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송달로 도착한 시절

지나간 후에도 지나치지 못한

byAnna Jang

오랜만에 우편실에 쌓여 있는 택배들을 살피러 내려갔다. 며칠 전에 등기 우편을 찾으러 갔을 때 수취인불명처럼 쌓여 있는 상자들을 보고도 못 본 척 등기만 찾아 올라왔던 터라 짬날 때 그거라도 해치우자 싶었다. 한때는 광고주였던 나에게 잊지 않고 매월 대여섯 개 잡지사에서 바카라을 보내주고 있는 것인데, 배송 명단에 이름이 한번 올라가고 나면 다시 삭제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움을 오랜 시간 동안 느끼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들의 관리 대상이다. 언젠가는 다시 광고 예산을 잡아줄 수 있는 담당자이기 때문이다. 꾸준히 광고를 할 때라면 경쟁사 체크도 해야 하고 모니터링도 해야 하니 업무상 중요도가 높을 수밖에 없지만 그렇지 않은 때라면 자연히 관심도가 떨어져 우편물이 왔는지 안 왔는지, 쌓이는지 없어졌는지, 사실상 거의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총무팀에서 연락도 여러 번 받은 참이었다. 도착한 지 오래되고, 부피도 크고, 무겁기까지 한 상자들이 어수선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니 치워달라는 뜻이다. 언젠가는 큰맘 먹고 뜯지도 않은 택배 박스와 에어백 포장들을 그대로 구루마에 실어 지하 재활용 코너에 몰래 실어다 둔 적도 있었다. 대부분은 에디터로 입문해 한창 일을 배우던 시기에 교과서처럼 탐독하던 바카라들이었고, 그 바카라들을 직접 만들고 싶어 언저리를 기웃거리던 회사들이기도 했다. 내 역량으로는 넘어다볼 수 없다 여긴 곳도 있었다. 결국엔 그 대여섯 개 잡지사 중 한 곳에서 나는 삼십 대의 전부를 보냈다. 그럼에도 고백하자면 매일 서너 번씩은 우편실 앞을 지나면서도 모른 척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짬날 때 그거라도 해치우자 싶었던 마음보다는 내년부터 광고를 재개할 것 같은 내부 움직임이 있어 슬슬 동향 체크를 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더 크기도 했다. 바카라이 인쇄되어 나오는 날만을 기다리기도 했고 이제나 저제나 우편함을 기웃거리던 시절도 있었건만 떠나온 고향을 바라보는 차가워진 마음이라면 설명이 될 수 있을까. 그곳에서 도착한 우편물들은 나를 키워낸 터전이면서 떠나는 나를 미련 없이 보내고, 떠난 뒤에도 결코 찾지 않아 서운한 마음이 가득한 고향으로부터 온, 타인에 의한 공시송달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수취인이지만 굳이 취하지 않더라도 강제되지 않고, 합의되지 않았지만 받은 것으로 간주될 수는 있는 우편물. 당장 되돌아간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삼십 대의 내 모든 피땀눈물을 받아준 곳에서 관심과 애정보다 필요와 목적에 의해서 보내어진 업무상의 공식 문서 같은.


뜯지 말고 재활용코너에 갖다 놓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엔 최근 것들만 좀 추려서 자리로 가지고 올라왔다. 그냥 가지고 있다가 누가 찾거나 회의에 필요하게 되면 뜯어서 쓸까, 또 고민하다가 칼까지 챙겨 들고 하나하나 테이핑을 뜯어 열어보기 시작해 선 채로 열댓 권을 훑어보기까지 한 것이다. 패션엔 문외한이면서도 명품 브랜드의 아름다움은 언제 보아도 경이롭고, 실험적인 화보컷들의 놀라운 완성도는 몽롱하게 안개 낀 머릿속에 섬광과도 같은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노련한 편집자들의 벼려진 펜대로 써 내려간 날카롭고 서늘한 문장들도. 가장 아름다웠던 페이지를 꼽자면 양재꽃시장 화훼공판장에서 찍은 디올의 2026 SS컬렉션 화보였다. 풍만한 서양란 화분들이 올려진 스테인리스 전시대 위에 레게머리를 한 서양 모델이 짧은 가죽 미니스커트를 입고 눈을 치켜뜬 채로 나를 보고 있다. 친절한 배경이 되어 주었을 아름난원, 플라워타운, 보람농원, 뿌리농원, 한일식물원의 정리되지 않은 것처럼 연출된 날것의 아름다움이 명품하우스가 내세운 화려한 모델들과 어우러지는 얼음장 같은 충돌. 어떤 순간, 어떤 감각을 심연에서 끌어올리기 위해 새벽까지 시추탑을 세우며 씨름을 하던 내가 도달하고 싶었던 어떤 폭발의 지점을 오랜만에 마주하고 있다. 누구의 관심도 싫었고, 타인에 대한 그 어떤 정성도 들이고 싶지 않았던 삼십 대 이후의 삶은 지금 어디로 흐르고 있는 것일까. 에디터가 원고의 도입에서 에릭 로메르 감독의 대사를 인용하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원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좋아한다” 말하자면 나는 지금 그와 정 반대의 길을 택해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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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람없이 사시사철 아름다운 이곳에 정착한 지도 6년이 넘었다.


보편적이지 않던 일상에서 건져 올려진 아이들에게 내가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처방은 사랑뿐이었다. 훈육보다 포용이 필요했던 아이들. 무제한의 사랑과 절대적 지지를 경험하게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가장 강력한 치료제라고 생각했다. 퍼도 퍼도 또 풀 것이 남아 있는 것 또한 그것뿐이었으므로 나로서는 가장 풍부하고 구하기 쉬운 자원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회사에 있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했다. 회사 상황과 맞물리면서 야근을 거의 하지 않고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정도의 업무량만 주어졌기에 가능했다. 반대로 야근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출근 직후부터 곧바로 고밀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고도 남은 일은 오늘 할 일이 아닌 것이라고, 애써 생각하며 퇴근을 감행했다. 욕심껏 일을 맡아 제대로 해내고 싶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던 시절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때는 누가 시키지도 않고, 굳이 안 해도 됐을 야근을 자처하거나 그래도 못다 한 일을 원칙대로 마감하기 위해서 집으로 싸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 시절 애 엄마였던 선배들이 무거운 엉덩이로 눌러앉아 있는 내게 퇴근 인사를 하며 나갈 때마다 가능한 못 들은 것처럼 모니터에 고개를 묻곤 했다. 과정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나 역시 그 시절의 선배들만큼이나 칼퇴근이 너무나 중요한 사안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과 회사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날들이었다.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관계가 유지되던 친구 몇에게도 내 상황을 알리기가 쉽지 않았다. 만나는 횟수가 줄고 자연스럽게 연락 두절 단계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나에게 말로 다 못할 애정을 준 그들에게 미안했으나, 누추한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영화, 전시, 공연, 여행 등등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하고 싶지 않았다. 바카라 한 줄이나 TV 프로그램에 1분 1초 눈을 대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시간을 나는 모두 아이들과 함께 했다. 가능한 어디에 가거나 무엇을 함께 하는 데 썼고, 무얼 하지 않더라도 부르면 바로 닿을 수 있는 곳에서 내 존재를 드러내 주었다. 나는 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조건 없이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 나의 태도도 일반적이지는 않아서 가족들 조차 ‘쟤가 왜 저렇게까지 하나’ 하며 나를 의아해했다.


도망치듯 떠나왔던 그날의 느낌이 여전히 파편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마음이 쓰이는 팀원이 몇 있었지만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 부러 차갑게 대했던 것 같고,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기 위해 나와 거리를 두었다. 10년 넘게 생활했던 곳이었지만 챙길 것이라고는 마지막 남았던 짐을 대충 욱여넣은 상자 하나가 전부였다. 선망해마지 않던 대표님과 선배 편집장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따뜻하고 아쉬운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나는 그저 조용한 마무리를 택했다. 아름다운 사옥은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아 그것이 가장 안타까웠다. 기계식 주차장에서 차를 올려주시던 관리반장님께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드리고 입구를 빠져나오는 것으로 나의 어떤 한 시절은 정말 끝이 났다. 종일 차올랐던 눈물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봇물 터진 듯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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