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나는 부잣집 딸내미

상처를 모르고 견디는 아이 - 기억#3

bybloom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엔 아무도 아버지가 암인지 몰랐다.


아버지는 진작부터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더 이상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바쁘셨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증상이 심해지기 전,

다른 일을 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셨다.


어느 날은 수건을 한가득 들고 들어오셨고,

어느 날은 우산을, 어느 날은 모자를,

어느 날은 게르마늄 팔찌를,

또 어느 날은 자동차 부품에 쓰는 거라며

쇠뭉치를 잔뜩 들고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집에 무언가를 들고 올 때마다

“이거 대박이야. 이번엔 뭔가 달라.”

하며 늘 어머니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듣지 않았고,

그럼 아버지는 또 술을 마시러 나가셨다.

그리고 항상 취해서 들어오셨다.


그러다 건설업에 투자도 하고,

일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방수공사 시공 일을 배우며

제법 진지하게 매달리셨던 것 같다.


이번에는 조금 달라 보였는지

어머니도 보증을 서고 돈을 투자해 주셨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교사여서

공무원 보증이 가능했던것 같다.


사학연금쪽에 여러번 다니셨고

이상하게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지금 생각하면 누군가를 믿고 보증을 선다는것이

많이 힘드셨을것 같다.


나는 중학교에 입학했고,

오빠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날,

한 동네에서 입학식을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차를 타고

이 학교 저 학교를 오가셨다.

그때 아버지 차는 콩코드였다.


입학식 날,
학교 앞에 차가 멈추자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와, 너 부잣집이었어?”


그 당시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아버지는 야구를 그만두신 뒤
건설업을 시작하셨다.


그래.
지금 생각하면 잘살았고,

부모님 직업도 좋았고,

콩코드도 좀 사는집에서나 끌고 다니는 차로 기억한다.
그때까지는 우리 집도 꽤 평범하게 행복했던 것 같다.


물론 어린 나는 몰랐다.
콩코드 한 대가
아이들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말을 만들어내는지.


“부잣집 딸내미.”


그 말은 장난처럼 시작됐지만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조금씩 혼자가 되어갔다.

친구들은 나를 멀리했고,

선배들이 나를 불러 세우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입학식 날 두 분이 함께 와주셨다는 게 참 감사하다.


하지만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던 채
평범하다고 믿으며 살았던 시간의 마지막.


아버지는 점점 술을 더 많이 마셨다.


“누구랑 또 그렇게 마셨어요?”


“어? 박 사장 있잖아~”

“거래처 좀 다녀왔어~”

매일 사람 이름은 바뀌었지만

결국 늘 술에 취해 들어오셨다.


어떤 날은 출근도 하지 않고

눈 뜨자마자 술을 찾았다.

그리고 잠들 때까지 마셨다.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게 얼마나 큰 일인지 몰랐다.

그저 병원에 자주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집안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는 것.

딱 그 정도로만 느껴졌다.


어머니는 더 예민해졌고,

아버지는 더 괴팍해졌다.

집에서는 더 이상 웃음소리가 나지 않았다.


방문 닫히는 소리,

한숨 쉬는 소리,

엄마의 울음소리,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

작게 낮춘 목소리로 이어지는 대화들.

나는 그 소리들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괜히 숨을 죽이게 됐다.


'또 싸우는구나'


집에 있는데도

집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게 됐다.

그렇게 오빠와 나는

점점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다.

암에 걸린 걸 가족들이 다 알게됐을때도

아버지는 매일 술을 사 들고 들어오셨다.


“또 술이야? 아직도 그게 마시고 싶어요?”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이리 내!”

“아휴… 죽어야 끝나지, 죽어야…”

“죽더라도 내가 죽어! 이리 내!”

그 말들은 거의 매일 반복되었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술 마신다는 아버지의 말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의술이 좋아져

암도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고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오히려 암에 걸리고도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보며

버틸 만하니까 저러는 건가,

아주 가볍게 생각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아버지를 말리다가 혼나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술을 사 와도 혼났다.


어머니 편을 들어도 혼났고,

아버지 말을 들어도 혼났다.


그때부터 나는

눈치를 보는 아이가 되었다.

어른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먼저 살피게 되었고,

언제 말을 꺼내야 하는지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웃어야 할 때와

조용히 있어야 할 때를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게 됐다.

나는 점점 말을 줄였다.

괜히 눈에 띄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냥 없는 사람처럼 있는 게
가장 안전했다.

술과 담배가 우리 집을 망쳤다고 생각했던 나는

어느 날부터 아버지 술과 담배를 몰래 숨기기 시작했다.


없어져도 아버지는

“내가 벌써 다 마셨나?”

하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 술과 담배를 숨겨두던 곳은

내 방 베란다였다.


언젠가 청소를 하러 들어온 어머니에게

그것들을 전부 들켰다.

“이년이, 너 이거 다 뭐야.”

“아니… 아빠 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맞았다.


어머니는 삶의 여유가 많이 없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도, 오빠도, 그리고 내 말도

끝까지 들어주지 못했다.


왜 맞는지도 모른 채

설명할 시간도 없이

혼나고 맞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입학식 날 콩코드를 타고 온 아이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차를 본 아이들의 눈빛이

내 학교생활까지 바꿔놓게 될 줄은.


입학식 날 모두가 부러워하던 그 차가

나를 가장 오래 괴롭히게 될 줄은.


“어이~ 부잣집 딸내미~

담배 좀 사 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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