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세요, 힘, 힘!

byMari

지하철 안은 조금 훅훅했다.

냉방은 되었으나 좌석에 앉은 사람 외에도 서 있는 사람들의 열기가 만만치 않았다.

무심히 지하철 안을 그윽하게 돌아보는 척하며 내 시선은 서 있는 승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예리하게 좌석을 훑고 있었다. ‘저들 중에 누가 먼저 일어날까’를 감지하기 위한 스캔이었다.


하지만 한결같이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칫하면 모두 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이래서야 그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였던가.

남주 ‘박수하’ 같은 초능력을 지니고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도무지 눈을 마주칠 수 없는데 그 속마음을 어찌 듣겠나 싶었다.

결국 앉기를 포기하고 자연스레 시선을 거두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서서 갈 팔자인 게야.'


원칙을 따지자면 나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앉을자리를 찾아 잽싸게 엉덩이부터 들이미는 아줌마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불혹을 넘었든, 지천명의 나이로 하늘의 명을 알았든 이순에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든 다 좋으나 이왕이면 나이에 맞는 품격도 갖추어 조금은 더 단아해지기를 아줌마들께 청하고 싶은 맘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무엇보다도 허리가 너무 아팠다. 종아리도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면 보톡스를 평생 안 맞아도 될 성싶었다. 엊그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대청소를 한다고 한바탕 집안을 들쑤신 데다가 오늘 회사에서도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니 녹초가 됐다.

집까지는 또 얼마나 먼가. 비록 하천 하나로 서울과 경기도로 나뉘었긴 하지만 어쨌든 경기도인 것이다.

무조건 자리를 틀고 앉고 싶었다.


그러던 찰나 어느 둔탁하고 묵직한 한 청년의 목소리가 모든 대화를 삼킨 가공할 만한 폰의 위력을 깨트렸다.


“자리다, 저기 자리야!!”


자리라는 말에 전광석화처럼 고개를 돌린 나는 정말이지, 까딱했으면 몸까지 날릴 뻔했다.

아, 그러나 그 자리는 노인이나 장애인이거나 임산부들이 앉는 지정석이었다.


“자리다, 자리야!!”


또 한 번의 둔탁하지만 무언가 허점도 많은 큰 목소리가 지하철 안을 뒤흔들었다.

바로 뒤에서 키가 180cm나 넘었을 청년이 빈자리로 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그 앞을 20cm나 작은 여자가 안절부절 가로막고 있었다.


“안 돼, 네가 앉는 자리 아냐! 그냥 여기 앉아 있어!”


작은 여자의 목소리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단호하고 엄격했다. 청년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대각선 맞은편 노인석의 빈자리로 가려고 여자가 그러쥔 팔을 뿌리치려 이를 악물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청년은 자폐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작은 여자는 아들인 듯한 그 청년을 무던히도 애를 써가며 제자리에 앉히려 하였다. 하지만 청년은 완강히 버티었다. 보다 못한 노인석의 한 할머니가


“그냥 여기 앉혀요. 비어 있는데 뭐,”


하고 청년을 거들었고 작은 여자가 할머니를 쳐다보는 그 사이, 자폐 청년은 쏜살같이 그 노인석에 앉아 버렸다. 실로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아, 안 돼요. 할머니, 이건 도와주시는 게 아니에요, 여기서 이러면 다음부터 얘는 이 자리에 앉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여자는 거의 울상이 되어 다시 청년 앞에 서서는 일어날 것을 간청했다.


“주호야, 일어나야지. 여기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앉는 곳이야! 너 자꾸 이러면 이젠 엄마랑 같이 못 다녀!”


그녀의 입에서 나온 엄마라는 단어가 들리는 순간, 느닷없이 눈물이 핑 돌아 나는 황급히 시선을 거두었다.

자그마한 체구의 엄마와 다 큰 자폐 아들과의 그 실랑이가 너무나 애처로워 보였다.


'너 자꾸 이러면 이젠 엄마랑 같이 못 다녀!'

그녀가 내뱉은 그 말이 자꾸만 뇌리를 떠돌았고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져 애꿎은 눈꺼풀만 깜박거렸다.

결코 작게 보이지 않은 저 작은 여자가 계속 내 마음을 후벼댔다.


그렇게 자폐 장애를 가진 다 큰 아들을 대중교통인 지하철에 태워서 그녀는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하여 가고 있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그녀가 대단하고 용감무쌍해 보였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아들에게 공공의 도덕을 얘기한다. 문득 저 작은 여자가 걸어왔을 험난하고도 긴 여정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나는 불현듯 저 작은 여자를 향하여 파이팅을 외치고 싶었다. 아니, 거듭 외쳐댔다.


‘엄마, 힘내세요, 힘, 힘!’


내가 지하철에서 내리는 그 순간까지도 그 작은 여자는 거구의 아들과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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