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는 알지도 못하면서
H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직후의 일이다. 아이들이 온 지 3년째가 되던 해였고, 아마도 나는 아이들의 상태에 대해 잠시 무뎌져 내키는 대로 화를 내기도, 울며 다그치기도 했던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지금도 그런 날들이 많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길고 긴 아이들의 미래와 불안한 나의 미래를 현실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때 한동안은 끓어오르는 그 화를 제어하지 못한 채로 아이들 앞에서 분출시키곤 했던 것이다. 핑계라면 나도 너무 힘들고 지쳐간다는 것 정도였다. 어쩌다 한번 만나는 착한 이모, 삼촌은 많지만 스물네 시간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이렇게 보통의 엄마가 되어가는 건가, 싶은 생각도.
학교 가기 싫어.
그러니까 그 말이 H에게서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 눈을 뜨면서 처음 했던 말이었다. 노심초사 걱정했던 1학년 때도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던 H였다. "H 걱정 안 하셔도 되겠어요, 고모님" 하며 나를 안심시켜 주시던 H의 1학년 담임의 말을 듣고 온몸의 긴장이 탁 풀렸던 순간이 떠올랐다. 학부모를 안심시키기 위해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안심이 아니라 감격했다. '그럼 그렇지. H도 그저 보통의 아이와 같아.' 학교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그나마라도 나름의 학교 생활을 해나가는 H가 대견해 잠든 H를 바라보며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 하지만 감격은 늘 그렇듯 이렇게 짧다.
좀 전에 잠에서 깬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담담하게 말하는 H에게 내려앉은 가슴을 들키지 않으려 안아 일으키고 대충 다독이며 추임새를 곁들인 호들갑을 떨었다. H를 밥상 앞에 앉혀놓고 모든 것은 엄마에게 맡긴 채 출근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참담해하면서도 '학기 초라 부침이 심한가 보다.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 스스로 자조하는 것으로 그 하루를 살았다. 한 번은 대화를 이어가 보기로 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왜 싫은지 말해 줄 수 있어?
뜻밖에도
시시해.
제법 냉소가 묻어 있는 답이었지만 나는 또 물색없이 기뻤다. '시시하다니, 시시하다니 H. 그렇담 고모는 H가 또래보다 한 발 앞서가서 그런 것이라고 해석해도 되는 것이니?' 아닌 줄 알면서도 그렇게 믿고 싶은 대로 좋은 풀이를 골라 붙였다. 당연하게도 H 언어치료 선생님의 의견은 달랐다.
"반어법일 수 있죠.
무엇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는 게
H는 자존심 상할 거예요."
한글도 채 떼지 못한 채로 초등학교 입학을 해야 했던 H는 일 분, 일 초가 아쉽고 급했던 내 마음과는 다르게 느려도 그리 느릴 수가 없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지만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 열을 갖다 붙여야 하는 아이, 그 아이가 바로 H였다. 내 마음은 급하다 못해 역주행이라도 서슴지 않을 심정으로 천국과 지옥을 오갔는데, H는 아는지 모르는지 안갯속에 갇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서있는 것만 같았다.
저녁 9시가 약속이었다. 9시가 되면 무조건 고모와 바카라상에 앉아서 공부하기. 여덟 칸, 열 칸 한글 공바카라을 몇 권을 채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덧셈 뺄셈 수학문제를 얼마나 많이 복사, 붙여 넣기 해서 학습지를 만들었는지도 마찬가지다. 자비 없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바카라상 위에 까맣게 밀린 지우개 밥이 한 움큼씩이었다. 그럼에도 안개가 걷히기는커녕 더 자욱해지는 것 같을 때가 훨씬 많았다. 단호하지 못한 나도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것은 고통이라 어김없이 뜨거워진 눈가를 정돈하지 못하고 눈물바다로 약속 시간을 마무리할 때가 많았다. 차마 안타까워 내가 끝까지 파고들수록 아이는 진땀을 뻘뻘 흘리며 내 눈치를 살피느라 주눅이 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은 날, 그런 날 대체로 내가 화를 냈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그 시절 내가 내준 숙제를 하고, 내 앞에서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땀을 흘리며 빈칸을 채워 넣던 H의 붉은 얼굴을 떠올리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한 번도 거역하지 않았고, 한 번도 안 하겠다 떼쓰지 않은 것마저 안쓰러웠다. 다만 내가 화를 주체할 수 없었을 때, 말 못 하게 억울했던 H가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고모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지.
내가 얼마나 힘든데, 고모는 알지도 못하면서.
나도 잘하고 싶단 말이야.
참다 참다 어렵게 입을 떼던 H는 이미 벌게진 눈가로 닭똥 같은 눈물을 툼벙 툼벙 떨구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미친년처럼 화를 내다가도 정색 한번 없이 왈칵 눈물을 쏟으며 H를 품으로 끌어와 안은 채로 함께 울었던 날들이 여러 해였다. 더 큰 지지와 격려와 응원이 필요했던 H.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일상을 살던 H에게 눈치껏 공부하고 행동하라는 무언의 압박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이거나 출구를 찾을 길 없는 미로 같은 것이었겠다, 생각한다. 눈치를 보지만 눈치챌 수 없는, 오묘한 대화의 맥락들, 훈육과 무한애정의 경계들, 생활과 질서의 규칙들, 온 가족이 '비상시'를 살고 있음에도 들키지 않으려는 안간힘들, 그런 것들 사이에서도 H는 버티어 주었다.
아이가 보내는 무수한 싸인들. 그 싸인들을 모두 알아채기는 불가능이겠으나, 무뎌지지는 말아야 할 터인데. 세 번 보내는 신호 중 한 번은 수신이 되어야 할 텐데 H야. 가장 가까이 있는 고모가 최소한 그 신호에는 가장 기민하게 대처해야 할 텐데, H야. 더 많이 안아줄게. 더 많이 응원해 줄게. 화는 조금만 낼게. 더 많이 얘기해 줘, 더 많이 신호를 보내줘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