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졸여낸 고등어조림

고등어 무감자조림

by굳데이


해외에서 지내다가 한국으로 출장을 오면 시차보다 먼저 온몸 구석구석을 채우는 것이 있었다.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사람은 먼 곳으로 떠날수록 가장 익숙하고 사소한 맛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일정이 바쁘고 피곤해도 귀국 후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꼭 들르는 곳이 있었다. 일산에 있는 '어랑 생선구이'라는 작은 식당이다.


여전히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내 속은 여전히 외국의 시간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 집의 칼칼한 생선조림과 구이만큼은 부대낌 없이 부드럽게 넘어갔다.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빨간 국물, 따뜻한 밥 한 숟가락과 짭조름한 생선 한 점을 입에 넣을 때마다 팽팽했던 긴장이 스르륵 풀렸다. '아, 드디어 한국에 돌아왔구나.' 그 뭉클한 안도감은 시차라는 거대한 장벽을 가뿐히 뛰어넘게 만들었다.


나는 원래 고등어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내게 고등어는 특별할 것 없는 생선이었다. 시장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고, 우리 집 식탁에도 자주 올랐다. 그만큼 고등어는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의 밥상을 든든하게 채워주던 익숙한 생선이었다.


어머니는 고등어를 노릇하게 구워주시기도 하고, 무를 듬뿍 넣어 조림을 해주시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기다리던 것은 고등어조림이었다. 어머니가 고등어를 조릴 때면 냄비 바닥에는 큼지막한 무가 넉넉하게 깔려 있었다. 신기하게도 내 젓가락은 언제나 고등어보다 무를 먼저 향했다. 간장과 고춧가루 양념을 깊이 머금은 무는 생선보다 더 달고 깊은 맛을 냈다. 입안에서 사르르 풀어지는 그 시원한 단맛만으로도 밥 한 공기를 비울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내게 고등어조림의 진짜 주인공은 고등어가 아니라 언제나 무였다.


오랫동안 내 머릿속의 고등어조림 공식은 '고등어와 무' 단둘뿐이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우리 집 식탁에 조용한 변화가 찾아왔다. 아내는 생선조림을 할 때마다 둥글넓적하게 썬 감자를 넉넉히 넣었다. 처음에는 어딘가 낯설었다. 내게 고등어조림은 무로 완성되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양념을 머금은 감자를 한입 맛본 뒤 생각이 달라졌다. 포슬포슬하게 익은 감자는 짭조름한 양념을 고스란히 품은 채 묵직한 고소함을 전했다. 무가 시원하고 담백한 맛으로 국물의 깊이를 더한다면, 감자는 양념의 풍미를 온전히 끌어안아 또 다른 즐거움을 선물했다. 둘은 같은 냄비 안에서 익어갔지만 전혀 다른 매력으로 존재감을 뽐냈다.


그날 이후 내 젓가락은 무와 감자 사이를 바쁘게 오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도 조림 속 감자를 먼저 찾는 사람이 되었다. 유년의 추억이 깃든 무와 아내가 사랑하는 제철 감자가 한 냄비 속에서 함께 보글보글 익어가는 풍경. 그것은 서로 다른 삶을 살던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새로운 식탁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과 닮아 있었다.


7월 초는 본격적인 삼복더위를 앞두고 장마가 한창 이어지는 시기이다. 후텁지근한 공기에 입맛을 잃기 쉽지만, 비가 내리는 날이면 따뜻한 밥과 칼칼한 생선조림이 더 간절해진다. 보글보글 끓는 빨간 국물과 푹 익은 재료들은 눅눅한 장마철 식탁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밥도둑이다.


며칠 전 시장에 들렀더니 햇감자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여름 무가 싱싱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계절은 이렇게 시장에서 가장 먼저 말을 건넨다.


마트에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고등어를 집어 들고도 나는 무와 감자를 고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맛있는 고등어조림이 고등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제철 여름 무와 햇감자까지 장바구니에 담는 순간, 오늘 저녁 메뉴는 이미 정해졌다. 어랑생선구이에서 맛보았던 고등어조림의 여운과 부산에서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냄비의 기억이 문득 겹쳐졌다. 결국 그 그리움이 나를 다시 부엌으로 이끌었다.


도톰하게 썬 여름 무와 감자를 냄비 바닥에 깔고 물과 다시마, 양념장을 넣어 먼저 끓인다. 국물이 끓어오르면 손질한 고등어와 양파를 올리고 양념장을 더해 중불에서 천천히 조린다. 중간에 다시마를 건져내고 마지막으로 대파와 고추를 넣어 한소끔 더 끓인다.


불을 줄이고 기다리는 동안 냄비 안에서는 조금씩 맛이 익어간다. 무는 양념을 가장 오래 견디며 제 안의 시원한 단맛을 천천히 국물에 풀어내고, 고등어는 서서히 살을 풀어내며 깊은 감칠맛을 더한다. 감자는 그 맛있는 국물을 차곡차곡 머금은 채 포슬포슬하게 익어간다. 서로 다른 재료들이 각자의 맛을 조금씩 내어주며 하나의 음식으로 어우러지는 시간이다.


주방 가득 칼칼하고 구수한 향이 퍼지고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려오면, 비로소 우리 집 저녁 식탁이 차려진다.






# 재료


고등어 2마리, 청주 2Ts, 식초 2Ts, 무 300g, 감자 200g, 양파 200g, 청. 홍고추 5개, 대파 2/3대, 물 300cc

양념장 1( 물 1Ts, 간장 5Ts, 멸치액젓 1Ts, 새우젓 1Ts, 알룰로스 2Ts ), 양념장 2( 고추가루 3Ts, 다진마늘 1Ts, 생강 1ts, 후추 1/2 ts ), 다시마 약간



# 요리 과정


손질한 고등어(지느러미, 내장막, 핏물 제거)가 잠길 정도의 물에 청주 2큰술과 식초 2큰술을 넣고 5분 이상 담가 비린내를 제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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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를 은행잎 모양으로 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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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썰어서 물에 넣어 전분기를 제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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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를 채 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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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대파(반으로 가른다)를 어슷 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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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장 1을 만든다 (물, 간장, 멸치액젓, 새우젓, 알룰로스를 넣고 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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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장 2(고추가루 다진마늘, 생강, 후추)를 섞은 후 숙성시켜 양념장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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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감자를 냄비 바닥에 깔고 양념장 1 Ts, 물 300cc, 다시마를 넣고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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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으면 고등어, 양파, 양념장 3 Ts 를 넣고 중불에서 10분 조린다(끓고 나서 5분 후에 다시마를 걷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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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대파를 넣고 5분 더 조린 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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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고등어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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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들여다본 고등어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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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지은 따뜻한 밥 위에 푹 졸여진 무와 감자, 그리고 두툼한 고등어 살점을 차례로 얹어 입안 가득 넣는다. 혀끝을 스치는 칼칼한 양념 뒤로 통통하게 오른 고등어 살코기의 고소한 풍미와 담백한 감칠맛이 입안 가득 묵직하게 번진다. 매콤한 양념을 듬뿍 머금은 부재료들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조화는 지친 여름날의 피로와 눅눅했던 공기를 단숨에 날려 보낼 만큼 따뜻하고 포근하다. 마지막 남은 감자 한 조각을 두고 아내와 은근히 눈치를 보며 젓가락을 맞대는 순간, 식탁 위로 자그마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입맛은 조금씩 변해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등어조림 앞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어릴 적 무만 쏙쏙 골라 먹던 부산의 꼬마는 여전히 내 안에 살고 있고, 고등어조림을 마주할 때마다 그 시절로 천천히 돌아간다.


바쁜 일상에 치여 이제는 예전만큼 이 요리를 자주 끓이지는 못한다. 그래서인지 이 한 냄비는 우리 부부에게 더욱 귀한 음식이 되었다. 냄비 뚜껑을 열 때 피어오르는 김 속에는 부산의 바다 내음이 스며 있던 어린 시절도, 해외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생선조림 한 점에 위로받던 시간도, 그리고 마주 앉아 감자 조각을 나누어 먹는 아내의 다정한 얼굴도 모두 녹아 있다.


한 냄비의 고등어조림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기억이 함께 졸여지고 있는 셈이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