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마루에서 먹었다

강된장과 호박잎

by굳데이

여름은 이상한 계절이다. 푹푹 찌는 더위가 이어지면 입맛부터 달아난다. 냉장고 문을 몇 번이나 열어보아도 마땅한 반찬은 떠오르지 않고, 불 앞에 서는 일조차 망설여진다. 그렇다고 밥을 거를 수는 없다. 그럴 때 우리 집 식탁에는 늘 강된장과 호박잎이 오른다.


보글보글 자작하게 끓인 강된장을 뜨거운 밥 위에 한 숟갈 올리고, 부드럽게 삶은 호박잎으로 감싸 한입 먹으면 다른 반찬은 자연스레 뒷전이 된다. 화려한 음식은 아니지만, 여름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밥상이다.


해마다 7월이 되면 시장 가판대 한쪽을 푸르게 채운 호박잎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거칠고 까칠한 잎을 보면 늘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잎도 사람 손을 거쳐야 비로소 밥상이 되는구나.'


줄기 끝을 꺾어 질긴 껍질을 벗기고, 한 장 한 장 깨끗이 씻어 김 오른 찜기에 올린다. 그러면 억세 보이던 호박잎은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숨이 죽는다. 초여름 뙤약볕을 견디며 자란 거친 잎이 사람의 손길을 만나 한없이 부드러워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음식도 기다림과 정성이 있어야 제맛을 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껍질을 벗겨내는 매끄러운 손길 위로 오래된 기억 하나가 따라온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어머니는 시장에서 사 오신 호박잎이 가득 담긴 양푼을 내밀며 줄기를 까 보라고 하셨다. 연한 겉껍질을 결 따라 벗겨내는 일은 어린 나에게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마루 한편에 앉아 그 소박한 심부름을 곧잘 해내곤 했다.


반면 고구마 줄기를 까는 일은 영 달랐다. 껍질도 유독 질긴 데다 손끝에 끈적한 진액이 묻어 다 까고 나면 손톱 밑이 온통 까맣게 물들곤 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시장에 가면 고구마 줄기는 조금 비싸더라도 손질된 것을 사게 되면서도, 호박잎만큼은 날것 그대로 사 와 줄기를 손수 벗기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자처하곤 한다.


한여름이 되면 우리 집 밥상은 자연스럽게 마루로 옮겨졌다. 어머니는 큰 양푼에 삶은 호박잎을 담아 오시고, 커다란 냄비에는 강된장을 넉넉하게 끓여 놓으셨다. 손이 크셨던 어머니는 음식을 늘 푸짐하게 하셨다. 네 남매가 얼마나 잘 먹는지 누구보다 잘 아셨기 때문이다. 구수한 강된장 하나면 우리 가족의 여름 밥상은 이미 충분했다.


특히 중학생 시절의 여름은 더욱 선명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배가 어찌나 고프던지 가방을 방에 둘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마루에 걸터앉아 숨을 돌리고 있으면 어머니는 말없이 밥 한 그릇과 강된장을 가져다주셨다. 강된장을 밥 위에 듬뿍 올려 쓱쓱 비벼 먹었다. 다른 반찬은 없어도 괜찮았다. 한창 먹성이 좋던 시절이라 밥 두 공기쯤은 금세 비웠다.


그때는 그저 강된장이 맛있어서 먹는 줄만 알았다. 이제 와 돌아보니 내 허기를 채워 준 것은 강된장만이 아니었다. 자식들이 배부르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마음이 함께 담겨 있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 뒤에도 여름이 찾아오면 나는 습관처럼 시장에서 호박잎을 산다. 가판대의 싱싱한 초록빛 호박잎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여름이면 입맛이 없다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달고 살면서도, 데친 호박잎에 강된장을 올려 밥을 싸 먹고 있노라면 문득 그 시절 마루에 앉아 허겁지겁 밥을 먹던 배고픈 중학생 소년이 마음속에서 불쑥 걸어 나온다. 식탁 위의 음식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 밥상을 마주한 사람만 세월을 지나왔다.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흉내 낼 수는 없지만, 여름이면 어느새 나도 어머니처럼 강된장을 끓이고 호박잎을 찐다.


호박잎은 줄기의 질긴 껍질을 벗겨 깨끗이 씻은 뒤 찜기에 쪄낸다. 김을 머금고 부드럽게 익은 호박잎은 싱그러운 초록빛과 은은한 향을 품어 강된장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여름 쌈이 된다.


강된장도 만드는 법은 소박하다. 다진 마늘과 멸치를 볶아 향을 낸 뒤 채소를 넣어 익히고,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자작하게 끓인다. 마지막으로 두부와 대파, 청양고추를 넣어 한소끔 더 끓이면 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그릇을 든든하게 비워낼 수 있는 구수한 강된장이 완성된다.







# 재료


감자 1개, 양파 반 개, 애호박 반개, 표고버섯 2개, 두부 100g, 대파 반 개, 청양고추 3개, 멸치 30g, 다진마늘 1Ts, 된장 3Ts, 고추장 1Ts



# 요리 과정


손질한 호박잎( 질긴 섬유질 깝질 제거, 세척)을 찜기에서 5분간(김이 오른 후) 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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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와 애호박을 잘게 토막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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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과 감자를 잘게 토막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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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와 고추를 쏭쏭 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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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질한 멸치(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것)를 전자레인지에 1분간 돌린 뒤, 손으로 잘게 부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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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를 칼등으로 곱게 으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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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에 식용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멸치를 넣고 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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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를 넣고 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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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약간 붓고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5분 정도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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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대파, 고추를 넣고 5분 끓여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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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한 강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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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된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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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들여다본 강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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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된장과 호박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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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완성된 강된장은 멸치에서 우러난 깊은 감칠맛에 두부의 부드러움과 표고버섯의 쫄깃한 식감이 어우러져, 숟가락으로 듬뿍 떠먹어도 짜지 않고 속을 편안하게 채워준다. 양파의 은은한 단맛과 청양고추의 칼칼한 끝 맛은 달아났던 여름 입맛을 자연스럽게 되살려 준다.


넉넉하게 한 냄비 끓여서 한 김 식힌 뒤 냉장고에 넣어두면, 찬 기운이 돌아도 그 나름의 깊은 풍미가 있어 밥에 쓱쓱 비벼 먹기만 해도 훌륭하다. 무더운 여름날, 이 소박한 반찬 하나만 냉장고에 버티고 있어도 며칠 동안은 반찬 걱정을 덜 수 있어 마음까지 든든하다.


호박잎에 밥 한 숟갈과 강된장을 올려 천천히 쌈을 싼다. 그 한 입에는 여름을 견디는 지혜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차려 주셨던 여름 밥상이 함께 담겨 있다. 어머니가 차려 주셨던 여름 밥상은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은 채, 오늘도 나의 식탁 위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