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우리의 첫사랑 2
"여, 강우진. 살아있냐?"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수술복 위에 흰 가운을 대충 걸친 정의가 문틀에 기대어 서 있었다.
며칠은 잠을 못 잔 것 같은 퀭한 얼굴인 주제에 입은 활짝 웃고 있는 그를 보며 내가 혀를 찼다.
"하! 나보다 니가 먼저 죽을 것 같은데? 잠은 좀 자냐?"
"말도 마라. 치프한테 잠 잘 시간 따위가 어딨냐. 잠은 죽어서 자라던데?"
정의는 투덜거리며 침대 옆 의자를 끌어다 내 옆에 앉았다.
"야, 나 진짜... 너 실려 온 날, 응급실에서 니 이름 보고 심장 떨어질 뻔했잖아.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의 질문에 나는 잠시 아무 말도 못 했다.
"뭐 대충 기사 보긴 했어. 보복인 거야?"
"뭐..."
나는 말을 아꼈다. 정의는 화가 난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김기태 그 새끼, 어릴 때부터 진짜 거슬리더니... 끝끝내 이렇게 사고 칠 줄 알았어. 개새끼. 네가 죽기라도 했어 봐. 와 진짜 씨."
그는 어울리지도 않게 욕을 섞어가며 이를 갈았고, 나는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하지만 살았죠?"
"좋냐?"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표정을 풀었다.
"...도저히 시간이 안 나서 이제서야 와보네. 늦게 와서 미안하다."
나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러 와준 정의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넌, 인마. 내가 죽지 않아 다행이지. 장례식이었으면 벌써 발인도 끝났어."
"미친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말인 척하고 있어."
그는 나를 살짝 흘겨보고는 내 오른쪽 팔의 깁스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아무튼, 차트 보니까 팔은 예쁘게 똑 부러졌더라. 몇 주 놔두면 알아서 잘 붙을 거야. 배는 우리 교수님이 하셨고. 너 진짜 운이 좋았어. 그날 우리 교수님이 계셨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내가 니 배 열 뻔했잖아."
나는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랬으면 바로 장례식장으로 가는 거지. 그리고 너는 결국 발인도 못 지켰겠지."
내가 오버스럽게 머리를 양옆으로 흔들자 정의가 내 어깨를 밀며 웃었다.
"이 새끼가. 아까부터 의사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네?"
나도 그를 따라 웃다가 옆구리가 당겨 눈썹을 찡그리고 배를 움켜쥐었다.
"야, 씨. 웃기지 마, 배 땡겨."
정의는 그런 나를 보고 웃다가 병실을 둘러보았다.
"진영이는? 오랜만에 인사하고 싶었는데."
"얻다 대고 '진영이'야, 형수님이지. 그리고 우리 진영이가, 굳이 너 따위랑 인사를 해야 되냐?"
내가 괜히 툴툴거리자 정의는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래도 명색이 내가 걔 첫사랑이잖아. 얼굴 정도는 비쳐 줘야 인지상정..."
"지랄할 거면 꺼져."
내가 괜히 베개로 한 대 치자 정의는 재미있다는 듯 킥킥 웃었다.
"농담이야~ 아무튼 정진영 씨, 우리 제수씨는 어디 가셨는데요?"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깐 숨을 골랐다. 그녀가 지금 경찰서에서 그때 일을 복기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아서였다.
"참고인 조사 갔어."
"아..."
둘 다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거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정의가 말을 돌렸다.
"그거 아냐? 우리 병원 간호사 쌤들한테 진영이 인기 짱이야. 난리 났어. 연예인 왔다고. 지금 병원에서 트렉스 4명 놓고 인기투표했는데, 진영이가 1등이야."
"아, 그래? 그런 것도 했냐? 그건 몰랐네. 여자분들은 테오를 제일 좋아하지 않나?"
"뭐 병원에서 진영이가 간호사들한테 잘하거든. 그리고 요즘 20~30대 여자들 사이에서 그 드라마 엄청 핫하잖아. 최근에 찍은 거, 그거 알지? 제목 뭐더라... 연산군 길들이기?"
"몰라, 안 봤어. 그땐 헤어졌을 때라."
"아."
정의는 나를 보고 입을 다물었고 나는 그런 정의가 웃겨서 입을 꾹 다물었다. 우리는 서로 그렇게 잠시 쳐다보다 내가 먼저 못 참고 빵 터져서 웃었다. 배가 한 번 더 당겼고 나는 또 배를 움켜잡아야 했다.
"너 반지는? 줬고?"
"겠냐?"
"강 형사님은 떠먹여 줘도 못 먹는군요?"
"뭘 떠먹여 줬다는 거지?"
"내가 보낸 거 링크 안 봤어?"
"아, 하등 쓰잘데기 없는 그거?"
"와, 얘가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니가 그래서 맨날 그렇게 차이는 거야, 인마."
"그러는 너는 박윤진한테 또 차였죠?"
"이 새끼가. 아니거든? ...아직은?"
"너네 과 교수님이란 분 회진 때 보니 젊고 잘생겼던데? 미필 치프 따위보다 낫던데."
"배에 구멍 한 번 더 나고 싶냐? 메스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한 번 보여줘?"
나는 그와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 게 즐거워서 큭큭 웃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웃는 건지. 정의랑 같이 있으면 중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참, 윤진이가 못 와봐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래. 얼마 전에 개원해서 걔도 정신없거든. 요즘 소아과 없어서 아주 난리야."
"응, 마음은 잘 받을게. 걱정 말라고 전해줘."
"오야. 나도 이제 가봐야겠다."
정의는 일어나 가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나 모레 외상 당직이야. 밤에 심심하면 연락해. 커피 마시게."
"나 지금 커피 못 마시는데?"
"응. 너 말고 나. 너는 나 마시는 거 구경해."
"미친놈."
그는 씨익 한 번 웃고는 뒤돌아 걸으며 손을 흔들었다.
"간다~ 담배 피지 마라~"
그가 병실을 나가고 나는 내 환자복 냄새를 킁킁 맡았다. 아무래도 갈아입어야겠다.
.
.
.
"이거 좀 봐 봐! 우리 언더바들 너무 귀엽지 않아?"
해 질 무렵이 되자 참고인 조사를 마친 진영이는 약속한 대로 곧장 병원으로 왔다. 그녀는 내 옆에 바짝 앉아 자신의 팬들의 댓글을 몇 개 읽어 주었다.
"우리 별명도 생겼어. 찐찐이래, 진영이랑 우진이라고 찐찐~! 엄청 귀엽지! 우정 커플이라고도 불러!"
"우정? 난 사랑인데."
"그런 뜻 아니거든?"
나는 그녀의 팔에 몸을 기대고 그녀가 보여주는 화면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찐찐쀼는 뭔데 보고 싶다는 거야?"
"쀼가 부부라는 뜻이라서 둘이 결혼했음 좋겠단 뜻이야~!"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다행히 그녀는 내 쪽은 보지 않고 화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덕분에 지금 내 표정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눈만 굴려 서랍을 한 번 바라보았다.
"이거 봐. 팬이 그려준 거! 너랑 나야!"
진영이는 잔뜩 신이 난 듯 입꼬리가 하늘 위로 솟아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녀의 턱에 손을 가져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나야, 언더바야?"
"당연히 언더바지?"
나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적어도 2초 정도는 고민이란 걸 해주겠니?"
내가 삐진 척 턱을 잡았던 손을 살짝 밀자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었다. 해맑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보자 내 입가에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자리 잡았다.
"회사에서는 뭐래? 우리 같이 살았던 것도 들켰겠네? 안 혼났어? 그 매니저 실장님 무섭던데."
그녀는 핸드폰을 잠시 내려두고 내 옆으로 몸을 더 기대었다.
"혼났지~? 그렇게 큰일을 혼자 결정하면 어떻게 하냐고. 회사에서 바로 집 구해줘서 짐은 다 옮겼어."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만지작거렸다.
"근데, 팬들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대표님은 오히려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쩌면 너한테 같이 방송하자고 연락할지도 몰라."
"뭐?"
그녀는 내게서 몸을 떨어뜨리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요즘 리얼리티쇼가 대세잖아. 너랑 나랑 연애하는 걸 방송으로 내보내면 어떻겠냐고 박 PD가 연락했나 봐. 뭐 연애 얘기는 핑계고, 사건이 궁금한 거겠지. 워낙 자극적이니까. 거기에 팬들도 우리 투샷을 바라고 있으니..."
"그게 무슨...!"
"걱정 마, 너는 일반인이라 안 하겠다고 하면 그만이야. 혹시나 나 건너뛰고 너한테 다이렉트로 연락 오면 꼭 얘기해. 내가 잘 커버해 줄게."
나는 눈만 깜빡거렸다. 연예계는 정말 내가 상상도 못 하는 동네구나 싶었다. 이번에 칼을 맞은 건 나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칫 자기 소속사 연예인이 죽을 수도 있었던 위기를 이용해 방송을 하겠다고?
"나는 회사에서 절대 허락 안 해줄걸."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엥? 그런 것도 허락받아야 해? 아니 뭐 물론 안 할 거긴 한데, 왜? 겸업 금지 같은 거야?"
"그것보다도..."
나는 말을 하려다 말고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 내 직업이 뭔지 까먹은 건 아니지?"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경찰이잖아."
"그냥 경찰이 아니고, 난 강력계 형사잖아."
"뭐가 많이 달라?"
그녀는 진짜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하긴, 이쪽 직업이 아닌 이상 상세하게 모를 수 있겠다 싶었다.
"우린 근무복도 잘 안 입어. 잠복이나 탐문할 때 얼굴이 알려져 있으면 곤란하잖아."
그녀는 다물었던 입을 살짝 벌리며,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 어쩐지. 나 안 그래도 너는 왜 그 경찰 옷 안 입지? 했어! 그런 거구나...!"
"지금도 이미 사진이 많이 돌고 있어서, 좀 걱정이긴 해."
"근데 너... 졸업 사진도 이미 다 털렸던데... 그래서 개명 전 이름도 사람들이 다 알아."
"하...!"
나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보았고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웰컴 투 마이 월드. 연예인 남친이니까 어쩔 수 없어. 네가 감당해야지. 병원에서도 사진 찍혀서 올라갈 수 있으니까 늘 멋진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녀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뭐 정 안 되면 형사 그만둬. 어차피 맘에 안 들어. 그래, 말 나온 김에 셀카 찍어서 올리자. 우리 언더바들 보여주게!"
그녀는 내 일을 관두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 들며 눈을 빛냈다.
"거절한다."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그녀의 몸을 밀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고 깔깔 웃었고, 나도 그녀를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은 뒤 병원 복도를 같이 걸었다. 이따금 환자나 보호자들이 와서 말을 걸거나, 진영이의 사인을 받아 가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멀리서 지켜만 볼 뿐 생각보다 사람이 몰리지는 않았다.
진영이 말대로 사진은 좀 찍히는 기분이었다. 다음부터는 모자라도 쓰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진영이가 모자와 마스크를 왜 그렇게 열심히 챙겼는지 새삼 와 닿았다.
그 후 진영이는 계속 내 옆에 붙어 있었다. 벌써 이틀이나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나는 그녀의 황금 같은 휴식기를 병원에서 보내게 한다는 죄바카라감이 들었다.
"나 퇴원하고 나서 가고 싶은 곳 없어?"
그녀는 내 깁스에 낙서를 하다 고개를 들었다.
"응?"
"이왕 얼굴도 팔린 거, 어디라도 놀러 갈까?"
내 말에 그녀는 신이 난 듯 보였다. 그사이 나는 내 팔에 쓰인 낙서를 보고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금.연!]
수많은 하트 사이에 커다란 글씨로 써놓은 그녀의 한마디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많아! 나 하고 싶은 거 엄청 많아!!"
그녀는 입꼬리가 귀에 걸려 싱글벙글하며 몸을 들썩거렸다. 나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녀가 원한다면 그게 뭐든 다 해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필요하다면 심장도 꺼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응 다 생각해 놔. 나도 아마 당분간 출근은 힘들 테니까, 쉬는 동안 다 해 줄게. 맨날 병원에만 있게 해서 미안해."
"아싸! 리스트 만들어야지~!"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볼펜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서랍을 벌컥 열었다. 반사적으로 잠시 움찔했던 나는 반지 케이스를 다른 곳에 숨겨두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 간호사 쌤한테 종이 좀 빌려 올게!"
잔뜩 흥분한 그녀가 들뜬 발걸음으로 문밖으로 뛰어나갔을 때, 핸드폰이 웅웅 울렸다. 나는 하루 종일 확인하지 않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여러 개의 메시지를 훑었고, 그중 하나는 답장을 했다.
[나 오늘 당직. 이따 시간 날 때 들를게! 난 커피, 넌 구경!]
[자판기에서 유자차라도 뽑아 와라.]
나는 또다시 남은 메시지들을 훑다가 효범이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경위님, 형수님이랑 민유정 씨 조사 건은 다 잘 마무리했고, 김기태도 오늘 송치됐습니다. 푹 쉬십쇼!]
나는 답장을 하지 않고 핸드폰을 던져두었다. 이제 진짜로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김기태는 가석방 중 사고를 쳤으니 정말 오래도록 감옥에서 썩어야 할 테지. 그다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지금은 그냥 진영이와 행복한 이 시간을 오롯이 즐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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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아... 진영아? 집에 가서 자."
나는 내 손을 잡은 채 불편하게 침대에 기대 엎드려 있는 그녀를 흔들었다. 벌써 시계는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녀는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응? 아냐, 나 여기서 잘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서 피곤함이 묻어났다.
"병원에선 제대로 못 자잖아. 밤새 간호사도 들락거리고. 이러다 니가 아프겠어."
그녀는 아직 덜 깬 눈을 비볐다. 병원은 새벽 6시부터 불도 켜지고 복도도 소란스러워지기 때문에 그녀도 덩달아 며칠째 잠을 푹 못 자는 상태였다.
"그치만..."
"오늘은 집에 가서 푹 자고, 내일 낮에 와. 기다리고 있을게."
그녀는 못 이긴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내일 내가 맛있는 거 사 올게. 뭐 먹고 싶어? 죽 중에 골라."
"...고를 수 있는 범위가 너무 좁은데요. 병원 밥이랑 뭐가 다른 거죠? 저는 달달한 게 먹고 싶어요."
"안 돼. 죽 중에 골라."
그녀는 작게 하품을 했다. 나는 단호한 그녀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녀를 바래다주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때 그녀는 내 입에 짧게 입을 맞췄다.
"달달한 거. 여기."
나는 그런 그녀를 잠시 쳐다보다 얼굴을 다시 들이밀었다.
"너무 적어요."
그녀는 웃으며 내 뺨을 감싸고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쪽쪽거렸다.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나는 잠시 흡연실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래,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자.
나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다리를 이끌고 다시 병실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구급차가 응급실 쪽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방금까지 조용하던 곳이 순식간에 굉장히 소란스러워졌다. 뭐, 병원이니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들것을 밀고 내리는 구급대원의 뒤를 따르는 두 사람의 짙은 남색 제복을 본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들은 교도관이었다. 나는 밀려오는 불안감에 걸음을 재촉해 어수선한 그 틈으로 다가갔다.
들것 위 남자의 손목은 옆쪽 난간에 수갑으로 묶여 있었고, 수용복 상의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목 언저리를 덮은 거즈가 붉게 젖어 있었다.
"환자 혈압 떨어집니다! 70에 40!!"
"기도부터 잡고, 수혈 준비해! 바로 수술방 잡아! 교수님 콜하고!"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 자리에 잠시 굳어 서 있었다. 정신없이 환자를 받고 있는 건 정의였고 실려 온 건 김기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