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마지막 시야

선택할 수 없었다는 말과 선택한 뒤의 바카라임 사이에서

byMinseung Kang

카랑카랑하던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그것만 그대로였다. 몸은 어쩐 일인지 전보다 불어 있었고 얼굴에서는 핏기가 사라져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외할머니와 눈앞의 사람 사이에는 쉽게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생겨 있었다. 임종을 앞둔 외할머니를 나는 4년 만에 보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외할머니의 마지막 시야에 내 모습도 잠시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일이 견딜 수 없이 불편했다. 외할머니가 낯설어서가 아니었다. 그분 앞에 앉아 있는 내가 낯설었다.


4년은 부모가 이혼한 뒤 흘러간 시간이었다. 이혼 후 아버지는 우리 형제가 외가와 이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나는 그 질서 안에서 외가와 멀어졌다. 그날 쓴 글에서 나는 이렇게 자신을 변호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내게는 아무런 선택권도 없었다. 그러므로 내게는 아무런 바카라임도 없다.” 부모의 이혼도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니었고, 아버지의 감정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정말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그 문장을 다시 읽으면 너무 반듯해서 오히려 불편하다. 스물여섯의 나에게 정말 아무런 선택권도 없었을까. 아버지가 외가와의 연락을 싫어했다는 것과 내가 4년 동안 외할머니를 찾아뵙지 않은 것은 완전히 같은 일이었을까. 만나기 어려웠던 것과 만날 수 없었던 것은 같은 말일까.


그때의 사정을 지금의 내가 간단히 유죄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가족의 갈등은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조용하고 단단하게 사람을 묶는다. 누가 전화를 빼앗거나 문을 잠그지 않아도 사람은 가지 못한다. 가족 안에는 설명하지 않아도 지켜야 하는 선이 생긴다. 한쪽 가족을 찾아가는 일이 다른 쪽 가족을 배신하는 일처럼 느껴지면, 발은 생각보다 쉽게 멈춘다. 그렇다고 바카라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선택하기 어려웠다는 사실과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사이에는 작은 틈이 있다. 죄바카라감은 대개 그 틈에서 자란다.


외할머니가 임종을 앞두고서야 찾아온 나는, 그분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다른 가족들까지 기만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네 해 동안 보이지 않다가 마지막 순간에 나타난 나를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자리를 뛰쳐나왔다. 어머니는 “외가는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했다. 무엇이 원래 그렇다는 말이었을까. 오래 만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을까. 마지막에야 나타난 사람을 묻지 않고 받아주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이미 벌어진 일을 더는 누구의 잘못으로도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었을까. 나는 묻지 못했고, 외할머니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이 글을 쓴 지 열여덟 해가 지난 지금, 나도 이혼했다. 아버지의 일방적인 결정과 외가를 향한 혐오를 오래 미워했던 내가 결국 같은 단어를 선택했다. 부모의 이혼 뒤 외가와 멀어진 자식은 이제 두 아이 앞에서 이혼한 아버지가 되었다. 이유도 과정도 같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삶을 나란히 놓으면 그 위에는 똑같이 ‘이혼’이라고 적힌다.


그렇다면 나는 아버지와 무엇이 다른가. 나에게도 결혼을 더는 지속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지금의 나 역시 “다른 선택은 없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 문장은 스물여섯의 내가 썼던 “내게는 아무런 선택권도 없었다”와 너무 닮아 있다. 각자의 사정과 상처는 이혼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내가 아버지와 다르다는 사실까지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차이는 이혼을 했느냐에 있지 않다. 이제부터 무엇을 하느냐에만 남아 있다. 내 상처를 아이들이 지켜야 할 경계선으로 만들지 않는 일, 어느 한쪽 가족과 만나는 것을 다른 쪽에 대한 배신으로 느끼게 하지 않는 일, 어른들의 원망 때문에 아이들이 누군가의 이름을 덜 부르고 덜 찾아가게 만들지 않는 일. 내가 부모의 이혼을 자식으로 겪었다는 사실은 저절로 나를 더 나은 아버지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다만 같은 일을 반복할 때 변명할 수 없게 한다.


가족 사이의 어색함은 시간이 지나면 바카라임의 모양을 바꾼다. 처음에는 갈 수 없었던 사람이 나중에는 왜 가지 않았는지를 스스로 설명해야 한다.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다”는 문장은 한때 나를 지켜줬지만 외할머니에게 돌려주지 못한 네 해까지 없애주지는 못했다. 외할머니의 마지막 시야에 내 모습이 담겼다는 사실보다, 그 시야 밖으로 먼저 달아난 내 등이 더 오래 남아 있다. 나는 이미 아버지와 같은 단어를 골랐다.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기회는 그다음 문장에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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