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의 민낯

3장 [미지의 경로] 16화

by아제

"엄마! 아람시는 제가 지킬게요!"


넷플 애니메이션 《피닉스맨》의 초등학생 주인공 현우가 외쳤다.


며칠 전부터 짬짬이 보고 있었다.


피닉스맨으로 변해

엄마가 시장인 아람시를

나쁜 놈으로부터 지켜내는 스토리였다.

7세 이상 관람가 콘텐츠이고

한 편이 10여 분밖에 안 됐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공격하라 나의 몬스터!!"


"어림없닷! 피닉스맨 파워!!"


"피닉스맨, 분하다!

다음번엔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이렇게 몇 번 툭닥거리다 보면 피닉스맨이 몬스터를 물리치고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지극히 단순한데 머리가 맑아졌다.

기분도 좋아졌다.

나이가 들수록 정신연령이 낮아지는 걸까?


어쨌든 재미있었다!


"피닉스맨 변신!"

매번 똑같은 변신 장면이 1분 넘게 나왔다.

그런데 그걸 또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 후렴구처럼 중독성이 있었다.

어느새 나도 "변신!" 하고 큰 소리로 따라 외치고 있었다.


아람시의 평화를 지키는 피닉스맨!

저도 팬이에요!


평화!


몬스터가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피닉스맨 덕분에 평화가 유지됐다. 그 평화가 있으니 아람시 시민들이 자유롭게 살아갔다.

그렇네. 평화가 자유보다 먼저 있어야 하네?


뜬금없는 생각들이 또 부스스 올라왔다.


'난 평화롭나?'


글쎄.

평화로우면 오늘도 머릿속 폭풍우를 잠재우느라 노트 세 쪽을 꽉꽉 채워서 쓰고는 그것도 모자라서 줄 쳐진 칸 위 여백까지, 그리고 페이지 옆구리에 손가락 하나만 한 빈 공간까지 깨알같이 못다 한 말을 써대고 있었을까?

굳이 무슨 피닉스맨처럼 아침마다 종이 위에서 몬스터들하고 싸우고 있었을까?


아. 이렇게 아침마다 몬스터들을 물리치니까 나의 평화도 간신히 유지가 되는 거겠지?

모닝페이지 한 번 쓰는 동안 피닉스맨 세 편을 볼 수가 있는 건데, 그 정도로 내 몬스터들이 지겹게 많은 거겠지?

나의 피닉스맨, 모닝페이지 덕분에 평화는 그럭저럭 지키고 있는 것 같네.


'그런데... 난 자유로운가?'


이제는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보스도 없다. 끊임없이 챙겨야 하는 아랫사람들도 없다. 옆에서 잔소리하는 사람들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면 된다. 늦잠을 자도 되고, 운동을 해도 되고, 실컷 바카라만 봐도 되고, 하루 종일 피닉스맨만 보며 앉아있어도 된다. 당장 밥 굶을 걱정까지는 안 해도 된다.


그런데... 자유? 왜 잘 모르겠지?


온갖 곳에서 말하는... '경제적 자유'는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도대체 돈이 얼마나 있어야 경제적 자유를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 아무 생각 없이 한 달에 얼마나 쓸 수 있으면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 거냐고!" 혼잣말이 터져 나왔다.


"근데, 딱 오늘만 보면 난 경제적으로 자유로운데? 오늘 크게 돈 쓸 일도 없고, 또 딱히 쓰고 싶은 데도 없고. 앞으로 몇 달을 봐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지금 몇 달을 얘기했냐? 몇 년 후엔 어떡할 건데? 몇십 년 후엔? 지금 딱히 돈벌이도 없잖냐!'

반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거 아냐? 이러다 돈 떨어지기 전에 죽으면 경제적 자유를 충분히 누리다 산 거잖아. 왜 안 죽고 오래 산다고만 생각하지?"


'추세가 장수 추세 아니냐. 지금 특별히 아픈 데도 없지 않냐. 그럼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두어야지!'


"그래서 지금 글도 쓰고, 또 지금까지 성과가 형편없기는 했지만 주식투자도 하고 있잖아!"


'그것들이 잘된다는 보장이 있냐. 잘 안 되면 어쩔 거냐.'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걸 또 잃지 않는다는 보장은 있냐? 요새 건물주들도 힘들어 죽는다는데?"


'건물도 없는 놈이 웬 건물주 걱정이냐. 네 앞가림이나 해라. 하루빨리 너도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야 하지 않겠냐!'


"아, 뭐! 어쩌라고! 그래서 지금 뭘 어떡하라고!"


'그러니까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라고. 오늘만 자유로우면 뭐 하냐. 죽을 때까지 자유로워야지!'


"그놈의 경제적 자유! 경제적 자유! 이게 자유냐? 끝없는 투쟁이지!! 무슨 권력 투쟁이냐? 자유가 아니라 권력을 뺏기지 않기 위해 매 순간 노심초사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


'그러니까 네가 한심한 거다. 경제적 자유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 틈을 타고 들어와 온갖 사람들이 너를 무시하고 못살게 굴고 부려 먹으려고 달려들 텐데, 당연히 너를 위한 최소한의 권력을 확보하자는 게 뭐가 잘못된 거냐?'


"아, 머리 아파! 간신히 지켰던 평화도 다시 다 깨져버렸네. 경제적 자유인지 나발인지 그 따위 말은 도대체 누가 만든 거야?

경제적 자유니 뭐니 하기 전에 경제적 평화가 먼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경제적 평화라는 말은 없는 거냐고!

그리고 경제적 자유는 밥 걱정만 없으면 된다는 거야, 진짜 수백억 자산가가 돼야 한다는 거야? 왜 다들 자기 말만 맞대? 피닉스맨은 몬스터만 물리치면 끝인데 말이야!

이제 경제적 자유란 말만 들어도 신물이 올라온다고!!"


"퍽!" 머리가 핑 돌 만큼 세게 맞았다.


"퍽!" 노란색 단무지 방망이가 분명했다.


"퍽!" 오늘은 맞는 게 오히려 머리가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더 세게 맞아서 내 머릿속 쓸데없는 말들을 다 날려 보내줬으면 좋겠다.


"정신이 좀 드냐?"


"더 때려 주세요. 좀 더 맞아야 정신이 들 것 같아요."

"더 때리라니까 때리기 싫은데? 크크!"

"아잇! 때리지 말랄 땐 죽어라 때리더니!"

"내 맘이다, 이 놈아. 근데 왜 혼자서 끝없이 중얼중얼 방언을 하고 난리냐? 귀신 씌었냐?"


"괜히 '평화와 자유'... 이딴 거 생각하다가 평화도 다 깨졌어요. 머리만 잔뜩 아파요!"

"크크크크크! '한 동안 뜸~했었네!' 이 노래 부른 애들 말이냐?"

"아잇, 그건 '사랑과 평화'란 밴드고요! 아람시의 평화! 그리고 저의 경제적 자유! 이렇게 생각하다가 완전히 꼬여버렸다고요!"

"아람시가... 뭐가 어쨌다고? 이거 완전 헛소리네. 네가 진짜 미쳐가는구나?"

"인정해요. 저 진짜 미쳐가는 것 같아요. 저 어디 정신병원에라도 감금해 주세요. 아! 그러면 되겠네. 정신병원에 죽을 때까지 갇혀 있으면 거기서 죽을 때까지 밥은 줄 테니 경제적 자유가 달성되는 거구나! 그런 방법이 있었네!"


"퍽!"

"덜 맞았네."


"퍽!", "퍽!", "퍽!"

"심하게 덜 맞았어."


"퍽!", "퍽!", "퍽!", "퍽!", "퍽!"


맞다가 녹초가 됐다.

그러다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니 진짜 정신병원이었다.


"응? 왜 이렇게 불편해?"


내 양손이 내 몸을 껴안고 있었다. 아. 구속복을 입고 있었다. 뭐야, 날 진짜 정신병자 취급하는 건가?


"하느님! 아까 말한 건 농담이에요! 아시잖아요! 진짜 정신병원에 가두면 어떡해요? 이렇게 묶어놓으면 글도 못 쓰잖아요!"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지 않았냐? 그리고 여긴 정신 병원이 아니다. 영계에서 운영하는 정신 요양원이다. 너처럼 생각이 폭주하는 놈들만 모아 놓은 곳이다. 평생 먹여주고 재워준다. 그럼 경제적 자유가 실현된다며? 소! 원! 성! 취! 크크크!!"

웃겨 죽는 얼굴로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내려왔다 하며 폴짝거렸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누가 진짜 그렇게 하고 싶다는 거였냐고요!! 이딴 경제적 자유는 필요 없다고요!"


"한 입으로 두 말하네? 이게 네가 원하는 경제적 자유가 맞다니깐? 여기서는 진짜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삼시세끼 밥도 엄청 잘 나와! 죽을 때까지 의사하고 간호원들이 다 챙겨줘. 뭐가 걱정이냐? 아, 맞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서는..."

"네가 아무리 미친 짓을 해도 아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니까? 넌 원래 미친놈이니까? 진짜 네 맘대로 다 해도 된다고!! 크크크크크!! 천국이다, 천국! 미친놈의 천국!!" 낄낄거리며 벽과 천장을 번갈아 밟고 날아다니면서 온 방 안을 헤집어 놨다.


그때 덩치가 큰 남자 간호사 두 명이 방으로 들어왔다.


"이제 다른 방으로 옮기겠습니다."

"아니, 저는 여기 잘못 온 거라고요! 하느님! 저 집에 보내주세요!"

"잘못 오신 것도 아니고, 이제 여기가 집입니다. 그리고 여기 어디에도 하느님은 없습니다!"


씩 웃으며 나를 번쩍 들어 옮겼다.

"하느님! 하느님!"

그렇게 입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 그곳에 있는 환자 몇과 친해졌다. 보기엔 멀쩡한데 그들도 나처럼 갇혀 있었다.


"선생님은 뭐 하시던 분이셨나요?"

"저는 철학 교수였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제가... 경제적 자유란 말이 철학적으로 모순이라는 증명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가족들이... 저는 가장의 자격이 없다면서 여기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가족들이 영계에 입원도 시킬 수 있나? 됐다. 여기서 그런 걸 따져봤자 머리만 아프다.


"...아이고. 도대체 무슨 증명을 하셨는데요?"

"매우 쉽습니다. 노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이런 말은 들어보셨죠?"

"물론이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거잖아요."

"그럼 경제적 자유는요?"

"경제적 자유는? 하고 싶은 경제적 활동을 하는... 게? 아니네요?"

"그렇죠. '경제 활동을 안 해도 먹고살 수 있다'가 사람들이 말하는 경제적 자유의 의미죠."

"맞죠. 단지 먹고살기 위해 억지로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건 싫으니까요."

"즉, 경제적 활동을 안 하는 게 경제적 자유의 정의인 거죠. 다시 말해 절대로 경제 활동을 하면 안 됩니다. 돈 버는 일을 하는 순간 경제적 자유는 바로 무너지는 겁니다."

"듣고 보니 그렇네요?"

"논리적으로 아주 정확한 겁니다. 그래서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다고 주장하면서도 계속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주식 투자를 하고,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건, 경제적 자유를 이룬 게 아닌 거죠."

"희한하게 일리가 있네요?"

"일리가 아닙니다! 엄밀한 철학적 사고를 거친 증명입니다. 그렇게 하는 건 '경제적 자유라는 상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뿐인 거죠. 실제적인 경제적 자유의 의미는 훼손한 거니까요."

"그렇다고 치자고요. 근데 그런 증명을 좀 했다고... 가족들이 여기에 가뒀다고요?"

"저는 철학자입니다. 거짓으로 삶을 살 수는 없지요. 그래서 가족들에게 저도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다, 그걸 증명해 보이겠다, 선언을 했습니다."

"오, 가족들이 너무 좋아했겠는데요?"

"처음에는 그랬죠."

"그래서 경제적 자유를 이루셨나요? 주식 투자로 성공하셨나요? 아니면 부동산?"

"어허! 저를 어떻게 보시고!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방법은 그런 투기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철학 교수는 대신 모든 돈 버는 활동을 중단했다고 했다. 돈을 벌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으면 그게 경제적 자유라는 정의에 정확히 부합했기 때문이었다. 교수직도 반납하고 아무 일도 안 했다고 했다.


"아니, 그러면 생활은... 어떻게?"

"저도 맨 처음에는 걱정을 좀 했었죠. 그런데 생각보다 공짜밥을 주는 데가 많아요. 나라에서 운영하는 곳도 많고, 뭐 결혼식장, 장례식장 같은 데 가도 되고요. 우리는 이미 절대로 굶어 죽을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더라고요."


철학 교수가 맞나? 진짜 미친놈 아닌가?

"그렇지만 애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또 이런저런 돈이 들잖아요?"

"그거야 집사람이 알아서 했죠. '제'가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살겠다고 했지 저희 가족의 생계를 바카라임지겠다고는 하지 않았거든요. 대신 집에는 절대로 손을 안 벌렸죠."


이런 미친! 머리가 띵해졌다.


"어휴! 저 사람 말 듣지 마세요. 그냥 길거리에서 노숙하다 잡혀온 사람이에요." 구레나룻이 품위 있는 다른 환자가 끼어들었다.


"아,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하셨었나요?"

"저는 화가예요."

"아, 예술가시네요. 선생님은 또 어쩐 일로...?"


"저는 경제적 자유 같은 천한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혐오합니다. 감히 자유라는 신성한 말을 어디 그깟 경제 따위에 올리냐고요."

진정한 아티스트 같았다.


"그럼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자유는 어떤 건가요?"

"당연히 예술의 자유죠. 우리 모두는 예술가예요. 그림을 그리든, 음악을 만들든, 글을 쓰든 우리에겐 모두 창작의 자유가 있다고요. 이거야말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유일한 의미이자 목표인 거죠."

"오, 훌륭한 생각이시네요. 정신이 아주 맑으신 것 같은데요? 여기 있으실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어쩌다가...?"


"저에게는 모든 곳이 도화지이고 모든 것이 물감이에요. 제 영감과 창의성은 끝없이 샘솟아요. 절대로 그림 그리는 걸 멈출 수가 없어요. 그래서 계속 그렸어요. 지나가는 사람들 옷 위에도, 버스 위에도, 택시 위에도, 그리고 선거 때 벽에 붙어 있는 벽보 위에도 계속 그렸어요."


여기까지 듣고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까 그 사람보다는 이분이 훨씬 멀쩡해 보였다.


"...그러다가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 얼굴 위에도 그렸어요. 영감이 너무나 넘쳐나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어요. 이런 게 진정한 자유죠!"


얼굴? 남의 얼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자유라고요? 아무것도 안 할 거면 바로 관 속에 누워버리면 되는 걸 굳이 뭐 하러 계속 살아요? 딱히 하루라도 더 살 이유가 없구먼. 아, 지금도 그림 그리고 싶어 미치겠어요! 선생님, 제게 맘껏 그릴 수 있는 자유를 제발 좀 돌려주세요!!"


이 사람도 미친놈이 맞았다.

그런데 희한하게 일리가 있는 것도 같았다.

정신 병원인지 정신요양원인지... 머리가 어찔어찔했다.


비몽사몽 중에 언뜻 하느님 얼굴이 보였다. 하느님 얼굴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하느님!! 오, 하느님! 너무 보고 싶었어요! 얼마나 힘들었다고요. 이제 제발, 집에 좀 보내주세요!"


"집에? 벌써? 에이 안 되지. 네가 원하는 경제적 자유를 이미 달성했는데! 여기서 계속 살아야지. 아, 여기 입원비는 절대 걱정 마라. 네가 300살까지 살아도 그건 내가 다 바카라임질 테니. 전혀,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그냥 뒹굴뒹굴 살면 된다. 그게 네가 원하는 거 아니었냐? 크크!!"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잘못 알았어요."

"에이 잘못 알기는! 됐다. 그럼 나, 간다."


"악! 하느님! 저 경제적 자유 원하지 않아요. 절대 원하지 않아요. 그게 아니란 걸 드디어 깨달았어요."


하느님이 고개를 돌려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제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뭔가 하는 거였어요. 그걸 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거였는데... 그냥 전후좌우가 다 꼬였던 거였어요."

"갑자기 또 뭔 개소리냐? 아냐. 이게 네가 원하는 거야! 네가 원하는 게 맞다니깐?"

"아니, 아니에요! 돈도 필요 없어요. 맞아요. 돈도 아니에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걸 계속하고 싶어요. 생각해 보니 그렇게 사는 데 돈도 별로 안 들어요."


하느님이 말도 섞기 싫다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쳐다봤다.


"알았어요. 알겠다고요! 여기 살아도 돼요. 여기 계속 살게요. 근데 제발 이 손만 좀 풀어주세요. 뭔가를 꼭 써야겠어요. 다 필요 없고 제 속에서 이글이글 거리는 이것들을 다 써내지 않으면 못 견디겠어요. 제발 손만 좀 풀어주세요! 이제 딴 얘기 아무것도 안 할게요!"



하느님이 뜸 들이다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널 어떻게 믿냐?"


"진심이라니까요! 제가 잘못 생각했다니까요!!"


"생각이 맨날 바뀌잖냐."


"이번엔 아니라니까요!"

이번에는 정말이었다. 손만 풀어주면 당장 쓰고 싶었다.


"맨날 남의 생각에 휘둘려서 사는 놈이 뭘. 쯧.

널 믿으려면 테스트가 필요하다."

하느님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테스트요?"


"너를 좀 더 돌아보고 와라.

그때 다시 얘기하자!"

그러면서 한 손을 크게 휘둘렀다.


"무슨..."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눈이 감기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어린 학생의 얼굴이 보였다.


중학생?

엄마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꿈인가...?"


"아!"


내 어린 시절이었다.





[다음 화 예고]


<코끼리와의 대화>

3장 [미지의 경로] 17화


중학생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 새가슴.


그때부터 시작됐던

부모님 생각과의 힘겨루기.


그런데 부모님이 원하는 길 말고,

자신이 원하는 길은 무엇이었을까?


여전히 답답한 새가슴에게

하느님은 엉뚱하게도

코끼리에게 물어보라며

천재 코끼리를 소환한다.


과연 천재 코끼리는

새가슴에게 어떤 말을 해 줄까?


10월 14일(수)에 발행되는

17화 〈코끼리와의 대화〉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