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수상한 그녀

낯선 땅에서 육아 동지는 진리다 #1

by봄날의 곰


자타공인 쫄보 가라사대.


낯선 이를 덥석 믿어서는 안 된다.


왜냐고? 무서우니까.


살면서 뭐가 제일 무섭냐고 묻는다면

귀신, 호환마마, 불량식품, 전염병……


아니다. 나는 사람이 무섭다.


귀신은 착하게 살면 막판에 내 사정을 좀 봐줄 것 같은데, 사람은…… 쓰읍, 뒷말은 아끼겠다.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람이 무서우면서도 관심은 또 많다는 거다. 무섭지만 알고 싶고, 두려우면서도 가까워지고 싶은 이 마음.


이 망할 놈의 호기심.


꼭 공포영화에서 극 초반에 몹쓸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이 제일 먼저 죽던데,


혹시 난가……?


그렇다고 사람 없는 무인도에 들어가 살 수도 없는 노릇. 그래, 인간은 슬롯적 동물이니 어차피 함께 살아야 한다면 최대한 조심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타국 생활이 고단해질 때 가장 의지가 되는 존재는 아무래도 내 나라에서 온 말이 통하는 한국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경계해야 할 존재 역시 한국인이다.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이모는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현지 성당이나 교회 같은 데서 급하게 친해진 한국인을 조심해야 해. 거기서 사기당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거든. 나도 초반에 몇 번 큰일 날 뻔했어."


종교모임, 친분, 한국인, 그리고 사기. 이 단어들의 조합은 제법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냉소적인 농담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엄연한 실화였다. 모든 것이 낯선 초기 이민 시절은 누구에게나 고되고 막막한 법이고 세상물정 모르는 신입들은 새로운 세계에서 좋은 먹잇감이 되곤 한다. 결국 그 얄팍한 호의 끝에는 불미스러운 돈 문제가 따라붙기도 했다. 꼭 뉴스에 나오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건너 건너 사정을 들어보면 비슷한 일을 겪은 이들이 한둘은 꼭 있었다.


'신뢰를 이용해서 도와주지 못할망정 한국인끼리 뒤통수를 치다니…….'


처음에는 들으며 분개했지만, 한국에서도 대부분의 범죄가 가까운 사이에서 벌어진다는 이치를 곱씹어보면 이 또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슬펐다.


말이 통해야 친분이 쌓이고, 그 친분을 토대로 좋은 인연도 쓰라린 악연도 싹트는 법이니까. 다만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 보니 낯선 이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게 훗날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먼저 계산하고 경계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했다. 그래, 당하는 사람이 바보라서가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쁜 거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성선설을 믿기에는 나 역시 소소하게 데인 적이 있었고, 냉정하게 말해 타국에서 특히 이유 없이 친절한 사람들은 조심하는 편이 훨씬 안전했다.



하지만 조심과 경계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온몸의 가시를 바짝 세운 채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온기에 무장해제되는 순간도 있었다.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이에게서 대가 없는 호의를 건네받는 순간. 그 짧은 찰나에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의 빗장이 풀린다. 어쩌면 다시 타인을 믿어볼 용기도 생겨난다. 그리고 그 사소한 용기는, 우리를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인연으로 이끌어주는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이 로또 확률에 버금가는 행운이 언제 찾아올지는 누구도 미리 알지 못했다.



원래 육아란 홀로 감당하기에는 외롭고 고단한 부분이 있다.

대부분의 엄마는 부모라는 역할이 무엇인지, 그 현실적인 어려움이 어떨지 실전에 돌입하기 전에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놓치는 부분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야말로 '글로 배운 육아'였달까. 나머지는 현실육아는 온몸으로 부딪쳐 가며 채워 넣어야 했기에, 시시각각 찾아오는 변수 앞에서 내 멘털은 유리처럼 바스러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곁에서 함께 버텨낼 동지들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엄마로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나눌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게 천군만마보다 든든했다. 서로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끝이 보이지 않던 길고 험난한 터널을 어찌어찌 걸어 나갈 수 있으니까.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정했던 모스크바에서 내가 꾸역꾸역 지치지 않고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었던 건, 기적처럼 나타나 준 귀한 육아 동지들의 힘이 컸다.


이 모든 인연의 시작인 'Lee'와 나의 만남도 참으로 우연히 찾아왔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나는 모스크바 교민들이 모여 있는 단체 대화방에서 몇 가지 육아용품을 두고 고심 중이었다. 짐을 모두 가져갈 수는 없으니 부피가 큰 물건들은 가능하면 현지에서 중고로 구하기로 했다.

당시 그 단톡방은 생활 정보를 나누는 사랑방이자, 중고 물품을 활발하게 거래할 수 있는 단비 같은 존재였다.



다른 건 몰라도 생후 6개월이 되어 곧 이유식을 시작할 둘째를 위해 아기 부스터(탈부착식 식탁 의자)는 꼭 필요했다. 부피가 큰 물건이라 가방에 넣어 가져가기보다 현지에서 구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었다.

첫째를 키우며 이미 이유식 시기를 한 번 겪어본 터라 굳이 비싸거나 SNS에서 유명한 제품일 필요는 없었다. 설치가 쉽고, 다소 낡았더라도 얼마 동안 무난하게 사용할 수만 있다면 충분했다.



채팅방에 구매 의사와 원하는 조건을 적은 글을 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댓글이 달렸다.

'오호… 빠르다. 얼마지?'

반가운 마음에 얼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기다리던 판매 연락이 아니었다.

내용인즉슨, 마침 여분이 하나 있으니 무료로 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모스크바에 머무는 동안 편하게 쓰다가 귀국할 때 돌려주기만 하면 된단다.

너무나 고마운 제안이었지만,

이상했다....


대체 왜??



불현듯 마음 한편에 고이 접어 두었던 의심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왜? 그냥 빌려준다고? 나를 뭘 믿고, 공짜로?'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지?'

'나중에 괜한 덤터기를 씌우는 건 아닐까?'


나이를 먹으며 인간관계의 매운맛을 제법 본 탓일까. 낯선 이의 이유 없는 호의를 마냥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머릿속에는 삐용삐용 경계경보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뭘 원하는 거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선의보다 의도가 먼저 떠오르고, 고마움보다 경계심이 앞섰다.





'에잇, 몰라. 찜찜하면 피하면 된다.'

짧은 고민 끝에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거절하기로 했다.


"너무 감사한 제안이지만, 아이가 쓰다 보면 오염시킬 염려가 있어서요. 좋은 마음으로 빌려주셨는데 저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습니다. 대여보다는 구매를 원해서 다른 물건을 찾아보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나름 고심 끝에 보낸 정중 하나 선을 긋는 메시지였다. 한국에서도 중고 거래 사기가 심심찮게 일어나는데, 하물며 타국에서 생면부지의 교민을 아무 의심 없이 믿기에는... 내 영혼에 때가 너무 많이 묻어 있었다. 거저 빌려준다니.... 별일도 다 있네 하며 다른 물건을 찾으려는 찰나, 나의 완곡한 거절에 예상을 빗나간 답장이 도착했다.


"같은 제품이 두 개 있어서요. 정말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쓰세요. 귀국하실 때만 돌려주시면 됩니다."

내가 언제 돌아가는지 알려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더 설득하려 애쓰지도, 섭섭한 기색을 내비치지도 않았다. 그저 본인 입장을 담백하게 제안할 뿐이었다.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더 이상 거절할 핑계가 없었다. 어정쩡한 동의를 내비친 채 한참을 망설였다.

'뭐, 어쩌랴. 털어 갈래도 어차피 개털이다.'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상대는 부피가 있는 물건이니 집 앞으로 직접 오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에게 주소를 알려주니 다행히 점심시간이라도 회사에서 걸어갈 수 있는 아는 거리란다. 걱정을 한 바가지 늘어놓는 나에게 그는 현지 교민들 중에는 다른 사람을 기꺼이 도와주는 좋은 분들도 많다며, 자기가 다녀오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그래,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감이 오겠지.'

'남편, 미안해…… 내 촉을 못 믿겠으니 당신 눈을 좀 빌려야겠어.'


약속을 잡기 위해 좀 더 메시지로 대화를 이어 가다 보니, 그분은 우리 숙소에서 걸어서 30여분쯤 되는 곳에 살고 있었다. 이쯤이면 거기선 이웃사촌 급이라 신기했다. 그녀는 우리 작은아이보다 한 살 많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며 반가워했다. 또래 아이를 둔 엄마라는 사실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여전히 미심쩍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그건 속은 사람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이쯤 되면 아전인수... 아니 정신승리의 끝판왕인가.


결국 퇴근길의 남편에게 부스터를 받아 와 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후 남편은 약속대로 부스터를 받아 왔다.

그러면서 그 집 아기 엄마가 내가 모스크바에 오기만을 무척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

응?

나를 왜……?


아무런 대가 없이 아기용품을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그런데 만나본 적도 없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괜찮은 걸까?'


혼자 끙끙대며 별의별 물음표를 그려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복잡한 생각을 접어두기로 했다.


가끔은 호의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도 필요한 법!



그때는 미처 몰랐다.

의심 끝에 겨우 받아 든 그 작은 부스터 하나가,

모스크바에서 나를 지탱해 줄 가장 든든한 인연으로 이어질 줄은.





이전 18화겨울밤, 따뜻한 꿀차 한 잔의 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