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러시아에서 맛본 급식 할머니의 정

by봄날의 곰


오후 4시 20분.

유치원 하원 시간은 하루 중 우리 모자가 가장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아침마다 우리 집 미운 네 살은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며 온몸으로 저항 의지를 불태웠다. 달래도 보고, 차분히 타일러도 보지만 번번이 허사다. 온갖 감언이설도 통하지 않는다. 등원이 시작된 첫 한 달은 나의 꺼질듯한 한숨으로 하루가 시작되곤 했다.


하지만 하원 시간의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웬만한 반전 드라마도 명함을 못 내밀 정도였다.

아침 내내 "엄마 싫어!"를 수십 번 외치던 아이는, 불과 몇 시간 뒤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얼굴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아이를 만나기 직전. 나는 유치원 복도에서 낑낑거리며 신발에 파란 부직포 커버를 씌우느라 진땀을 뺐다. 아기띠를 맨 상태라 한쪽 발을 들면 균형 잡기가 어렵다. 하지만 눈과 비가 잦은 계절이라 실내 청결을 위해 학부모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절차라 간과할 수 없었다. 반질반질한 나무 바닥 위에 부직포 커버가 닿는 순간, 나는 마치 빙판 스케이트장을 처음 밟은 사람처럼 중심을 잃고 허둥거리기 일쑤였다. 여기서 넘어지면 창피한 것도 문제였지만, 아기띠에 안긴 둘째까지 다칠까 봐 온몸에 잔뜩 힘을 주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열린 교실 문 너머로 친구들과 공룡 놀이에 푹 빠진 아이가 보였다. 놀이에 몰두한 아이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계단을 오르느라 가빴던 숨도 혹시라도 늦을까 조급했던 마음도 어느새 잦아들었다. 참 신기했다. 아이는 놀이를 하다가도 이따금 무언가를 의식하듯 문 쪽을 힐끗거렸다. 정말 엄마가 온 걸 본능처럼 알고 있는 걸까. 마침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입모양으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다른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만 문밖에서 손을 살짝 흔들었다.


엄마~아아!!!!



아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발견한 아이처럼 장난감 더미 사이를 헤치고 달려와 순식간에 내 품에 와락 안겼다. 아이에게서는 복숭아를 닮은 달콤한 살내음이 훅 밀려왔다. 그 순간, 아침 내내 영혼이 털리는 기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폭발 직전의 불곰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어느새 나는 다시 포근한 펭귄 엄마가 되어 아이를 안아주었다.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고 나란히 라커룸으로 향했다. 내 손안에 쏙 들어오는 아이의 보드라운 손은 참 따뜻했다.





러시아 겨울의 방한용품은 패션이 아니라 생존문제에 가까웠다. 두툼한 스키복 형태의 외투에 털모자와 목도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한국에서는 답답하다며 목도리를 싫어하던 아이였는데, 담임선생님이 매일 오후 산바카라을 나갈 때마다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직접 둘러 주시며 꾸준히 적응시켜 주신 덕분에 어느새 제법 능숙하게 착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의외의 반전이 숨어 있었다. 그렇게 중무장을 한 외투를 벗으면 아이들은 얇은 내복 아니면 반팔 차림으로 실내 생활을 했다. 천연가스가 풍부한 러시아는 건물 안 난방 시설이 워낙 잘 갖춰져 있어서 인지 실내는 대부분 따뜻했다. 아이들의 외투를 모아 보관하는 사물함 안에도 라디에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눈에 젖은 외투도 하원 시간이 되면 보송보송하게 말라 있었다.



사물함 앞에서 세탁이 필요한 아이 옷을 가방에 챙기고 있으면, 선생님들이 먼저 다가와 아이의 옷을 입혀주고 모자와 장갑, 목도리까지 꼼꼼하게 둘러주셨다. 처음에는 속으로 '러시아 유치원 선생님들은 참 친절하시구나' 싶었다.



그러다 얼마 후 다른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하원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선생님이 옷 입기를 돕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동안 내가 누렸던 것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매뉴얼이 아니라, 나를 향한 세심한 배려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늘 둘째를 안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선생님들이 마음이 쓰여 손을 보태주셨던 것 같았다. 첫날부터 아무 내색 없이 자연스럽게 건네주셨던 그 배려를 뒤늦게 깨닫는 순간, 감동의 물결로 가슴 한쪽이 찌릿하게 젖어들었다.





"빠까, 빠까!"("안녕, 안녕.")

선생님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려던 순간이었다. 주변을 살피며 우리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한 노부인이 눈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유치원의 급식을 담당하던 조리사 할머니였다.

숱이 적은 짧은 금발에 여자치고 키가 훤칠한 분이었다. 오랜 주방 일 때문인지 어깨는 조금 굽어 있었다. 양 볼 위로 도드라진 광대뼈와 다부진 체격 때문이었을까. 첫인상은 어딘가 무뚝뚝하고 고집이 세 보이는 할머니였다.



하지만 몇 번의 짧은 만남들이 쌓이면서 그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특히 아이들을 볼 때면 그녀의 눈빛이 더없이 따뜻하게 변했다. 정말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늘 두르고 계신 정갈한 하늘색 앞치마와 아이들 한정 다정한 미소는 이분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아이들에게 장난이라도 걸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는, 동네의 정 많은 이웃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언젠가부터 아이와 나는 그분을 편하게 '급식 할머니'라고 불렀다. 점심 식사가 어땠냐고 물으면 아이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맛있어! 엄청 맛있어!


만 한 살 무렵 한국 어린이집에서 '고봉 트리오(반에서 밥을 가장 많이 먹는 삼총사를 일컫는 말)'로 불릴 만큼 복스럽게 먹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모스크바 유치원의 야채와 고기 소가 든 빵과 따뜻한 차도 제법 입에 잘 맞았던 모양이었다.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큼 요리사에게 큰 칭찬은 없을 테니, 급식 할머니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사실 그날의 작은 계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급식 할머니와 우리 아들의 특별한 관계를 끝내 알아채지 못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어김없이 하원 준비로 분주했다. 그때였다. 어느새 다가온 급식 할머니가 아이와 눈을 맞추더니 말없이 고개를 두어 번 살짝 끄덕이셨다. 아이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그마한 바지 주머니를 활짝 벌렸다.


응? 이건 무슨 상황인가?!



할머니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가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아이 주머니에 쏙 넣어주셨다. 눈빛과 손짓만으로 척척 이어지는 모습이, 짐작건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했다.

이윽고 할머니는 옆에 영문을 모르고 멀뚱히 쳐다보던 내 손을 잡아 손바닥 위에 작은 무언가를 한 움큼 올려놓으셨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내 손을 다정하게 감싸 쥔 채 토닥토닥 다독여 주셨다. 그러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별다른 인사도 없이 다시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살짝 당황한 채 그대로 아이와 유치원을 나와 걸으며 조심스레 손을 펴보니, 손안에 든 꺼끌꺼끌한 감촉의 정체는 곡물을 튀겨 만든 작은 시리얼 과자 한 줌이었다.

옆을 보니 아이 손에도 똑같은 과자가 들려 있었다. 벌써 자기 건 어느 정도 다 먹었는지 내 걸 달라고 했다.


'아들아… 엄마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 아니야.'


아.... 그제야 자연스럽게 퍼즐이 맞춰졌다. 그동안 세탁기를 돌리기 전 아이 주머니에서 종종 발견되던 과자 부스러기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니. 이런 사정도 모른 채 과자 가루를 털어내며 왜 자꾸 과자를 주머니에 넣었냐며 내심 투덜거리기도 했었다. 옆을 보니 아이가 너무 맛있게 먹고 있길래 나도 맛이 궁금해졌다. 남은 과자를 전부 빼앗기기 전에 얼른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설탕을 덜 입힌 맛동산 같기도 하고, 끝맛은 어릴 적 아버지 곁에서 까먹던 구운 호박씨처럼 은은한 고소함도 느껴졌다.

그날 우리는 할머니표 과자를 오물오물 씹으며 지하철역까지 천천히 걸었다.


이게 바로 러시아산 정(情)인가?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과자를 주고 계셨던 걸까.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을 줄 알았던 그 온기를 모스크바 유치원에서 발견할 줄은 정말 몰랐다.

'아, 그래서 러시아에서도 초코파이가 잘 팔리나?'

갑자기 의식의 흐름은 속절없이 이렇게 이어진다. 아무튼, 말이 통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할머니와 아이, 둘만의 암묵적인 비밀 신호가 자꾸 떠올랐다. 생각지도 못한 할머니의 다정한 급습에 기쁜 나머지 집에 돌아오는 길 위에서 자꾸만 웃음이 났다.



한국의 할머니들이 몸빼바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손에 쥐여주시듯,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 아이가 안쓰럽기도, 기특하기도 해서 건네주신 작은 마음이 느껴졌다.

아마 할머니는 이런 말을 전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아가, 내가 널 응원하고 있단다.



아침마다 아이와 씨름하며 '유치원에 잘 적응하고 있을까' 노심초사하던 그 시간에도, 아이는 여러 어른들의 애정 어린 시선 속에서 가만히 자라고 있었다.

누군가는 미소를, 누군가는 자신의 목도리를, 누군가는 작은 과자 한 줌으로 아이의 하루를 응원해 주면서.

어쩌면 정이라는 건 설명하는 감정이 아니라, 뜻밖의 순간 체온처럼 전해지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한때 전 국민이 사랑했던 초코파이 광고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날 우리 모자가 받아 든 것은 과자가 아니라 작은 응원 한 조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음과 마음이 닿는 데에는 그리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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