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이었던가.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 거라면 거긴 아마도 백병원 뒤 어디쯤이었을 게다. 창밖으론 키 높은 플라타너스가 바람에 흔들리고 빗물이 사정없이 카페의 창에 지쳐대는 - 어쩌면 차라리 내 방 방바닥에 길게 배를 깔고 누워 만화바카라이나 뒤적거리며 뒹구는 게 더 좋을 - 그런 날. 나는 명동의 그 구석진 2층 카페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그때의 내가 지금처럼 두 아이의 엄마였다면 죽었다 깨어난다 해도 그렇게 하지 못할 기다림이었다. 오후 2시 약속을 하고 조금 이르게 그곳에 도착해서 기다림에 지친 몸을 일으켰을 때는 밤 10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만나기로 한 친구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채 카페를 나와서도 한 시간을 넘게 방황한 뒤 쓸쓸히 마지막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지금처럼 흔해 빠진 핸드폰이라는 건 대기업의 회장님이나 그에 비견할 만한 어르신들이 그것도 대포만큼 큰 핸드폰을 소유하던 시절이었으리라.
그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듯 초조하게 시계를 들여다보며 카페 입구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심 화가 치밀어왔고 두어 시간이 지나서는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하고 걱정과 원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었다. 그러다가 종내는 그래, 어디 한 번 마음껏 늦어봐라 하는 오기 반, 체념 반으로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탁자 위에 손도 대지 않은 커피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고, 나는 조금씩 슬퍼지기 시작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아마도 나는 그 을씨년스러운 비와 바람에 수도 없이 몸을 뒤척이는 플라타너스 잎을 보며 내 처지가 너무도 서러워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던 것일 게다.
대학 학비를 장학금 아니면 언제나 내 손으로 조달했던 나는 그 당시 학교에서 소개해 준 아르바이트가 변변찮아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절실히 찾고 있던 터에 제법 보수가 괜찮은 자리가 있다며 친구의 소개로 만화영화 제작자를 만났었다. 일명 스토리 작가를 구하는 것이었는데 그 성패를 알려주기로 한 친구가 약속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건 보나 마나 뻔한 결과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나는 죽치고 앉아 다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서글픈 오기를 곧추세우고 일어서지 않았으니 그건 어쩌면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를 향한 헛된 시위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렇게 몇 시간을 나 홀로 원맨쇼를 펼치며 눈가의 눈물도 채 닦아내기 전인데 문득 카페의 웨이터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넌지시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나를 측은히 여기는 동정도 연민도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최고의 서비스 정신으로 똘똘 뭉친 프로답게 절제된 품위와 친절한 음성으로 내게 물어왔다.
“따뜻한 커피로 바꿔 드릴까요?”
아주 짧은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따뜻한 아니, 뜨거운 커피가 테이블 위에 놓였고 나는 아마 그 커피를 마시며 속으로 또 한 번 울컥 눈물을 곱씹지 않았던가 싶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그 웨이터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인지 또다시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서인지 저 자신도 모를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그 웨이터는 그 뒤로도 서너 잔의 뜨거운 커피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내 탁자 위에 날라다 주었다. 결국 주인도 웨이터도 극구 커피 한 잔 값만을 받고는 내 등을 떠밀다시피 해 그 카페를 나왔던 것이다.
몇 년 전 백병원에 지인의 조문을 갔다가 그 근처로 돌아 나오는데 이미 그곳은 커다란 음식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키 높은 플라타너스도 카페도, 주인도 웨이터도 아무도 없었다. 하기는 20년도 더 된 일인데…….
하면서도 그 2층 카페의 커피 향기가 그리워지는 건 그 까만 커피 속에는 아주 먼 타인의 아픔조차 배려할 줄 아는 그네들만의 깊은 사랑이 녹아있었기 때문이리라.
“커피도 마시면 안 돼요.”
냉랭한 의사의 목소리가 쟁쟁히 귓가에 울렸다. 며칠 째 속이 좋지 않아 음식을 조절하다가 급기야는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면 영락없이 의사는 위염 때문이라며 3일분의 약을 처방해 주고는 몇 가지 금기 음식을 달아 주곤 하였다. 그 안엔 꼭 커피가 끼여 있었다. 그런 처방을 들을 때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또다시 커피 고문이라니.
그랬다. 그건 고문이었다.
대학 시절, 학교 도서관에 몸을 파묻고 취업을 준비하던 4학년 그맘때 잠깐 화장실에 다녀올라치면 내 자리에는 자판기에서 뽑아낸 커피 한 잔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나를 기다리곤 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그건 도서관에서 늘 베풀어지는 작은 배려이자 격려며 때로는 한 차원 높은 사랑이기도 했다. 그런 커피를 한 번쯤 마셔본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학교 캠퍼스에 꼭 안겨 있으되, 세상을 안은 것 같은 뿌듯함과 더할 나위 없는 푸근함을.
그렇게 나에게는 늘 나의 안위를 걱정해 주던 동료와 선배가 있었건만 그 해 가을이 저물 무렵, 나의 위는 탈이 나고 말았다. 졸업반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규칙적이지 못한 식사와 하루에 대 여섯 잔이 넘는 커피와 그 투명함이 좋다고 멋들어지게 들이켰던 몇 잔(?)의 소주 등이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는 1년 가깝게 그 모든 것들로부터 등을 져야 했다. 나의 자문도 없이 바카라상에 놓였던 그 도서관의 커피들도 얼마간은 그냥 그렇게 화장실에 씻겨 내려가는 수모를 겪었다. 그것이 얼마나 지독한 고문이었는지 그저 꿈결엔 듯 그윽한 커피 한 잔 마셔봤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 후로도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고 나에게도 세월은 여물어 이젠 반세기를 넘긴 아줌마가 되었건만 아직도 커피에 대한 그때의 자욱했던 사연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지금 밤을 함께 보내는 내 반쪽과의 만남도 그 흔하디 흔한 “저, 우리 커피 한 잔 할까요?”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학원 강사로 가르치는 재미와 아이들에 빠져 서른을 그냥 훌쩍 넘겨 버린 처녀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저물던 봄밤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을 그런 사람으로부터 커피를 함께 마시자는 청을 받는다는 것, 그것은 평생을 두고 곱씹어도 언제나 신선한 충격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우리 커피 한 잔 할까?”하며 주전자에 물을 끓이면 가슴 저 밑바닥에선 무언지 모를 설렘이 있다. 잔잔한 파동이 인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그도 어쩌면 아내의 기호에 맞게 커피를 준비하면서 커피에 얽힌 짤막한 추억 하나를 떠올리며 마음 깊숙한 곳에 자그마한 파문이 일지도 모를 일이다. 빛바랜 기억 속에 끈끈히 흐르는 어느 웨이터의 따뜻한 배려와 도서관의 숨 막히는 학구열 속에서도 후배나 동기의 바카라상 위에 한 잔의 커피를 가져다 놓을 수 있는 나눔의 여유와 그 봄밤의 만남이 녹아 있는 그런 커피 맛이라면 남편도 내 기억의 한 장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또 내 위 점막의 해진 상처를 부드럽게 감싸 안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