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을 접은 지 벌써 몇 년 되었는데 어느 학부모로부터 카톡이 와 있었다.
S예고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한 여학생의 엄마였다.
겨우 기억을 거슬러 그 애가 고1이었을 땐가 6개월 정도 국어를 가르쳤던 학생이었던 것을 알아챘다.
이름도 가물가물해서 그 엄마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엉뚱한 이름으로 실수할 뻔했다.
그러면서도 문득 아, 하는 단말마의 짧은 비명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도대체 언제 적 얘기라고 이렇게 까맣게 잊을 수 있는 것인지, 25년이라는 강사 이력도 단 몇 년차 온라인 게임인의 현실 앞에서는 맥없이 스러지고 마는 것인가 싶었다. 어쨌든 그 애가 Y대에 입학을 했는데 성에 차지 않는지 계속 휴학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래서 S대에 재도전을 해보겠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묻는다. 지금은 현역에 있지도 않은, 더욱이 자기 딸을 겨우 반년 정도 가르친 경험밖에 없는 나에게 이건 좀 황당한 상담이다 싶었다.
“제가 이젠 그쪽 일에 손을 뗀 지가 좀 되어서요. 딱히 드릴 말씀은 없지만….”
이미 답을 갖고 물어오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혹은 그 물음에 나의 대답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6개월 정도 겪었던 그 애를 떠올리며 집히는 대로 생각을 전했다.
Y대에서 성이 차지 않는다면 그 애는 Y대나 S대가 문제인 게 아니라 자신의 음악에 성이 차지 않는 게 아닐까. 혹 주변의 시선이 그 애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은 아닐까. 굳이 반수를 해가며 S대 입학을 위해 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정말 바이올린을 더 잘하기 위해서라면, 정말 음악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그 시간을 아껴 유학을 준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 엄마는 내 얘기를 듣고 나서야 나에게 카톡을 보냈던 진짜 이유를 털어놓는다. 자기 지인에게 고2 딸이 있는데 그 애 국어 과외를 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짧은 기간 배웠지만 우리 애가 국어 하면 선생님밖에 안 떠오른대요. 자기 국어 실력은 그때 선생님께 배운 게 다라면서….”
이게 칭찬인지 뭔지 참 모를 얘기였지만 나는 정중히 고사했다. 국어 강의를 접은 지가 벌써 3년이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으나 도리어 3년을 손을 놓았으니 풍월을 잊은 셈이다. 마음만 먹는다면야 조금 준비하고 나서면 되겠지만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다.
참 우스운 얘기지만 나는 대치동 현역에 있을 때도 S 대든 Y 대든 아니면 K 대든 그것은 사실상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종종 그저 내 실력에 맞게 어느 대학이든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나에게 반문했고 나는 전적으로 그 말에 동의했다.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그런 실력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대학을 안 가면 어떠냐고 들이대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거기에도 동의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대학을 안 가도 될만한 남다른 재능과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있는 아이들이었다. 정말이지, 아이들의 미래는 S니 Y니 K니 그런 문자를 나열해 놓고 실력을 가늠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어느 대학을 가든 잘 될 놈은 잘되고 더 잘 될 놈은 더 잘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안 될 놈은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자체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될 성싶은 놈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될 때가 다를 뿐이다. 이런 나의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문제는 언제나 그들의 부모였다. 아이마다 다 때가 되어야 채워질 그릇이 있는데도 부모는 그때를 참지 못해 어떻게든 억지로 그 그릇을 채우려고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아이들은 상처투성이가 됐다. 그나마 그 욕심에 휘둘릴 아이들이란 공부 잘하는 몇 명일 뿐이다. 사실 그들은 누가 가르치든 어느 학원을 다니든 상관없다. 그야말로 그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입장에선 그런 아이들이 백배 좋을지 모르나 솔직히 재미는 없다. 100점을 유지해야 하거나 1등을 유지해야 하는 아이들이라서 부담감만 클 뿐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기 잣대로 선생을 평가하기 일쑤다. 시험을 잘 보면 자기가 잘해서 그런 거고 못 보면 선생 탓이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진정한 카리스마가 있지 않으면 오히려 끌려다니기 십상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무심한 듯 스승의 날에 “선생님, 고맙습니다.”하고 문자를 보내는 그런 멋진 놈들도 있다.
반면에 실력이 도화지 같은 아이들은 하루하루가 꿀 잼이다.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실력이 는다. 처음에는 미미하게 성적이 오르지만, 어느 지점을 지나면 쑥쑥 오른다. 물론 예외는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진솔한 응원과 관심이 끝내는 뒷심을 발휘하게 한다. 이것을 나는 아이에 대한 '사랑'이라고 부른다. 아이가 스스로 믿을 수 있도록 부모든 선생이든 그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아이마다 다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25년 동안 강사로 지내면서 그녀가 터득한 것은 이것이다. 될 성싶은 놈이나 잘 될 놈이나 더 잘 될 놈도 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때가 누군가에게는 좀 빨리 오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좀 더디게 올뿐이다.
그런데 부모의 조바심이 때로는 독이 되어 될 성싶은 놈에도, 잘 될 놈에도, 더 잘 될 놈에도 미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