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텃밭 6
어제는 오래 기다리던 감자 캐는 날이었다.
주말에는 모두 시간이 맞지 않아 금요일 저녁으로 날짜를 정했다. 로리를 유치원에서 데려오고, 며느리와 아들의 퇴근을 기다렸다. 가족이 모두 모여 저녁을 서둘러 먹고 감자 자루를 챙겨 텃밭으로 향했다.
사실 감자를 캘 때가 된 건 로리 덕분에 알았다. 유치원 텃밭에서 감자를 수확했다며 신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감자도 이제 캐야겠네."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텃밭에 도착하자 아들은 물통에 물을 채우러 호스를 가지러 갔고, 며느리와 나는 감자 줄기를 모두 걷어낸 뒤 조심조심 흙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자 흙 속에서 통통한 감자가 하나, 둘 얼굴을 내밀었다.
"우와!"
그 순간 로리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할 거야! 내가 해 볼 거야!"
두 손으로 흙을 헤집으며 알감자를 하나씩 주워 담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감자는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여기저기에서 계속 나타났다. 하나를 꺼내면 또 하나가 나오고, 그 옆에서 또 하나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씨감자 몇 알 심어 놓은 지 석 달이 되었나 보다.
겨우 몇 천 원어치 씨감자가 두 자루 가득한 알 감자로 돌아왔다. 이보다 수지가 좋은 투자가 또 있을까 싶어 절로 웃음이 났다.
로리 외갓집에 보낼 것은 굵고 예쁜 감자로 따로 골라 담았다. 직접 키운 것을 수확해 나누는 기쁨은 시장에서 장을 볼 때는 느낄 수 없는 행복이다. 손으로 흙을 만지고, 땀을 흘려 얻은 것이어서 더 귀하고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는지.
감자를 다 캐고 나니 빈 두둑이 남았다.
며칠 전부터 그 자리에 무엇을 심을지 고민했었다. 모종 가게에 들러 물어보니 지금은 옥수수와 깻잎을 심기 좋다고 했다. 토란도 두 포기를 더 사 왔다. 우리는 다시 삽으로 흙을 고르고 두둑을 반듯하게 만들었다. 마치 새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기 전처럼 밭이 깨끗하게 단장되었다.
그때 아들이 길게 호스를 끌고 왔다.
옥수수 한 줄.
깻잎 한 줄.
토란 두 포기.
새 식구들이 차례차례 흙 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물을 흠뻑 뿌려 주었다.
"비 오는 것처럼 한번 줘 보자."
호스 끝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밭 위로 빗줄기처럼 흩어졌다. 메말랐던 흙은 순식간에 짙은 갈색으로 변했고, 식물들은 기다렸다는 듯 잎을 활짝 펼쳤다. 요즘은 이상하리만큼 비가 오지 않아 텃밭이 늘 목말라 보였는데, 지금 우리가 구름이 된 기분이었다.
물통에 물도 가득 채워 두었다. 다음에 올 때까지 조금이라도 덜 목마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들이 감자 두 자루를 번쩍 들어 차에 실었다. 부자가 된 느낌이다. 몸은 흙투성이였고 팔도 뻐근했지만 마음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로리가 모기에게 여기저기 물려가면서도 끝까지 알감자를 찾아 주워 담는 모습이 자꾸 눈에 어른거렸다. 작은 손으로 감자를 하나씩 바구니에 넣을 때마다 마치 보물을 찾은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던 로리도 피곤한가 보다.
텃밭의 행복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몇 알의 씨감자가 두 자루의 감자가 되어 돌아오는 일이며 흙 묻은 손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일이다.
직접 키운 것을 가족과 나누고, 다시 다음 계절을 심는 일이며 그 모든 시간을 로리와 함께 기억으로 쌓아가는 일이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은 해마다 다시 씨앗을 심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