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만난 세계

고여있던 시간이 슬렁슬렁

byAnna Jang

나름으로는 큰 결심을 하고, 부모님 댁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분가한 것이 2021년 10월이었다. 아이들이 오면서 부모님과 내가 지내던 공간으로는 모자라 아버지가 옥탑방으로 거처를 옮기셨고, 엄마 역시 개인 공간 없이 거실 생활을 하시는 중이었다. 형제들이 모두 출가하고 난 뒤라 옥탑방은 보일러도 끊어버리고 창고처럼 쓰고 있었는데 짐들을 대강 비워내고 침대 하나만 들여서 아버지가 지내기 시작하셨다. 겨울이면 난방도 되지 않고, 여름이면 옥상 복사열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찜통 속에서 아버지는 겨우 잠만 주무셨다. 엄마가 텃밭을 가꾸며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슬픔을 쏟아내실 때, 아마도 아버지는 그 냉골에서, 그 찜통 속에서 눈을 감은 채로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며 색색 숨을 몰아 쉬고 있었을 것이다. 위층 옥상방에서 아버지가 버티고, 거실 마룻바닥에서 엄마가 지키던 그 집의 한쪽 작은방에 H와 J, 그리고 내가 있었다. 아버지와 엄마가 비워주신 큰방을 나누어 써도 됐을 텐데 아이들은 집안에서도 나와 떨어져 자려하지 않았다. 냉골에서 잠을 청하는 아버지를 보는 것은 추위만큼이나 혹독했기에 겨울이 오기 전으로 서둘러 날을 잡아 이사를 했던 것이다. 서른도 한참 넘은 나이였지만 그때까지 부모님 곁을 떠나 살아본 적 없는 나였다. 물론 여전히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엎어지면 닿을 지척의 집이었고, 분가가 무색하게도 위에서는 아버지가 옆에서는 엄마가 우리 셋을 끊임없이 지키고 보살피는 돔(dome) 안에서 살아가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돔 안에는 H와 J의 유치원과 학교가 있었고, 동네 놀이터와 마트, 편의점, 문구점, 태권도장, 중랑천 자전거길까지 우리의 생활 터전이 전부 들어있었다. 낮에는 치열하게 정해진 일과를 소화하고 해가 지면 콧바람 쐬며 밤마실을 다니던 길들이다. 오래된 다가구 주택이 밀집된 동네라 드라마나 인스타그램 속에서 보이는 낭만적인 산바카라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지나온 시간들 덕분인지 이제는 마음속에서나마 퍽 아름답게 다듬어졌다. 그때만 해도 상담치료와 언어치료, 놀이치료까지 주말을 다 써도 모자랄 일정들을 소화하던 즈음이라 동네 산바카라을 할 수 있는 날은 예외 없이 금요일 저녁, 아니면 토요일 저녁, 내일이 공휴일인 전날 저녁, 드물게 어디 가지 않은 주말 오후였다. 내가 퇴근해서 왔을 때 정해진 생활 규칙 준수 사항 정도 – 고모가 내준 숙제, 유치원 숙제, 놀이센터 과제, 떼를 썼는지 안 썼는지 등등 – 를 살피고 후다닥 저녁 한 숟갈을 뜨고 난 뒤에 대뜸 말하는 것이다.



산바카라 가자!



그렇게 말할 때 무엇보다 내 기분이 좋다. 억지로라도 내가 만들 수 있는 여유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너무나 신나 하는 것이 절로 느껴진다. TV를 보고 있거나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내가 던진 그 한마디에 아이들은 갑자기 부산해진다. 못다 끝낸 숙제를 마저 하기도 하고, 가지고 나갈 장난감을 고르기도 하고, 스스로 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산바카라 갔다 오면 아직 지키지 않은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공수표를 간절히 날리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H나 J가 먼저 산바카라을 청해 오는 것이다. 그런 경우는 대체로 ‘산바카라이라니, 당치도 않을 상황’ 일 때가 많지만 내가 곧 마음을 고쳐먹고 열에 일고여덟은 저녁 어스름 속으로 걸음을 떼놓곤 했다.

할 일을 다 하고도 나의 퇴근이 늦어지는 여름날의 저녁이면, 아이들은 나를 집안에서 맞지 않고 집 앞 골목 어귀에서 맞아주었다. 저녁을 먹고도 훤한 대낮 같은 날, 밖에서 너무너무 놀고 싶은 나머지 저들끼리 놀이터까지는 차마 가지 못하고 할머니가 내려다보면 바로 보실 수 있는 골목길까지만 허락을 받고 나와 놀곤 했던 것이다. 별것 하지 않고도 아이들은 이미 신이 나 있다. 파자마 바지에 점퍼만 걸친 채였다가, 또 어느 계절엔 무릎이 다 해져 할머니가 기워주신 낡은 내복차림일 때도 많았다. 그러고도 얼굴 가득 어찌나 신이 나 있는지 그 구김 없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어두운 마음이 조금은 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걷고, 아이들은 바퀴를 구르며 쌩쌩 나간다. 자전거 아니면 킥보드다. 어찌나 당차고 거침없이 나아가는지 그런 에너지로 세상을 밀고 구르며 나아간다면 아무 걱정도 없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기대 보기도 한다. 그 아슬한 속도 속에서 느끼는 쾌감으로 아이들이 또 한 뼘 자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내가 아이들을 앞서 가는 일은 없다. 가끔은 아이들이 멀찌감치 떨어져 걷고 있는 내게 되돌아오거나 내가 곁으로 다가설 때까지 한 자리를 맴돌고 있을 때도 있다. 나와 거리가 너무 멀어진다 싶거나 무언가 미심쩍은 기분이 들 때 그럴 것이다.



괜찮아. 고모 여기 있어.
고모 혼자 어디 가지 않아.
너희를 두고 가지 않아.
여기는 안전한 우리만의 돔인걸.


저녁 산바카라 길의 끝에 있는 것은 동네 놀이터, 동네 시장, H의 학교 운동장, 조금 더 멀리는 뚝방길 정도다. 놀이터에 가면 나도 잡기 놀이에 뛰어들어 인심 좋은 술래가 되어 주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곤 한다. 시장에 가면 사과 몇 알, 자두 몇 알을 사거나 하프마트에 들어가 아이들은 장난감을, 나는 이런저런 생활 용품을 구경한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함께 시소를 타거나 벤치에 앉아 구름다리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뚝방길에서는 누워가는 태양을, 조랑조랑 사연들을 매달고 있는 텃밭 작물이나 분주한 개미 행렬을 구경한다. 고작 이 정도의 콧바람 만으로도 우리는 무언가를 함께 나눈다는 감정으로 충만하다. 애들은 원래 밖에서 놀기를 좋아한다지만 나는 그 시간들이 이 아이들에게만큼은 꼭 필요한 어떤 치료제라고 믿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목적 없이 걷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아이들을 핑계 삼는 것일 수도. 우리가 지나온 길 어딘가에 아직 고여 있는 시간들이 한결 나긋해진 내 걸음걸음, LED 불빛 반짝이는 킥보드 씽씽 바퀴, 따릉따릉 자전거 페달을 타고 슬렁슬렁 풀어 흩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맺혀 있던 마음들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잊기를,

떠올라도 담담히 아프지 않기를.

걷다가 아름다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아이가 되기를

달리다가 바람이 전하는 소리를 마음으로 듣는 사람이 되기를

나무와 풀, 꽃과 강아지와 친구 할 수 있기를.

그런 어른,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은 고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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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릴 때가 있었나 싶게 점점 빠르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새삼 그 시절의 밤공기가 그리워진다.



2026년 10월, H와 J는 이제 나의 산바카라 제안에 귀를 쫑긋 세우기보다 "왜?"라고 묻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 사이에 집을 한번 더 옮겨 밤낮으로 산바카라하기 좋은 공원을 끼고 있는 동네에 안착했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이 집으로 이사한 처음 1~2년간은 그 공원의 밤공기를 꽤나 자주 마셨는데 이제는 아니다. 학원에 게임에 친구들에, 나와의 산바카라 말고 할 것들이 정말 많은 사춘기 소년들이다. 함께 보다는 혼자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고, 가족보다는 친구와 함께이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춘기 중학생. 나는 돔 안을 혼자 걷고, H와 J는 그 너머를 오가는 중이다. 곧 걷힐 돔, 섭섭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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