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둔덕처럼 자라는 아이
어쩌다 보니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 세우는 날짜가 많이 늦어지고 말았다. 가을 이후로는 주말마다 계속 일들이 있어 미룬 데다, 본인들이 으레 받을 선물 외에는 별 감흥 없는 듯한 아이들의 반응이 두어해는 된 것 같아 나도 심드렁해 있었다. 이번 주말엔 그나마 나았는데 토요일에도 비가 내린 탓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할 라이딩으로 분주했다. 그날은 또 J가 새로운 과학학원의 개강 수업까지 참석하는 날이었는데 비 오는 길을 혼자 보내기가 걸려 그 일정까지 함께 소화하느라 밤 10시가 넘어서야 소파에 앉을 수 있었다. 비가 와서 더하기도 했지만 정말 만만찮은 주말 토요일 풍경이다. J의 학구열이 식지 않고 계속된다면 아마도 J가 대입 수능시험을 칠 때까지는 이런 식의 주말이 계속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해가 갈수록 정도는 심해질 것이고, 따뜻한 밥상이나 차려주며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시간이 훨씬 길어지겠지만 J의 앞에 펼쳐질 길들을 생각하면 무어라 할 수 없는 벅참과 기꺼움이 밀려온다. 일요일엔 오전에 청소년센터 드럼수업을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것으로 외출을 마쳤다. 일요일 오후 시간은 확보된 셈이다. 이불빨래를 시작한다. 아직도 솜을 넣지 못하고 쓰고 있던 침대 이불인데, 어제 잠들며 어느 귀퉁이가 코끝에 닿았는지 꼬롬한 향이 스쳤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부모님 댁에서 분가하며 엄마가 침대 세트로 맞춰주신 그 이불은 소재가 좋아서 사계절 내내 써도 특별히 덥거나 춥지 않아 아껴가며 쓰고 있는데, 촉감에 예민한 J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좋아하는 이불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세탁한 후 1월 경에는 솜을 넣어 써봐야지 생각하며 2시간 코스의 이불빨래를 선택해 넣었다. 그런 뒤에 숙제를 하듯 냉장고 랙 제일 높은 곳에 있던 트리 더미를 꺼내 거실에 부려놓고 찌부러져 있는 철사 가지를 펼치며 곧고 풍성한 트리 나무를 세우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양을 빼꼼히 보던 H는 이불을 걷은 안방 침대로 공중 활강을 하며 점프해 엎드려 착지했다. 정밀한 힘 조절로 쫀득하게 착지에 성공하는 열다섯의 놀라운 탄력은 볼 때마다 놀랍다. H가 아무리 80kg에 육박하는 몸이어도 저런 탄력이라면 침대 스프링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위안 삼아 본다. 놀랍게도 H는 내일부터 사흘간 기말고사를 쳐야 한다. 시험의 중압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임박하지 않아서일까. 시험 시작까지는 이제 반나절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침대 점프가 이렇게 경쾌하고 깔끔하다니. 어제와 오늘의 공부 총량으로만 따져봐도 H보다는 J의 공부량이 더 많았다. 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지고 있고, H는 침대에 엎드려 한 손에는 태블릿 PC를,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만지작 거리고 있다.
H의 기말고사 성적은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성적이 확정되어 성적표로 나오기 전에 확인하는 점수 정오표는 늘 그랬듯 엉망으로 구겨져서 먼지 더미 속의 바카라가방 바닥에 끼어 있던 것을 내가 찾아내 겨우 확인했는데, 낮은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을 H가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옆으로 다가와 멀뚱히 내 눈치를 살폈다. 이 타이밍에 내가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하는 것은 이미 너무 많이 있었던 순서였지만 이제는 그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을뿐더러 H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조용히 시험지나 성적표를 접어버릴 수밖에는 없었다. J가 적나라하게 H의 상황을 알게 되는 것도 가능한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형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을 이렇게 열심히 도와주고 있는 나의 마음을 H 너는 알고 있을까.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체를 하며 돌아서도 이미 J는 다 알고 있을 아이였지만 말이다. 시험준비는 하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름으로는 시험 스트레스가 있기는 했던 모양으로, 시험이 끝나기가 무섭게 H의 화려한 외출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기말고사가 끝나자 학교에서도 5분씩 단축수업을 시작했고, 박물관이나 영화관 같은 현장 학습이 연일 이어졌다. 며칠 후에 있을 반대항 배드민턴 경기까지 예정되어 있어 H는 거리낄 것이 전혀 없이 행복해 보였다. 주말에는 출전 선수들과 함께 대여섯 시간씩 배드민턴 장에서 보내고 오는가 하면 볼링장, 코인노래방, 각종 음식점에 이어 PC방까지 입문하는 데 이르렀다. 저녁이면 친구 무리와 보이스톡으로 연결해 모바일 게임을 하며 즐거워했다. 그 틈에 평소에는 예민할까 싶어 차마 묻지 못했던 것들을 슬쩍슬쩍 끼워 넣어 물어보곤 했는데, H가 해주는 이야기 속에 1학년때 무리 지어 다니던 아이들이 자주 등장하기에 그 내막을 물었다가 몹시 놀란 일이 있었다.
“사실은 W랑 절교했었어”
“절교? 절교라고?”
“응”
“절교가 뭔지 알아?”
“내가 바보야?”
“그랬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시 만났어?”
“W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했어. 다시 같이 놀자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근데 그땐 왜 고모한테 말하지 않았어?”
“…….”
“W가 왜 절교하자고 했었는지는 알아?”
“잘 몰라.”
“슬프거나, 속상하지는 않았어?”
“조금 그랬는데, 그냥 괜찮았어.”
“W가 사과해서 H도 다시 받아준 거야?”
“응.”
“밉지 않아? 왜 그랬는지도 모르고, 갑자기 다시 친구 하자고 하는데?”
“아니?!”
이렇게 큰 사건이 있었다니! 내게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아니면 정말 무슨 영문인지 몰랐을 수도 있겠으나 H라면 무슨 영문인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생각했다. 영문도 모른 채 절교를 통보하고 떠나간 친구가 1년 여만에 사과와 함께 곁으로 돌아오는 것을 또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준 H. 수북이 먼지 쌓인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 10대 시절의 친구 관계란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이었고 또 인생을 뒤흔들만한 중차대한 사건이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것을 잊었고, 그 친구들과 연락이 끊긴 지도 오래이며, 필요에 따라서는 슬롯적인 손절도 자처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살고 있지만 친구의 절교 통보는 아무리 무던한 H여도 타격감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또래 무리 사이에서 혹여나 짓찢길까, 이렇게 저렇게 당하면서도 제가 그런 줄도 모를까, 절반쯤 접어두고 으레 그래도 되는 애로 치부받을까 없는 걱정도 찾아 하게 되던 아이. 상처를 받을 바에야 차라리 울타리 밖으로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겼던 지난날들이 봄날에 녹아내리는 눈 둔덕처럼 햇빛에 반짝이며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거리의 흙먼지도 섞이고 오가는 사람들 발자국이며 강아지 똥오줌도 섞여있을 눈이다. 숱한 날들의 햇살과 비바람을 맞았을 둔덕이다. 그래야 그 자리에 언젠가 다시 하얗고 소담한 송이송이 눈꽃송이가 사뿐 내려앉을 테지.
12월 25일 자정, 명동성당에서 구유미사를 드리고 두 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오니 거실의 소박한 트리 아래에 선물이 놓여 있다. 한강의 소설바카라과 아디다스 운동화 상자, 그리고 편지였다. 운동화는 비밀을 비밀로 두지 못한 H의 발설로 나도 눈치채고 있었던 품목이었다. 한강의 소설은 의외여서 놀랐는데, 후에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H 이 녀석이 눈치도 없고 숙맥일까 걱정했던 날들이 나를 비웃으며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상자 위에 놓였던 H의 편지를 펼쳐 읽다가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