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직서를 들고 온 2년 차

현재 Ep.1

by부지러너

함께 일하던 팀원이 퇴사를 하겠다고 찾아왔다.

입사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채용 매니저였다. 큰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친구였다. 적극적이면서도 둥글둥글한 성격에,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맡은 일에도 열심이었다.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아끼는 팀원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친구가 회사를 떠나겠다고 했다.

처음 든 생각은 당연히 붙잡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채용 담당자가 빠지면 당장 새로운 사람을 뽑아야 했다. 그동안 함께 쌓아온 채용 노하우와 업무의 연속성도 걱정이었다. 무엇보다 잘하는 사람이 떠난다는 사실 자체가 아쉬웠다.


이유를 물었다.

채용을 전문으로 하는 조직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더 깊이 쌓고 싶다고 했다. 다양한 HR 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스타트업보다, 채용에 집중할 수 있는 채용팀이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처음 합류했을 때는 채용뿐 아니라 다양한 HR 업무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 이야기했었는데,

퇴사를 결심한 순간, 바로 그 장점이 단점이 되어 있었다.

생각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직접 경험해 보고 나서야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며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친구가 원하는 커리어를 지금의 조직에서 만들어 주기는 어려웠다.

그때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 떠올랐다.

회사의 성장뿐 아니라 개인의 성장도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것이 함께 일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어야 한다고.

그 말을 지키려면 오히려 보내주는 것이 맞았다.


문득 오래 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대기업에 입사한 지 2년이 되었을 무렵, 당시 팀장님을 찾아가 퇴사하겠다고 말씀드렸던 순간이었다.

엔지니어가 아닌 HR 업무를 하고 싶었다. 지방의 사업장을 떠나 서울에 있는 가족 가까이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당시 팀장님은 단호하셨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회사인데, 공부나 창업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퇴사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고 하셨다.

언젠가 반드시 후회할 선택이 될 것이라고도 하셨다.

그렇게 붙잡혔다. 결국 그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원했던 시기에 원하는 직무로 옮기지는 못했다.

대신 엔지니어에서 대외협력, 사업개발, 자회사 관리, HR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일을 경험했다.

돌이켜보면 그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스타트업에서 다양한 조직과 사업을 바카라임질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만약 그때 퇴사했다면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원하던 HR 전문가가 되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지금처럼 폭넓은 경험을 쌓지는 못했을 수도 있다.

그때 팀장님의 판단이 틀렸다고만 할 수 없는 이유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기에 선택한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계획대로 되지 않은 길에서 더 큰 기회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당시의 선택권까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입장이 바뀌었다.

퇴사를 고민하던 2년 차 엔지니어가, 퇴사를 고민하는 팀원을 마주하는 리더가 되었다.

과거의 팀장님처럼 붙잡을 수도 있었다. 회사에 남으면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설득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가능성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원하는 방향을 알고 있는 이상, 회사의 필요만을 이유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다.

회사와 구성원의 관계는 어쩌면 연인 사이와 닮았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함께 성장하며, 상대의 존재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때

관계를 이어갈 이유가 생긴다.

반대로 한쪽이 더 이상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오래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퇴사하는 날, 큰 꽃다발을 선물했다.

그 친구는 시집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에게 꽃다발을 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아쉬웠고, 그만큼 잘되기를 바랐다.

새로운 회사에서는 원하는 전문성을 쌓고, 이곳에서 느꼈던 한계를 넘어 더 성장하기를 바랐다.

좋은 사람과 오래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사람이 더 잘될 수 있도록 보내주는 것 역시 리더의 역할일지 모른다.

그때의 팀장님이 붙잡아 주셨기에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붙잡지 않기로 했다.

어느 쪽이 더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회사는 사람을 붙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원하는 삶까지 대신 선택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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