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네 남편도 별수 없네. 이젠 중년이라고 너에 대한 애정이 식었나 보다 얘, 옛날엔 안 그랬잖아, 너라면 껌뻑 죽지 않았어?”
호들갑스럽게 마주 앉은 그녀가 유난을 떨었다.
나는 다소 냉소적인 표정으로 한 마디 내뱉었다.
“흠, 식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안 뜨거웠는지도 모르지.”
나의 이 심드렁한 말에 옆에 앉은 그녀의 얼굴은 일순간 희열이 번진다.
호기심 가득한 눈을 동그랗게 치뜨고 내 쪽에 얼굴을 들이댄다.
“정말? 무슨 낌새가 있었어? 설……마”
“설마는 무슨, 시쳇말로 그러잖아, 이 세상에 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 뭐 그렇다는 얘기지, 덤비긴”
이렇게 얼버무리며 나는 사실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50을 넘은 나이에 사랑이라는 화두로 열을 올리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점점? 너 아무래도 애정 전선에 문제 있구나? 난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너 입에 거품 물면서 운명적 만남이다 사랑이다 했던 거.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네 사랑은 영원하다며, 그런데 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이 몇이냐고? 네 입에서 그런 말 나오니까 야, 나 자꾸 재미있어지려고 한다.”
이제껏 별말이 없던 또 다른 친구까지 툭 던진 내 말에 구미가 당기는지 바싹 의자를 끌어당기며 찻잔을 그러쥐는 것이다.
‘내, 참. 대개들 심심한가 보네.’
병원 예약을 핑계 삼고는 총총히 카페를 나왔다. 사실 병원은 꾸며댄 말이었지만 모처럼 만나서 점심 먹고 차 한 잔 마시며 애들 얘기에, 자기 근황에, 고릿적 학창 시절까지 곁들여 나눴으면 이젠 더 할 얘기는 없다고 봐야 했다. 그다음에 나올 얘기는 남편과 시어머니, 나아가 시댁 식구들까지 어쩌면 각자의 남은 인생에서 한 번도 만나지도 않을 그런 사람들 얘기로 흥분할 게 불 보듯 빤하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오니 벌써 하늘엔 어둑어둑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목에 두른 목도리가 답답하게 여겨질 즈음, 잠시 서서 찬바람을 들이마셨다. 그래도 좀 숨이 막혀왔다. 차라리 목도리를 푸는 게 낫겠다며 팔에 걸치곤 그저 한 정거장쯤 걸었을 때였다. 10m 전방에서 이제 막 건물을 벗어난 한 쌍의 연인이 눈에 들어왔다. 이목구비가 선명한 키 큰 청년과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조차 예쁜 것까지 한 마디로 선남선녀였다.
그들이 곁을 지나가는데 재스민 향기가 바람에 묻어난다.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슬쩍 그들이 지나간 뒤를 돌아본다. 팔짱을 낀 남녀의 뒤태가 무언지 모를 설렘을 일구어낸다.
그래, 언젠가 나도 저렇게 걸었었던 때가 있었다. 세상을 얻은 듯, 당당하게. 주변의 모든 것이 지금의 남편과 나, 다만 그 두 사람을 위해서 존재했던 것처럼 얼마나 으스댔던가. 그가 얼굴에 점이 많은 것도 보이지 않았고, 착한 성품이 때로는 사람들의 좋은 배신 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사람 좋은 것, 그것 하나만을 보았노라고 오히려 자랑을 일삼았다. 그는 내 핸디캡이기도 한 자그마한 체구도 맘에 들어했고, 내가 평소 동료들한테 보여주는 일상의 친절에도 감동했고, 소소한 것 하나하나에 마음을 기울였다. 그에게나 나에게나 서로는 운명적인 단 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그 시절, 서로가 완벽하게 사랑이라는 테두리 안에 놓여 있었다.
“착한 게 대수니, 네가 한번 착한 남자랑 살아봐라. 얼마나 숨이 막히나.”
문득 아까 점심을 먹으면서 무심코 내가 던진 그 한 마디는 내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그가 착한 게 지금은 숨을 막히게 한다니 그것이 내 진심일까. 언제부턴가 나는 ‘착한 남편 두셔서 정말 좋으시겠어요.’라는 말을 듣는 것이 곤혹스럽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당신 남편이 착해서 정말 힘드시겠어요.’라는 말처럼 귓가를 쟁쟁히 울리곤 했다. 이제 당장은 그 칭찬 아닌 칭찬을 듣는 것이 몸서리 칠만큼 싫었다. 그가 착하다는 것은 여전히 나의 자랑거리인데 어쩌자고 나는 그걸 질바카라으로 탈바꿈해 버린 것일까.
“당신은 왜 그렇게 성미가 급해, 내 말 좀 끝까지 듣고 얘기하라니까….”
얼마 전부터 심심찮게 남편이 나에게 던지는 말이다. 예전에 싹싹하고 눈치 빠르게 알아서 대처하던 행동들이 어느새 그에게는 급한 성미로 탈바꿈되어 버렸다. 자꾸 내 뱃살이 늘어나는 게 그에게는 달갑지 않고, 드라마를 본답시고 앉아 있으면 그 시간에 운동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핀잔을 준다. 신혼 땐 글을 쓰려면 드라마도 많이 봐야지 하면서 일부러 채널을 돌려주곤 했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나에 대한 남편의 사랑도 그렇게 식어버린 것일까.
핸드폰이 울린다. 녹색 액정 화면에 ‘내 반쪽이’라는 하얀 글씨가 반짝인다.
“어딘데? 점심은 먹었고? 좀 추워지는데 옷은 단단히 입은 거지?”
그는 여전히 나의 안위가 걱정스럽다. 나는 끄덕끄덕 고개로 수긍한다.
그렇다. 사랑이라는 것은 식어가는 게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사랑은 뜨거운 것이라고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랑은 환경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할 뿐이다. 그리고 그 반응은 사랑이 아닌, 사람의 변화를 종용한다. 사랑으로 엮어진 두 사람이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은 변수와 만나게 되고 때때로 삶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청춘의 어느 한 시기에 사랑만이 삶의 전부라고 여겼던 관용과 아량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삶 = 사랑이라는 등식이 얼마나 치기 어린 오만에서 비롯되었는지 깨달았을 때, 비로소 삶과 사랑의 결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사랑은 저만치 뒷걸음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바로 그때 사랑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할 때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먹고사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거봐라, 사랑이 밥 먹여 주나’하는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이 노골적으로 느껴질 때, 오히려 사랑은 둘 사이를 더 깊고 묵직하게 엮어주는 동아줄이 되는 거라고. 그러니 가난하고 어려울수록 사랑하는 일이 사치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무 조건 없이 반짝일 수 있는 것도 사랑이고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퇴색하지 않는 게 사랑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 사랑의 본질이란 그렇다.
문득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도, 남편이 귀가하기 전에 그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얼른 끓여야겠다는 조바심도 사실은 사랑에 가장 가까운 본색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