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바람이 참 말랑말랑해요!

byMari

지난여름은 정말이지 뜨거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폭염주의보 발효라는 안전 문자에 휴대폰이 진동할 때마다 내심으론 이상 기후 어쩌고 하면서 이 더위가 영원한 거라면 어떡하지? 하는 우려마저 들었다.

아,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가. 입추와 처서를 보내고 나니 한결 바람이 선선한 기운을 머금었다.


새삼 자연의 섭리에 다시 숙연해지는 마음을 금할 길 없다.

머지않아 현관문을 나서면 심장을 꿰뚫을 듯한 한기의 바람이 저절로 짧은 탄성을 자아내게 할 것이다.

나는 폐부를 찌르며 훅 들어오는 그런 바람이 한없이 좋다. 더구나 심장이 멎을듯한 바람이라니, 내가 살아있음을 가장 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남편은 그런 나에게 그러다 한 번에 훅 가는 수가 있으니 단단히 챙겨 입으라며 잔소리를 하지만 나는 귓등으로 듣기 일쑤다. 설혹 그렇다 한들 어찌 보면 그것도 바람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니 자연의 혜택을 넘치게 받는 게 아닐까. 누군가 이 말을 들으면 바람에 미친 여자라고 수군거릴지 모르나 그만큼 바람은 나에게 삶의 영감을 주는 존재이자 큰 선물이다.


게다가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철도 거르지 않고 약속이나 한 듯 매번 다른 모습으로 찾아와 주는 바람이라니 어떻게 싫어할 수 있을까. 이런 나에게 태풍 운운하며 사람의 터전을 모조리 휩쓸어가는 바람은 어떡할 거냐며 따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 따짐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선악에 대해 처음부터 왜 선만을 있게 하지 않았느냐고 생떼를 부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내가 이토록 바람에 마음을 내주게 된 건 20여 년 전 그 말간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땅을 밟고 서 있기도 버거웠던 나를 단숨에 일으켰던 그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지금도 그대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바람이 참 말랑말랑해요!”


지금은 어느 한 군데 믿음직스럽지 않은 데가 없는 스물아홉, 스물여덟 청년이 된 큰애와 둘째, 그런 그들에게도 엄마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했던 때가 있었다.

동기들에 비해 늦은 나이에 결혼한 나는 큰애를 낳고 바로 1년 뒤 작은애를 낳았다. 고작 18개월 차이 연년생인 두 아들을 키우며 남편과 함께 학원 운영하랴, 강의하랴, 간암 투병 중인 친정엄마를 돌보랴 정말이지 물 한 방울 샐 틈 없는 하루를, 365일을 그렇게 살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인생의 가장 빛났던 시절도 그때였지 않았나 싶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지만.


둘째가 태어나고 바로 다음 해 IMF가 찾아왔다.

무슨 운명의 장난처럼 바로 그 직전에 보습학원을 인수한 우리는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딜 찰나였기에 물러설 수도 돌아설 수도 없었고 그야말로 한 발만 헛디뎌도 고꾸라질 살얼음판을 뛰어든 셈이 돼버렸다. 하지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달려들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두 아이는 일찌감치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둘째는 고작 생후 6개월이었다.

남편과 나는 오전 10시에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다가 오후 6시에 집으로 데려오는 종일반을 택했고 아이들은 단 몇 시간 외할머니와 보낼 수 있었다. 학원 강의가 끝나는 밤 10시가 넘어야 우리는 집에서 완전체로 상봉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어울릴 시간이 아쉽기만 했던 그 시절, 이리저리 오가며 나름 피곤했을 두 아이는 엄마 아빠와 놀아주기 위해 졸린 눈을 비벼가며 저물어가는 시간을 부여잡곤 했다.


그토록 착하고, 예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과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며 가까스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즈음 나에게 소원이 있다면 볕 좋은 한낮, 여느 엄마들처럼 양손에 한 아이씩 붙잡고 산바카라을 하는 일이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학원에 출근해 청소와 강의 준비를 끝낼 무렵이면 노란 햇살이 창가에 드리우곤 했다. 그 햇살에 이끌려 시선을 돌리면 바로 주택가 사이의 놀이터가 보였고 거기엔 한가로이 수다 떠는 엄마들과 그 주변을 뛰노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광경을 잊지 못한다.

우리 애들 또래들이 웃음을 흩날리며 노란 햇살과 가을바람에 그렇게 물들어가고 있었던 때.

나는 애들이 보고 싶어 울음을 터뜨렸고 이 계절이 가기 전에,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저렇게 공원에서 한때를 즐기겠노라 숱하게 마음먹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 우리 애들보다 더 많이 자란 그들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수능시험까지 시간은 턱밑까지 쫓아오며 우리를 재촉했고 우리의 가랑이는 찢어질 틈도 없이 앞서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애가 여섯 살 되던 해 3월이었다.

평일에 애들과 산바카라을 하게 된 건 정말 뜻밖의 행운이었다. 어린이집은 보수공사로 하루 휴원을 공지했고 친정엄마도 중요한 선약으로 애들을 돌볼 수 없게 됐다. 나는 주말 보충을 예고하고 우리 애들과 종일 함께 있는 것을 선택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고 금빛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그런 한낮이었다. 나는 큰애와 작은애에게 어울리는 노란 점퍼와 하얀 바지를 입히고 한 손에 하나씩 그 앙증맞은 손을 그러쥐었다.


집 앞을 나서는 순간, 바람이, 햇살을 머금은 바람이 아이들 이마의 머리카락을, 그리고 짧은 내 머리카락을 쓸며 허공에 흩어졌다.


큰애가 내 손을 놓고는 눈을 찌르는 제 머리카락을 이마로 몰아냈다. 다시 한번 바람이 아이의 얼굴을 훑고 갔다. 그때 큰애가 또 눈을 찌르는 제 머리카락을 잡으며 날 올려다보고 웃으며 말했다.


“엄마, 바람이 참 말랑말랑해요!”


나는 큰애의 그 한마디에 흠칫 놀라 발길을 멈춰 섰다.

아, 바람이 말랑말랑하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디서 그런 표현을 배운 거니?

엄마는 여태껏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큰애가 빙그르르 웃으며 대답했다.


“봄이잖아요. 겨울바람은 차갑고 딱딱하고요. 봄이 오니까 바람도 말랑말랑해지는 거예요.”


나는 그때야 깨달았다.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더 어른이라는 것을.

내가 그렇게 오롯이 아이들과 함께 걷지 않아도 아이들은 매일 걷고, 달리고, 어딘가로 뛰어오르며 커가고 있다는 것을. 따로지만 우린 늘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정말이지 그제야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말랑말랑한 바람이 불 때가 있으리라며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삶이 녹록지 않은 우리에게 때로는 하루를 버티기 어려울 만큼 가장 절박한 순간에도 놓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그것은 포기하지 않을 용기와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인생 한 방이 아닌 내 주변의 소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바로 큰애의 그 한마디에서 얻었던 것이다.


그러게, 바람은 모두 차갑고 딱딱한 것인 줄만 알았지. 이렇게 말랑말랑한 바람도 있다는 것을 엄마가 미처 몰랐네. 나는 큰애에게 그렇게 말했고 우리는 그날 마음껏 그 바람을 만끽했다.


이제 가을이 깊어지면 바람은 더 찬란한 빛깔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비록 차갑고 딱딱하나 그 속에 말랑말랑한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을 바람을 맞으며 다시 한번 마음껏 그를 음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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