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며 생각한 것들
새로 산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다가 난간을 측면으로 들이받았다(2025년 5월 31일). 세 번째 운행이었다. 핸들이 순식간에 돌아가고 몸이 자전거에서 튕겨 나갔다. 오른쪽 손목과 왼쪽 갈비뼈, 허벅지가 차례로 바닥에 부딪혔다. 나중에 보니 핸들은 45도 넘게 틀어져 있었다. 아스팔트에 누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프다는 것이 아니었다. 난간이 버텨줘서 다행이었다. 난간 너머로 넘어갔다면 타박상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에는 길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선 구조물에 불과했는데, 몸을 부딪치고 나서야 그것이 추락을 막기 위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난간은 나를 다치게 한 물체인 동시에 더 크게 다치지 않도록 붙들어준 물체였다.
로드 자전거는 생각보다 위험했다. 세 번을 타는 동안 세 번 모두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속도를 다루는 법도, 노면의 작은 돌과 갑작스러운 굴곡을 피하는 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니 당분간 타지 않는 것이 옳았다. 적어도 몸이 회복될 때까지는 자전거를 세워두겠다고 말하는 편이 상식적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자전거를 수리하러 갔다. 일 년 중 자전거를 타기 좋은 날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치게 세지 않고 햇빛은 뜨겁지 않으며, 몸도 마음도 달릴 수 있는 날은 기다린다고 오래 머물러주지 않는다. 도로는 언제나 조금 젖어 있고 바람은 방향을 바꾸며 몸은 전날과 같지 않다. 위험하지 않을 때만 타겠다고 마음먹으면 탈 수 있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안전은 출발하기 전에 완성해놓는 조건이 아니라 달리면서 계속 조정해야 하는 상태였다.
첫 사고가 자전거의 위험을 가르쳤다면, 그 뒤의 주행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계속 달리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르쳤다. 영등포에서 모교인 한양대학교까지 왕복 40킬로미터를 달린 밤이 있었다(2025년 7월 3일). 편도로는 20킬로미터, 로드 자전거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한양대학교에 입학한 뒤 영등포에 있는 온라인 게임에 들어오고 그 근처에 집을 얻기까지는 2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삶으로 건너온 거리를 자전거는 한 시간 만에 거슬러 올라갔다. 낮에는 수없이 지나쳤던 서울인데 밤에 자전거로 달리니 전혀 다른 도시였다. 자동차 안에서는 목적지를 향해 사라지던 길이 자전거 위에서는 냄새와 경사와 바람으로 나뉘었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강에서 올라오는 습기가 달라졌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조금 전까지 거칠었던 숨이 가라앉았다. 차창 밖으로 흘려보냈던 거리에는 생각보다 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다.
오래전에 출발한 곳과 지금 도착한 곳 사이가 겨우 20킬로미터라는 사실이 이상했다. 지금의 자리에 당도하기 위해 그동안의 모든 선택이 필요했던 것일까. 어떤 결정은 실제로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겠지만, 어떤 일은 우연히 끼어들었을 뿐일 것이다. 이미 도착한 사람은 지나온 선택을 현재에 필요한 과정으로 다시 배열하기 쉽다. 목적지를 알고 난 뒤 그린 지도에서는 모든 길이 그곳을 향했던 것처럼 보인다. 자전거에는 지나온 경로와 거리, 속도와 회전수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지만 삶에는 그런 계기판이 없었다. 어디에서 속도를 냈고 어느 갈림길에서 잘못 들었으며, 얼마나 오래 멈춰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자전거는 내가 지나온 길을 숫자로 남겼고, 나는 그 숫자를 보며 내가 제대로 달리고 있는지를 확인하려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케이던스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케이던스는 1분 동안 페달을 돌리는 횟수다. 나는 기기에 표시되는 수치를 80 이상으로 유지하려고 했다. 숫자가 떨어지면 기어를 바꾸고 페달을 재촉했다. 일정한 회전수로 꾸준히 달리는 것이 힘을 덜 쓰면서 멀리 가는 방법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치를 맞추려 할수록 몸의 리듬이 무너졌다. 기어를 올리면 케이던스가 떨어졌고, 기어를 내리면 회전수는 올라갔지만 차체가 흔들렸다. 허벅지가 무거워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화면에는 목표한 숫자가 떠 있는데 정작 몸은 편하지 않았다. 자전거가 알려주는 수치와 몸이 보내는 신호가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숫자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오래 달려보고 축적한 효율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을 것이다. 다만 평균적으로 효율적인 방식과 지금의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방식은 같지 않았다. 같은 사람도 수면과 식사, 날씨와 전날의 피로에 따라 몸이 달라진다. 평균은 방향을 알려줄 수 있지만 오늘의 몸을 대신 살아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다음 주행에서는 케이던스 80이라는 숫자만 맞추지 않고, 그 수치를 유지할 때 몸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함께 살폈다(2025년 7월 18일). 차체가 흔들리지 않는지, 숨이 지나치게 가쁘지는 않은지, 허벅지에 부담이 얼마나 쌓이는지 확인했다. 페달을 밟는 다리에 힘이 남아 있다고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손목이 노면의 충격을 받아내야 했고, 허리는 자세를 지탱해야 했으며, 목은 앞을 보기 위해 오랫동안 들려 있어야 했다. 심장과 폐가 버틸 수 있어도 집중력이 흐려지면 속도를 낮춰야 했다. 멀리 간다는 것은 가장 강한 부위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일이 아니라, 가장 먼저 지치는 부위가 무너지지 않도록 전체의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었다. 몸은 하나의 의지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한계를 지닌 여러 기관이 잠시 합의해 만든 체계에 가까웠다.
그 무렵 영등포에서 광명 쪽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하트 코스를 달리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2025년 7월 11일). 가로등 하나 없는 자전거도로가 나타났다. 기기는 계속 앞으로 가라고 했지만 어둠 속으로 더 들어갈 자신이 없어 공도로 방향을 돌렸다. 아직 기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주행 기록의 일부가 누락됐다. 화면에는 40킬로미터 남짓이 찍혔지만 실제로는 50킬로미터 가까이 달렸을 것이다. 기록되지 않았다고 달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허벅지에 남은 피로와 젖은 옷, 집에 도착했을 때의 갈증은 내가 그 길을 지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록은 경험을 증명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만 경험의 존재를 결정할 권한까지 갖지는 않는다. 성과로 남지 않은 일, 실패해서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 시도, 아무도 보지 않은 수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나온 거리는 몸에 남는다.
돌아오는 길에는 남태령 고개부터 신길역 근처까지 다섯 개의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언덕을 오를 때는 남은 네 개를 생각하지 않았다. 경사가 시작되면 기어를 낮추고 페달을 밟았다. 숨이 거칠어지고 자전거가 거의 서 있는 것처럼 느껴져도 발만 땅에 내리지 않으면 조금씩 앞으로 갔다. 끌고 올라가면 훨씬 편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았다. 11월에 열릴 통영 그란폰도와 언젠가 시도하고 싶은 국토종주를 생각했다. 이것이 훈련이었는지 쓸데없는 고집이었는지는 지금도 분명하지 않다. 몸의 경고를 무시하는 인내는 미덕이 아니며, 잠시 멈추거나 자전거를 끄는 것이 실패일 수도 없다. 다만 그날의 나는 몸이 망가진 상태가 아니라 힘들다는 이유로 그만두고 싶은 상태였다. 실제 한계와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구분하는 일도 훈련의 일부였다.
오르막에서는 평지에서의 속도가 거의 의미를 잃었다. 값비싼 자전거를 탄 사람이 멈추기도 하고, 오래되어 보이는 자전거를 탄 사람이 나를 가볍게 지나가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속도를 따라가면 호흡이 금방 무너졌다. 고개를 숙이고 몇 미터 앞의 노면만 바라보며 내 리듬으로 페달을 밟아야 했다. 나이가 들수록 오르막은 더 겁이 났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전에 넘어본 고개가 생겼다는 점이었다. 막상 올라보니 생각만큼 길지 않았던 언덕과 정말 힘들었지만 끝내 넘었던 기억이 다음 경사 앞에서 몸을 움직였다. 연륜이 주는 것은 대담함보다 비교할 수 있는 과거인지도 모른다. 처음 겪는 두려움은 끝을 알 수 없지만 한 번 지나온 두려움에는 대략의 길이가 있다.
하지만 이전에 고개를 넘었다는 기억이 모든 위험에서 나를 보호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두 달 뒤, 이번에는 난간이 아니라 정차해 있던 승용차와 부딪쳤다(2025년 9월 13일). 앞차를 너무 늦게 발견했고 정면충돌을 피하려고 오른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차의 백미러에 부딪친 뒤 왼쪽 허리부터 도로로 떨어졌다. 옷이 찢어지고 팔꿈치와 정강이, 옆구리에 충격이 왔다. 사고 직후 혜화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 누워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늘이 지나치게 파랬다. 방금 전까지 자동차와 부딪쳐 길바닥에 쓰러진 사람 위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 무심한 평온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한순간에 죽을 수도 있었구나.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특별한 이유도 없이 삶이 끝날 수 있었구나. 죽음에는 그 사람의 삶을 요약할 만한 장소와 이유가 필요하다고 막연히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고는 한 사람의 계획과 바카라임, 아직 끝내지 못한 일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시야를 놓친 몇 초와 정차한 차 한 대, 급하게 꺾은 핸들만으로도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꺾일 수 있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고 검사 결과 큰 부상은 없었다. 자전거도 얄미울 만큼 멀쩡했다. 첫 번째 사고에서는 난간이 버텨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두 번째 사고에서는 다시 일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이라는 말은 실제로 벌어진 일보다 더 나쁜 가능성을 함께 본 사람의 말이었다.
그러나 ‘다행’은 내가 조심해서 얻은 성과가 아니었다. 첫 사고에서 난간이 버틴 것도, 두 번째 사고에서 크게 다치지 않은 것도 내 실력은 아니었다. 우연히 나쁜 결과를 피한 사람이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믿기 시작하면 같은 행동을 더 대담하게 반복하게 된다. 살아남았다는 결과가 위험했던 과정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사고 뒤 난간 가까이에서 몸이 굳고 정차한 차를 보면 미리 속도를 낮추게 됐다. 처음에는 겁이 많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몸이 이전의 위험을 기억하고 같은 상황에서 더 일찍 반응하는 일이었다. 두려움은 움직임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위험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감각이기도 하다. 필요한 것은 겁을 없애는 용기가 아니라, 겁이 가리키는 대상을 정확히 보면서도 계속 움직이는 기술이었다.
사고를 겪고도 자전거를 탈 수 있었던 날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한강 자전거도로에는 전날 열린 불꽃축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2025년 9월 28일). 바리케이드는 한쪽으로 정렬되고 쓰레기는 쓸려 나갔다. 환호와 불꽃이 사라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내년을 준비하듯 묵묵히 길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전에 내린 비로 노면은 진창이었고 바퀴는 자꾸 달라붙었다. 며칠 전까지 30도에 가까웠던 공기는 늦가을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속도를 낼 수 없어 천천히 달리다가, 안장에 오를 수 있는 날이 이제 손가락으로 셀 만큼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봄에는 여름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고, 여름에는 더위가 가시면 본격적으로 타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달리기 좋은 날이 왔을 때 계절은 이미 다음 계절로 넘어가고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일이 많았고, 시간이 나면 비가 왔다. 몸이 가벼운 날에는 약속이 있었으며, 모든 조건이 맞은 날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든 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탈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얼마 남지 않은 뒤였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내일도 가능하고 다음 주에도 가능하므로 오늘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가능했던 날의 수와 실제로 실행할 수 있었던 날의 수는 다르다. 시간과 체력, 날씨와 바카라임이 한꺼번에 맞아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게 허락된다. 삶의 유한성은 남은 날의 총량보다 여러 조건이 동시에 맞는 날이 얼마나 적은가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계절만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해에는 대상포진을 앓고 자전거에서 떨어졌으며 허리 통증도 심해졌다(2025년 10월 20일). 이전에는 아프면 치료한 뒤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완치보다 관리라는 말이 더 익숙했다. 몸은 수리하면 출고 당시의 상태로 돌아오는 기계가 아니었다. 사고와 질병을 하나씩 기억하며 전과 다른 몸이 되어갔다. 한때는 몸의 변화를 의지 부족으로 받아들였다. 예전과 같은 속도를 내지 못하면 운동이 부족한 것이고, 회복이 늦으면 정신력이 약해진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의지가 줄어드는 일만이 아니라 회복에 필요한 시간이 늘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몸의 조건은 변했는데 과거와 같은 속도를 계속 요구한다면 관리는 곧 학대가 된다.
그렇다고 몸을 아껴 쓰겠다며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근육과 심폐기능은 쓰지 않는다고 온전히 보존되는 자산이 아니다. 무리하면 손상되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 약해진다. 몸을 관리한다는 것은 위험을 피해 정지시키는 일이 아니라 손상과 쇠퇴 사이에서 감당할 수 있는 부하를 계속 찾아가는 일이다. 자전거에서 기어를 조절하듯 몸이 받아낼 수 있을 만큼 힘을 쓰고, 회복한 뒤 그 한계를 조금씩 넓혀야 했다. 그래서 다시 자전거를 타는 일은 젊음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몸이 영원히 건재할 것이라고 믿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언젠가는 타고 싶어도 안장에 오를 수 없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사고처럼 갑자기 올 수도 있고, 조금씩 줄어든 근력과 균형감각 끝에 도착할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오늘 타지 않은 시간을 미래에 되돌려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자전거를 타며 나는 숫자가 몸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 빨리 가는 것과 멀리 가는 것은 다르다는 것, 기록되지 않은 거리도 몸에는 남는다는 것을 배웠다. 오르막에서는 남의 속도를 좇지 말아야 했고, 내리막에서는 자신감보다 제동거리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사고 뒤에는 두려움을 지우는 대신 그것이 가리키는 위험을 살펴야 했다. 완전히 안전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출발할 수 없다. 반대로 위험을 감수한다는 말로 무모함을 정당화하면 목적지에 닿기 전에 몸이 먼저 망가진다. 계속 달리려면 용기와 조심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동시에 유지해야 했다. 위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위험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어떤 위험은 피하고, 어떤 위험은 줄이며, 그래도 남는 몫은 자신이 감당하는 일이었다.
나는 사고 전과 같은 사람이어서 다시 안장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사고 전과 달라졌기 때문에 다시 탄다. 전보다 일찍 브레이크를 잡고 난간 가까이에서는 속도를 낮춘다. 오르막에서는 남은 경사를 한꺼번에 올려다보지 않고 지금 밟아야 할 한 번의 페달에 집중한다. 몸이 보내는 경고와 단지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전보다 오래 구분해본다. 세상의 모든 길에 난간이 있는 것은 아니며 모든 난간이 끝까지 버텨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달려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몸이 앞으로 기울고 바퀴가 속도를 얻는 순간, 지나온 거리와 아직 가지 않은 길이 잠시 한곳에서 만난다. 나는 그때 내가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내가 다칠 줄 알면서도 해야 하는 일들이 더러 있다. 자전거를 타는 일, 삶을 너무 일찍 안전한 곳에 세워두지 않는 일.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에게 다시 마음을 내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