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모르고 견디는 아이 - 기억#5
신은 나를 쉽게 도와주지 않았다.
내 바람대로 경찰서에 갇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려고 그래? 뭐가 되려고 그래?”
아버지는 귀찮다는 듯 연신 한숨을 쉬며 내 머리를 쥐어박았고,
나는 그렇게 집으로 끌려 들어왔다.
아버지는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으면서,
나한테 관심도 없었으면서,
하필 내가 경찰서에 간 날, 나를 데리러 오셨다.
‘그래도 널 데리러 올 사람은 아빠밖에 없지?’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집으로 끌려가는 게 싫었다.
‘또 어디 가서 술이나 퍼마시지. 왜 들어왔대.’
집 분위기는 또 좋지 않았다.
말로는 다 내 때문이라 했지만,
부모님이 싸우는 이유가 정말 나 때문 같지는 않았다.
괜히 눈에 띄면 또 혼나니까
나는 방에서 조용히 숨어 있어야 했다.
잘 숨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버지가 내 머리채를 잡고 거실로 끌고 갔다.
“아빠는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하니까 엄마 말 잘 듣고 있어.
오늘처럼 문제 일으키지 말고. 알았어? 죽을 줄 알아. 확 그냥…”
“네…”
나는 슬픈 척 조용히 대답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신이 났다.
더 이상 아버지한테 맞지 않아도 되는구나.
수술을 결정하셨는지,
입원하겠다며 짐을 챙기러 들어오신 날이었다.
하필 그날 내가 경찰서에 있었던 거고.
그래도 아버지가 입원하고 수술받는다고 했을 때,
나는 분명 기뻤다.
수술이 잘되길 바랐던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한동안 아버지를 안 봐도 된다는 게 더 좋았다.
부모님이 병원으로 나가자 오빠는 기다렸다는 듯 TV를 틀었다.
우리는 부모님이 외출해야만 TV를 볼 수 있었다.
그때는 손지창, 김민종이 나오는 드라마 <느낌>이 한창 인기였다.
우리 집은 그 시간에 다 같이 거실에 앉아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조용히 오빠 옆에 앉았다.
오빠는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 주고,
내 말을 들어주고,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오빠는 한 번도 부모님이 실망할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아니, 안 들켰던 것 같다.
부모님 외출하자마자 TV를 트는 오빠를 보며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둘이 앉아서 TV를 보는데
오빠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배미영~ 너 오빠랑 이번 주부터 교회 다니자"
“교회? 나 하나님 안 믿는데?”
“그냥 따라와. 집에서 허구한 날 맞는 것보다 낫잖아.”
사실 내가 교회를 다니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어차피 일요일이라고 해서
예전처럼 가족끼리 놀러 가는 집도 아니었고,
집에 있으면 맞거나 방에 갇혀 있어야 했으니까.
차라리 오빠를 따라 교회에 가는 게 나았다.
물론 부모님은 내가 정말 교회를 가는 건지 믿지 않으셨다.
하지만 오빠가 데리고 다닌다는 이유로 허락은 해주셨다.
그렇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 집에 없었고,
엄마는 여전히 바빴고,
여전히 내게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가 입원해 집에 없는 동안,
아니,
정확히는 경찰서를 다녀온 그날 이후부터였다.
이상하게 학교도 조용했다.
나를 괴롭히던 애들도,
집도,
모두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더 이상 나를 건드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담배나 술을 숨기고 다니지 않아도 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모든 건 오빠 덕분이었다.
교회를 오빠랑 가게 돼서는 놀랄 일이 많았다.
"여기 가만히 앉아있어" 말을 하고 사라진 오빠.
두리번두리번 오빠를 찾고 있는데
오빠는 이미 단상에 올라가서 찬양과 율동을 하고 있었다.
'오빠는 이미 교회에 한참을 다닌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율동이나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걸,
나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오빠에게 이렇게 밝은 모습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물론 부모님이 알았다면
오빠도 죽도록 맞았을 거다.
오빠는 교회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자기만의 숨통을 찾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 숨통을 알려주려 했던 것 같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나를 보며 오빠가 불러주고 있다.
처음 보는 오빠 모습이었다.
웃으면서 노래하는 오빠를 보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계속 났다.
키도 크고,
공부까지 잘하던 오빠가
저런 모습으로 웃으며 율동과 노래를 부르니
잘생겨 보이기까지 했다.
교회는 놀랄 일이 그뿐이 아니었다.
이렇게 나를 따뜻하고, 친절한 시선으로 봐주는 사람이 많은지 몰랐다.
한참을 그렁그렁 눈물을 흘리며 쳐다보고 있는데
오빠가 마이크를 잡는다.
"오늘 교회에 새로 온 새 신자분들 자리에서 일어나 주세요. 환영합니다"
하며 눈빛으로 '배미영, 너도 일어나'를 하고 있었다.
나포함 3명이 일어났는데,
마치 내가 상처 많은 아이라는 것을 다 알듯 교인들은 나를 향해 두 손을 들고 찬양을 불렀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 노래를 듣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학교 분위기가 달라졌던 이유는
교회를 나간 뒤 학교를 가자마자 알 수 있었다.
“야, 진짜? 배명이?”
“응. 진짜라니까. 진영오빠 동생이라잖아.”
“와 씨… 말도 안 돼.”
“내가 교회에서 같이 있는 거 봤다니까? 배 씨가 어디 흔한 성이냐?”
“야, 더 놀라운 거 알아? 걔 경찰서 갔던 날 기억나?
양은숙 선생님이 배명 데리고 경찰서 갔었다니까? 엄마라고 부르던데?”
“뭐? 아 씨…근데 저년은 왜 처맞고 있어.”
“야 네가 말했음 안 때렸겠냐?”
화장실 칸 안에서 숨죽여 듣고 있던 수군거림이다.
그때는 그 말들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그 이후로,
마치 내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애들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괴롭히지만 않아도 좋았는데,
다음 날부터는 선물까지 건넸다.
“배명~~ 아… 아니, 미영아. 이거 받아… 오빠한테 좀 전해줄래?”
“미영아, 그동안 미안했어. 내 것도 좀 전해줘.”
나한테 주는 선물은 아니었어도 한순간에 오빠 덕분에 신분이 달라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작 보름 남짓이었다.
'3기라며. 죽을 수도 있다며.
그런데 벌써 치료받고 나온 거야?'
이럴 때 보면 신은 내 기도를 참 이상하게 들어줬다.
미웠고,
그 분위기가 싫었고,
맞는 것도 너무 아팠지만,
그래도 정말 죽는 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아빠가 잘 회복해서 퇴원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더 이상 맞지 않게 해 주세요’
내가 왜 그런 기도를 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의 퇴원은 생각보다 빨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