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는 자라고, 호박꽃도 피고

어쩌다, 텃밭 17

by혜솔

어제 텃밭에 다녀오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오늘 다시 밭으로 갔다. 지난주에 심어둔 배추가 일주일 사이 제법 자라 있었다. 여린 잎들이 파르르 펼쳐진 모습을 보니 반가움이 먼저 밀려왔다.

배추를 심은 뒤로 물을 자주 주어야 했지만 로리가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일주일 동안 텃밭에 오지 못했다. 잘 버티고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배추는 푸른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다만 흙은 바싹 말라 있었다. 얼마나 목이 말랐을까 싶어 물을 흠뻑 주고 영양제도 뿌려주었다.

무는 어느새 싹이 빼곡하게 올라와 있었다. 작년에 했던 기억을 더듬어 어린싹 사이에 손가락을 넣고 하나씩 솎아냈다. 올해는 밭을 제대로 갈아엎지도 못했고 퇴비도 넣지 못한 채 서둘러 심었다. 아무리 영양제를 챙겨준다 해도 작물을 키우는 가장 큰 힘은 흙에서 나온다. 때를 놓친 퇴비가 못내 마음에 걸리지만, 이제 와 어쩌겠는가. 물 주고 들여다보고 정성을 보태는 수밖에.
그래도 배추 잎이 하루가 다르게 넓어지는 것을 보면 벌써부터 김장 생각이 난다. 아직 손바닥만 한 배추를 두고 속이 꽉 찬 김장배추를 상상하다니, 농사짓는 사람의 마음은 작물보다 몇 달이나 앞서 자란다.



밭에 오지 못한 로리도 날마다 텃밭 걱정을 한다.

“우리 텃밭 식물들 잘 자라고 있어?”

“비가 안 와서 어떡하지?”

“소나기 한 번 오면 좋겠다. 우리 식물들 물 먹게.”

직접 심고 물을 주었던 기억이 있으니, 하늘에 비가 없는 것까지 걱정하는 모양이다. 아이 마음속에도 작은 텃밭 하나가 자라고 있는 것 같아 그 말이 기특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배추보다 더 놀라운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웃 텃밭에 배추를 심기 위해 밭을 정리하다가 꽤 긴 뱀 한 마리가 밭의 풀숲에서 쓱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동안 밭주인이 아파 나오지 못한 사이 그곳은 밭인 지 밀림인지 모를 만큼 풀이 우거져 있었다. 예전에 내가 한 번 풀을 잘라준 적도 있지만, 워낙 무성해서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그 숲 같은 풀밭을 걷어내던 중 뱀이 나타나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고, 마침 근처에 있던 고양이 두 마리가 달려들어 뱀을 잡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동안 풀을 부지런히 깎아 우리 밭을 훤하게 해 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늘은 장화를 단단히 신고 밭에 들어갔다. 어제까지는 배추가 얼마나 자랐나 살피며 걸었는데, 오늘은 배추보다 발밑을 먼저 살폈다.


텃밭에서는 배추도 자라고 무도 자라고, 가끔은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이야기도 자란다. 올해 김장배추가 잘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퇴비를 놓친 만큼 더 자주 찾아가 물을 주고 마음을 보태야겠다.

장화도 꼭 챙겨서.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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