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있는 풍경

byMari

모든 술자리가 그렇듯 처음은 호기롭다.

짠! 이든

건배! 든

위하여! 든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얼굴엔 비장함마저 감돈다.

물론 억지로 끌려온 사람은 예외겠지만 대개는 술잔을 맞부딪치는 표정만으로도 뭐 세상을 얻은 것 같은 기운이 가득하다.


그렇게 술 한 잔에 목을 풀고 안주 한입에 말을 풀기 시작한다.


다시 기울인 한 잔에 이제는 수다가 안주가 되고 점점 시간이 흘러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가슴 저 밑바닥 해묵은 앙금마저 고개를 내밀 때쯤이면 어쩌면 마주 앉은 사람들은 각자의 상념에 빠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그런 것들이 술상 위에 차려지고 두서없는 말들이 술잔에 곤두박질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악이 흥건히 흐르고 이제 본편은 사라지고 외전들이 슬금슬금 고개를 내민다.

저마다 제 말에 심취해 하늘의 별조차 저를 위해 반짝거리는 줄 안다면 이쯤에서 자리를 물려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물려야 할 때다.


그런데 더 기울인 술 한 잔에 아끼고 있던 말 한마디가, 무덤까지 간직하고 싶었던 비장의 무기 한 쪼가리가 툭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사실 그때는 때로는 이성이, 혹은 감정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눈치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눈치 빠른 몇몇은 주섬주섬 옷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주 현명한 처사다.


그런 거 따져가며 무슨 술을 마시냐고 들이댄다 해도 술을 핑계로 해도 되는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는 것쯤은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만약 술 한 잔 기울이는 일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인생을 한 번쯤은 까맣게 잊을 수 있는 이유가 되고, 돼먹지 않은 상사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처방이 된다면야 딱 그만큼의 풍류만 즐기면 될 일이다. 그 경계에 설 줄 안다면 어느 날 문득 술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겨 시시때때로 술이 있는 풍경에 빠져도 좋을 일이다.


그런데 만약 주체할 길 없이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게 주사라면 그런 사람은 눈치껏 일찌감치 자리를 뜨는 게 좋다. 말로 일어선 자, 말로 망하기 때문이다. 더없는 낭패다. 제 주량을 넘었다 하면 잠드는 자, 사전에 제 갈 길을 수행해 줄 지인을 확보하는 게 좋다. 술에만 취하면 폭언과 폭행으로 질주하는 사람과는 아예 처음부터 술자리를 함께하지 않는 게 좋다. 그의 말로는 다음 날, 회사에까지 이어진다. 낯 뜨거운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의 옆이나 앞에 앉았던 것만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최악의 경우다.


또 취했다 싶으면 어느 순간 우는 사람이 있다.

앞서 무게 잡고 여러 유형을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사실 나의 주사가 우는 것이라는 걸 전혀 깨닫지 못했다. 소싯적 한창 소주를 즐겨 마실 때는 취하는 일이 없었기에 대부분 술자리 끝까지 앉아 뒷정리를 담당하곤 했다. 그러니 내가 무슨 수로 내 주사를 알아챘겠는가.


그것도 때늦은 30대 막바지의 어느 날쯤에야 나는 아하, 하며 스스로 머리를 쳤고 그 큰 깨달음은 뇌리를 지나 심장 수뇌부를 거쳐 대퇴부 언저리까지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그다음 이불 킥이 이어지리라는 것쯤은 술 좀 먹어봤다는 사람은 십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아마 대학 졸업 후 취직과 결혼이 이어지는 동안 만나지 못했던 대학 동아리 동기들과 모처럼의 해후가 기쁜 나머지 맥주와 소주, 와인에 이르기까지 3종에 이르는 주종을 섭렵하며 취기를 이기지 못한 나는 한참을 서럽게 울었던 모양이다.


동기들은 처음엔 이런 내가 낯설어 그저 그동안 살아온 시간이 많이 힘들었나 보다며 나를 이해했다고 했다.

못 만났던 10여 년의 세월에 뭔가 울만한 사연이 있었을 거라고 성인군자처럼 나를 배려해 주었다나 뭐 그런 얘기였다. 하지만 그런 일이 한 번 더 반복되니 의구심이 생겼고 딱 세 번째가 되니 동기들은 나의 울음을 주사로 결론 내린 듯했다.


하지만 참 희한하게도 나는 여느 다른 모임에선 아무리 많이 술을 마셔도 울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그건 남편과 마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나의 울음은 으레 껏 말하는 주사, 그러니까 술버릇과는 조금 다른 게 아닐까. 그날의 어떤 분위기에 휩쓸렸다거나 무슨 심리적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합리적 의심을 해보는 것이다. 어쨌거나 난 그때 그 눈물, 그 슬픔을 나의 주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술을 즐겼던 사람으로 그런 꼬리표가 붙는 게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남기는 거라고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이후로 그 동기 모임에선 나는 각별하게 조심했던 것 같고, 거의 술을 마시지 않는 지금은 정말 한 번쯤 마음껏 울고 싶은 날조차 눈물을 삼키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옛날, 철 모르고 술을 들이켰던 청춘의 그 한때가 가끔은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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