깨도 아파왔다. 하루쯤 자고 나야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후, 구급차도 도착했다. 우선은 큰 외상은 없었기에 괜찮다며 돌아가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경찰은 사고 관련 서류를 작성한 뒤 서명을 요구했고, 서명을 마치자 떠났다. 계속하여 나를 걱정하는 운전자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안심시킨 뒤 그 자리를 먼저 벗어났다.
다시 길을 나섰지만 아무리 달려도 쉴 만한 곳 하나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소낙비까지 쏟아졌다. 급히 비옷을 입고 오토바이 라이더에게 물어보니 약 20km를 더 가면 숙소가 있다고 했다.
부지런히 달려 도착해 보니 화장실만 있는 간이 쉼터였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더는 움직이기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오늘도 텐트를 쳐야겠다는 생각에 매트를 펴고 앉아 잠시 쉬었다.
정말 계획하지 않은 사건과 사고가 끊임없이 생긴다.
그때 기적처럼 도로공사 인부들이 다가왔다. 이 길에는 숙소가 없으니 근처 시내까지 태워 주겠다고 했다. 어깨도 아프고,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어 휴식이 너무나도 필요한 터라 감사한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마을 입구에서 내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숙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번에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숙박이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난감해하고 있는데 젊은 직원 두 분이 포기하지 않고 여러 지인에게 연락을 돌렸다. 마침내 그들은 방을 마련해 주었고, 덕분에 무사히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숙박을 거절당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지만, 끝까지 방법을 찾아 방을 마련해 준 두 분과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