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페달이 멈춘 하루, 길을 접어 가방에 담다.

by김영교

출발 : Saint Petersburg

도착 : Tallinn (에스토니아)


호텔에 투숙한 뒤 가장 먼저 자전거포를 찾아갔다. 우랄산맥을 넘는 동안 가장 혹사했던 자전거를 점검받기 위해서였다. 브레이크 패드가 모두 닳아 새것으로 교체했고, 체인 오일도 구입했다. 타이어 공기압도 점검했다. 말썽을 부리던 가민도 살펴보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찾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제발 제대로 작동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러시아 루블화는 러시아를 벗어나면 사용하기 어려우므로 카드에 남아 있는 루블은 모두 현금으로 인출해 유로화로 환전할 계획이었다. 핀란드로 가는 방법을 두고 이기상 님께 상의드렸는데, 여러 가지 좋은 방법을 알려 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기상 님 부부께서는 이번 여행에서 곤란한 상황에 빠질 때마다 해결바카라을 제안해 주시며 크나큰 도움을 주셨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기상 님의 조언을 받아 에스토니아를 거쳐 탈린까지는 직행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호텔 프런트에 도움을 요청하자 직원도 다소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친절하게 알아봐 주었다. 자전거를 가지고 버스로 이동하는 일이 흔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버스는 하루 두 번 운행하며, 소요 시간은 약 10시간이라고 했다.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카운터 앞에 서 있었지만, 중국인 관광객들이 체크아웃을 하느라 호텔은 몹시 분주했다.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근처 자전거점에 가 보니 자전거 분해와 포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택시를 타든 배를 타든 어차피 자전거를 포장하는 편이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9시까지 작업을 부탁하고 자전거를 맡겨 두었다.


이후 루블화를 환전하려고 은행을 찾아갔지만, 규모가 작은 은행이라 환전 업무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헛걸음을 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터미널에 문의했다. 버스에 자전거를 싣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해한 뒤 정해진 규격에 맞게 포장해야 탑승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시 자전거점에 들러 규격을 알려 주고 포장을 부탁했다. 이번에는 더 큰 은행으로 향해 환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좋지 않은 몸 상태로 계속 걸어 다녔더니 정강이 통증이 더 심해졌다. 약국에 들러 연고를 사서 바르고, 큰 봉투를 구해 짐을 한 곳에 대충 정리한 뒤 침대에 누워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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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30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으로 가는 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하는 직행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무리하게 강행군을 하며 모스크바를 통과하다가 작은 사고를 겪었다. 그 때문에 자전거를 계속 타고 이동하기에는 부담이 생겼고, 결국 트럭을 이용해 먼 거리를 건너뛰는 방법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계획대로 달리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평생 잊지 못할 경험과 따뜻한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도 새벽 일찍 준비를 마치고 프런트로 내려오니 여직원이 친절하게 택시를 불러주며, 탑승할 때까지 끝까지 챙겨 주는 모습이 고마웠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5성급 호텔에 묵어 보았는데, 여러 가지 서비스를 받으며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그동안 길 위에서 겪었던 고생을 생각하면 더욱 특별한 경험이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는 인상이 참 좋은 부부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두 분은 무거운 가방까지 직접 들어주며 매표소까지 안내해 주었다. 자신들은 오전 6시 버스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간다면서, 직원들에게 내 티켓 발권을 잘 도와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한 뒤 떠났다. 낯선 사람을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 주다니.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었다.


오전 8시,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다.


자전거로 끝까지 달려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몸 상태를 살펴야 할 때인 것 같다. 걱정이 많았던 러시아 구간을 무사히 마쳤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동안 도움을 주신 수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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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러시아 출국심사가 시작되었다.

절차는 예상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대부분 승객의 짐을 모두 열어 검사했고, 시간도 상당히 오래 걸렸다. 나 역시 짐이 많아 진땀을 흘렸다. 오후 3시 17분, 드디어 버스가 러시아 국경을 통과했다.


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모스크바를 거쳐 58일 동안 약 6,000km를 달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승객들이 박수를 보내 주었다. 그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나의 긴 여정을 함께 기뻐해 주는 사람들.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박수에는 진심 어린 축하가 담겨 있는 듯했다.


잠시 후 에스토니아 입국심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러시아보다도 더 오래 걸렸다. 특히 나는 유난히 의심스러운 눈길을 받는 듯했다. 질문이 계속 이어졌고, 결국 별도의 사무실로 불려 가 여러 가지를 설명해야 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묻는 통에 조금 지칠 정도였다. 긴 심사 끝에 마침내 모든 절차를 마치고 무사히 입국할 수 있었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인지 새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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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에스토니아에 들어서자 차창 밖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끝없이 펼쳐지는 넓은 들판에는 농작물이 가득했고, 언덕 하나 없이 평탄한 대지가 이어졌다. 완연한 농업국가라는 느낌이 들었다. 도로 상태는 매우 훌륭했고 갓길도 넓고 깨끗했다.

저 길을 자전거로 마음껏 달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원래는 오후 7시 10분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국경 심사가 길어지면서 밤 10시쯤에야 탈린에 도착할 것 같았다. 장거리 노선답게 운전기사는 두 명이 교대로 운전했고, 국경검사를 제외하면 휴게소에는 단 한 번만 들렀을 뿐이었다.


밤늦게 마침내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도착했다.

58일 동안 달려온 러시아 대장정이 이렇게 끝났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모스크바를 거쳐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왔다. 때로는 비바람과 맞서야 했고, 몸이 아파도 페달을 밟아야 했다. 사고를 겪고 잠잘 곳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하수구에서 밤을 보내고 눈보라 속에 텐트를 치기도 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고생스러웠던 기억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도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전해지던 진심, 내가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온다. 계획대로 모든 길을 자전거로 달리지는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만남은 결코 작지 않았다.


58일간의 러시아 횡단.

마침내 국경을 넘어 새로운 나라에 첫발을 내디딘 오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하루가 될 것 같다.


이제 또 다른 길이 시작된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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