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인생은 공수래공수거

byMari

전역 후 3학년에 복학해 공부에 여념이 없는 큰애가 기말고사 시험을 치르고 나더니 코로나 때문에 이제는 이름도 무색해진 종강 파티(?)도 못하고 친구만 만나고 왔다면서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았다.


"엄마, 난 아무래도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써야 할 팔자인 듯해.

어디서 일확천금을 얻기는 애당초 불가능한 것 같고 그저 열심히 일하고 그걸로 그냥 먹고살려고.

그렇게 맘먹고 나니 좀 편안하네?"


내 원 참, 이건 또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지, 그 말을 듣는데 왜 내 속이 따끔한지 모르겠다.


"어, 뭐 그것도 바람직한 생각이네."


하며 바로 응대하고 바쁜 척 딴청을 부렸으나 사실 내심은 곧바로 그 말에 딴지를 걸고 싶었다.


- 너 지금 일확천금 물려받을 거 없다고 엄마한테 시위하는 거 아니지?

마, 그것도 아닌데 엄마 앞에서 팔자타령이나 하고 그러는 거 아니다?

그리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어. 열심히 일하고 먹는 게 얼마나 신성한 일인데

그게 어디 고민할 일이냐? 도리어 그렇게 할 수 있게 해 준 엄마 아빠한테 고맙게 여겨야지 –


뭐 이런 따위의 주옥같은 충고를 하고 싶었으나 그것도 그리 냉큼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 그래, 엄마 아빠가 돈 많이 못 가진 사람이라 미안하다, 미안해. 그래도 말이다.

따지고 보면 돈 없는 게 내 잘못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 아침에 눈 뜨면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하루 먹을 양식이 있고, 아빠나 엄마나 너나 동생이나 각자의 할 일이 있으니 됐고,

나갔다 들어오면 등 붙여 잠잘 공간이 있고, 사시사철 벗고 살지 않으니 잘살진 않아도

이만하면 잘 사는 거지, 사람들이 대부분 더 가지려고 하니까 탈이 나는 거야.

그러니 일확천금을 논할 건 아니라고 봐.-


뭐 이런 말도 주저리주저리 해볼까 싶었으나 생각뿐이었다. 대치동 어느 친구 집에 갔더니 현관 앞 백자 항아리에 5만 원권을 가득 넣어놓고는 나갈 때 필요한 만큼 집어가게 하더라는 설을 풀었던 큰애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다.


아마 어쩌면 나도 저 나이 때는 훨씬 더 나은 삶이 있을 거라고 꿈꾸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어떤 삶이 덜한 삶이고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지도 딱히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

다만 돈이 많다면 심신은 좀 편안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설혹 그렇다 해도 인생은 어차피 맨손으로 왔다가 맨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끔찍이 아끼는 몸일지언정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기는 매한가지 아니던가 말이다.


"그런데 너, 이거 하나는 알아 둬라. 돈 많은 사람이나 돈 없는 사람이나 먹고, 자고, 싸면서 사는 건 다 똑같다는 거. 뭐 얼마나 더 잘 먹고 얼마나 더 잘 자는지는 몰라도 그래봤자 하루 세끼에 잠 한번 자는 거야. 그래, 경우에 따라선 네다섯 끼 먹을 수도 있겠지. 하나 아무리 잘 먹어도 화장실 가야 하는 건 다 매한가지야. 잠자는 시간? 비슷하지. 인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내는 거 이런 건 바꿀 수 없다는 거다. 뭐 금똥이라도 싸는 거 같아도 그냥 같은 똥이지. 안 그래? 그리고 아무리 백만장자라도 죽을 땐 빈손으로 간다는 거. 그거 기억해라. 어차피 인생은 공수래공수거인 게야."


이런 내 말에 큰애는 어련하시겠냐며 맞장구를 치고는 쿨하게 제 방으로 들어갔다. 뭐 쿨한지 안 한 지는 그 속내를 알 수 없으나 표정만은 백번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것도 같았다.


하긴 이렇게 말하면 이 또한 가지지 못한 자들의 구차한 변명이라고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한들 뭐 또 어떠랴 싶다. 틀린 말은 아니니 말이다.


빈손으로 태어났으니 빈손으로 가는 게 맞고 사는 동안 나쁜 일 하지 않고, 송사에 얽히지 않으면 더 좋고, 선하게 살면서 작은 거라도 베풀 수 있으면 최고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감사할 줄 알고, 하루를 무탈하게 보낼 수 있다면 더없이 고맙고, 뭐 그렇게 살면 괜찮은 거 아니겠는가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가면 그만인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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