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우리의 첫사랑 2
나는 밤새 이리저리 뒤척거렸다. 수술 부위가 아프고 깁스한 팔이 불편한 탓도 있었지만, 머릿속이 복잡한 것이 더 컸다. 결국 창밖으로 푸르스름한 빛이 밝아 올 때쯤 눈을 감는 걸 포기하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오늘 오전 11시. 민유정이 참고인 조사를 받고 나면 난 어떤 사실들과 마주하게 될까. 내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겠지. 아닐 거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민유정이 김기태를 만나러 갈 이유가 없다. 나는 명치 끝이 조여오는 듯한 답답함을 해결할 수 없었다. 내가 잠이 오지 않는 건 하루 종일 병실에 누워만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복도나 로비라도 좀 걸으면 운동도 되고 두통도 가라앉지 않을까?
나는 병원 침대 옆 서랍을 열었다. 효범이가 챙겨다 놓은 소지품들 사이로 담배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엔 미처 건네지 못한 반지의 케이스도 보였다. 담뱃갑에 묻어 있는 피를 보니, 분명 케이스에도 묻었을 텐데... 효범이가 열심히 닦아 둔 것인지 케이스는 멀쩡해 보였다.
나는 그 작은 상자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담배만 챙겨 환자복 상의 주머니에 넣었다. 당분간 금연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딱 한 대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난 이불을 걷어내고 두 다리를 바닥으로 뻗었다. 저릿하게 복부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잠시 있으니 점점 적응이 되는 듯했다. 나는 링거 거치대를 끌고 천천히 발을 옮겨 복도로 나갔다.
아직 어둑어둑한 복도에는 희미한 조명만 은은히 비추고 있었다. 새벽 공기의 냄새와 찬 기운 때문인지 조금은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흡연실로 가기 위해 로비를 지나가는데, 응급센터 접수처 근처 대기석에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굉장히 익숙한 실루엣이.
"...민유정?"
내 목소리를 들은 그녀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울고 있었는지 눈이 빨개진 채였다.
"우진아."
그녀는 이 시간에 나를 마주칠 거라 예상하지 못한 건지 나를 발견하고는 잠시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러고는 서둘러 자신의 눈을 비벼 닦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벌써 일어났어?"
"니가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생각보다 내 목소리가 더 차가워서 나조차도 잠시 놀랐다.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는데도 나는 내게 한 걸음 다가오는 그녀에게서 한 발짝 물러났다.
"너 괜찮아?"
그녀는 대체 언제부터 저기 앉아 있었던 걸까. 평소였다면 그저 내가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아 걱정해서 왔을 거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하필이면 참고인 조사가 있는 날, 면회 시간도 안 된 새벽부터 여기 앉아 있는 그녀의 머릿속을 알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물러난 만큼 다시 다가왔다. 이윽고 내가 한 발짝 더 물러나자 그제야 내가 뒷걸음을 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우진아. 아니야. 너 지금 뭘 생각하든 그거 아니라고."
나는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고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빨갛게 부은 그녀의 눈이, 그리고 간절한 듯 앙다문 입술이 내 가슴에 와서 콕 박혔다.
"그럼 설명해."
내 말에 그녀는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마침 지나가던 당직 간호사가 우리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몸을 돌렸다.
"...따라와."
새벽의 병원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링거 거치대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 그리고 그 뒤를 한 박자 늦게 따라오는 그녀의 발소리만 텅 빈 로비를 채웠다. 흡연실로 향하는 동안 우린 서로 아무 말도 없었고, 나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병원 뒤편 흡연실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평소라면 비흡연자인 그녀를 이리로 데리고 오는 일은 없었겠지만, 지금은 여기만큼 얘기하기 좋은 곳이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담뱃갑을 꺼냈다.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는 담뱃갑을 본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는 개의치 않고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익숙하지 않은 왼손으로 불을 붙이느라 라이터의 부싯돌이 여러 번 헛돌았다.
"...김기태랑 연락했다며."
내가 첫 모금을 한숨처럼 길게 내뱉으며 먼저 말을 꺼내자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응. 가끔..."
나는 머금은 담배 연기를 아래쪽으로 뱉어냈다. 그녀는 이미 내가 무슨 질문을 할지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면회도 갔었다며."
나의 질문에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사실은 매년 만났어. 11월마다. 면회도 그래서 간 거고."
잠시의 적막을 깨고 뱉은 그녀의 말에 나는 바닥을 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그사이 민유정의 눈에는 또 한 번 눈물이 고여 있었다.
"왜 만났는지도 말해야 돼? 내 입으로?"
나는 담배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낮게 탄식을 내뱉었다. 이제 그녀는 고인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고 있었다.
"죽은 애기한테 미안해서. 그날은 절대 잊지 말자고 약속했으니까! 나도 걔도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담배를 한 번 더 빨아들인 뒤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껐다.
"알겠어. 더 얘기하지 않아도 돼."
내가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할 때,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웅크려 앉았다. 나는 차마 발을 떼지 못하고 서서 그녀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우리가 열다섯이 채 되지 못한 겨울이 떠올랐다. 학교에도 나오지 않고 며칠을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그녀. 문 앞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그 문 앞을 매일같이 서성이던 나.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약속한 것처럼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웃기 시작하고, 평범한 일상의 삶으로 돌아온 다음부터는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지금까지도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 그런 걸까? 어쩌면 내가 너무 무신경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가 머리카락을 잘리던 그날처럼 또다시 죄바카라감이 들었다.
"...미안해."
차마 돌아보지는 못하고 투박하게 내뱉은 말에 그녀는 울음을 멈추었다.
"니가 왜."
"말하기 싫은 걸 말하게 했으니까."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그제야 뒤를 돌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몸을 일으키고 눈물을 훔치는 그녀는 생각했던 것보다 담담한 표정이었다.
"오늘 경찰서 가서는 그냥 혼자인 김기태가 불쌍해서 간 거라고 할 거야. 굳이 옛날얘기까지 다 할 필요는 없잖아."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애초에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거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너도 그냥 그렇게 알고 있어."
그녀는 그 말을 남긴 채 나를 지나쳐 먼저 흡연실 문을 열고 빠져나갔다.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녀가 면회를 갔던 이유가 비록 다른 것이었다 하더라도 진영이에 대한 이야기를 흘리거나 김기태에게 우리 집을 알려주는 건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결국 나는 정작 물어봐야 할 건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고 그녀로부터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매년 만났어. 11월마다.'
김기태가 가석방된 건 올해 10월... 그녀 말대로라면 최근에도 김기태를 만났을 것이다. 둘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을까? 그날 나눈 많은 이야기 속에 진영이 얘기도 끼어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작년 동창회에서 보였던 그녀의 적대적인 태도와 그리고 우리 집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김기태와 계속 인연을 이어왔다는 사실은 내게 더 뚜렷한 심증으로 다가왔지만, 아직 아무런 물증이 없었다. 그럼에도 내 육감은 자꾸만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에게 내가 변수였던 것은 아닐까?
진영이를 해코지하기 위해 우리 집을 알려줬고, 그저 진영이만 치우고 싶었는데... 김기태가 예상외의 행동을 한 건 아닐까?
하지만 김기태를 잘 아는 그녀가 정말 내가 위험할 거라는 걸 몰랐을까? 내가 너무 감정에 치우쳐 그녀를 무턱대고 의심하고 있는 걸까? 내가 또 너무 강박적으로 파고들어 비약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몸을 숙이고 머리칼을 손에 움켜쥐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한참을 그렇게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어느새 해가 올라와 주변을 밝히며 푸르스름했던 새벽을 밀어내고 있었다.
.
.
.
"아~해."
진영이는 아침부터 내 앞에서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을 들이밀고 있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괜히 부끄러워 귀가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왼손으로도 숟가락질은 할 수 있거든?"
그러자 그녀는 안 그래도 귀여운 눈을 반달로 만들며 웃었다.
"알아, 나도. 그냥 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빨리. 아!"
나는 그녀의 애교에 못 이기는 척 입을 벌렸다. 그녀는 얼른 숟가락을 내 입으로 쏙 넣었다.
"우리 우진이~ 꼭꼭 씹어 먹어!"
나는 나를 우진이라고 부르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호칭이 바뀌었는데?"
"아..."
그녀는 들고 있는 죽 그릇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자꾸 윤재라고 불러서 니가 다치는 걸까 봐."
나는 금세 풀 죽은 그녀를 보니 괜히 마음이 찡했다. 그래서 내 옆에 서 있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침대 위로 걸터앉혔다. 그리고 그녀의 품에 머리를 기대었다.
"아니야. 아홉수라서 그런 거야."
그녀는 내 행동에 잠시 놀란 듯하더니 죽 그릇을 내려놓고 나를 폭 안아주었다. 나는 그녀의 체온에 기분이 좋아 더 파고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가 내 환자복 상의 아랫자락을 움켜쥐었다.
"...너 담배 폈지."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떼어냈다. 하지만 그녀는 놓치지 않고 내 환자복에 코를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내 등짝을 한 대 찰싹 때렸다.
"폈네!? 너 진짜! 의사 선생님이 감염 위험 있으니까 피지 말라고 했잖아!"
"아야! 나 환자야!"
내가 몸을 틀고 엄살을 부리며 아픈 시늉을 하자 그녀는 입을 쌜쭉거렸다.
와, 진짜로 딱 한 대 폈는데... 양치질도 열심히 하고 한 손으로 꾸역꾸역 머리까지 감았는데... 이렇게 바로 걸릴 줄이야. 옷에 밴 냄새는 미처 생각도 못 한 탓이었다. 증거인멸을 시도한 주제에 결정적 물증을 입고 있었다니! 하, 흡연실에 오래 있을 게 아니었는데...
내가 억울해하는 사이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죽 혼자 먹을 수 있지? 나 이제 나가 봐야 해."
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보았다.
"어디 가?"
설마 그녀가 벌써 경찰서로 가는 걸까? 아직 너무 이른데? 갔다가 민유정이라도 만나면 어쩌지?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회사 잠깐 들러야 해. 오늘 참고인 조사 받으러 갈 거니까. 회사에 알려야지."
나는 그녀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내가 너무 빨리 가서 서운해?"
그녀는 애교 있는 말투로 말하며 내 옆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내 앞머리를 살짝 쓸어 넘겼다.
"보호자로 등록하기를 잘한 거 같아. 이렇게 아무 때나 왔다 갔다 할 수 있잖아. 이따 저녁에 또 올게."
그녀는 내 허리를 감싸며 품에 쏙 안겼다. 나는 왼팔로 그녀를 감싸고 그녀의 머리에 얼굴을 기대었다. 그리고 그녀의 정수리에 살짝 입을 맞추고 다시 꼭 끌어안았다.
아침부터 나를 걱정하며 죽을 사 들고 오는 그녀가, 저녁에 다시 오겠다고 말하는 그녀가 너무 좋다. 사실 지금도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한참을 그렇게 안고 놔주지 않자 그녀가 내 가슴팍을 주먹으로 콩 내려쳤다.
"가야 한다니까."
나는 더 세게 끌어안았다.
"니가 먼저 꼬셨잖아. 잠깐만 더 안고 있을래."
내 어리광에 그녀는 살짝 웃으며 나를 더 꽉 끌어안아주었다.
그녀가 나가고 난 병실은 너무도 조용했다. 나는 침대 옆 서랍을 열었다. 새벽에는 차마 손대지 못했던 작은 상자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왼손 엄지로 뚜껑을 밀어 올리자, 창으로 들어온 햇빛에 반지가 반짝였다. 나는 잠시 반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걸 네게 언제쯤 전해줄 수 있을까. 나는 괜히 얼굴을 붉혔다.
나는 상자 뚜껑을 닫았다. 아직은 정리해야 할 것이 많다. 오늘 민유정이 조사를 받고 나면 무언가 한 가지라도 실마리는 나오지 않을까?
오늘 내가 그 자리에 없는 게 어쩌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야 했다면... 나는 아마 평정심을 유지하긴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반지 케이스를 서랍 안에 도로 내려놓고 서랍 문을 밀어 닫았다. 아직은 타이밍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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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효범이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민유정과 김기태 사이에서 큰 접점은 발견하지 못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녀는 면회를 몇 번 갔다는 것만 인정하고, 그 외 의심 정황은 모두 부인했다고.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그 말을 전하는 효범이는 아직도 뭔가 해결되지 않은 찝찝함이 남은 듯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요, 경위님. 아직 좀 미심쩍습니다. 김기태가 불쌍해서 면회 몇 번 간 게 다라던 거 치고는 출소 후 통화를 많이 했거든요. 근데 민유정 씨는 만난 적 없다고 말하더라고요? 하, 만난 것 같은데... 11월에 통화 기록이 몰려 있는 거 보면, 분명 이때 만났는데..."
거기까지 말했을 때, 그의 뒤로 팀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진효범이! 너 누구랑 통화햐!"
"어, 어! 아닙니다!"
"강우진이지! 너, 이 새끼! 내놔."
팀장님은 효범이에게서 전화기를 빼앗아 들었다.
"야 인마, 너 몸은 좀 괜찮은 겨, 어떤 겨? 사건 쑤시고 있는 거 보니께 이제 좀 살 만한 겨?"
"예. 멀쩡합니다."
"말짱은 무슨. 너 그렇게 운동해서 뭐 허냐? 허구헌 날~ 칼 맞고 댕기는데. 그게 다~ 요즘 애들 말로다가 패션 근육이여, 패션 근육."
오랜만에 듣는 것 같은 팀장님의 농담이 반가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는 사건 생각하지 말고 걍 회복에 집중이나 하라고 했지. 뭐 한다고 병원에서 누워가지고 진효범이 숙제 검사나 해주고 자빠졌어? 이 새끼가 애여? 이러다 기저귀도 갈아주겄네, 아주? 지 알아서 하라고 냅둬!"
"아, 팀장님!"
뒤에서 억울해하는 효범이의 목소리가 함께 들렸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효범이 숙제는 팀장님이 봐 주시는 거죠? 애가 영 못 미더워서 원."
내 말을 들은 팀장님이 효범이에게 말을 전했다.
"야가 너를 못 믿겄다는디?"
"아, 경위님!!"
"그럼 고생하십쇼."
나는 전화를 끊으며 한 차례 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내 뒤에는 이렇게 든든한 동료들이 있으니 믿고 맡기면 될 일이다. 그런데 아직도 남아 있는 찝찝함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민유정은 분명, 매년 11월이 돌아올 때마다 김기태를 만나왔다고 했다. 그건 아마도 중고등학생 때를 포함해 지금까지 전부를 뜻한 것일 테지. 그런데 하필 올해는 만나지 않았다고?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 2009년을 떠올렸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11월 말쯤이었던 것 같았다. 나는 효범이에게 문자를 남겼다.
[민유정이 작년 재작년 11월에 면회 갔던 날짜 확인해 보고, 올해 그 날짜 김기태 동선 좀 알아봐.]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병원 침대 헤드보드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이제부터는 진짜로 동료를 믿고 맡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