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매년 노란 깃을 달고 오는구나.

유채와 노른자와 에버골드와 서프라이즈

by백경화

나의 유채가 죽고 3년 뒤 노른자도 죽었다. 열네 마리의 앵무들과 같이 살면서 나는 열네 번 아이들을 보낼 것을 몰랐던 건 아닌데 갑작스럽게 온 유채의 죽음은 황당했다. 분명히 아침에 "엄마 다녀올게. 놀고 있어."하고 나왔는데 외출 후 애들을 보러 들어갔을 때 이미 유채는 죽어 있었다. 죽었는지도 모르게 얌전하게 날개를 모으고 동그랗게 쉬듯이 죽어 있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침대에 아이를 눕히고 정원 한쪽, 아이들이 낳은 알들을 묻는 쪽에 유채가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노란 장미를 심었다. 그리고 3년 후 노른자가 일주일 정도를 앓다가 죽었다. 유채가 너무 황당하게 가버려서 앓다가 갔다면 아쉽지라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노른자는 일주일 정도 증세가 좋았다가 나빴다가를 반복하더니 결국 내 손에서 갔다. 괴로워하는 아이를 안고 있다가 아이가 숨을 거두는 순간 몸체가 가벼워지는 걸 느꼈는데 이 느낌이 영혼의 무게 21g이 빠져나가는 그 경우인가 싶었다. 가벼워진 노른자를 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도 며칠 동안 계속 노른자가 내 손에서 숨을 거두고, 몸이 축 처지고, 순간 가벼워진 무게감을 느꼈을 때의 경험이 문득문득 떠올라서 힘들었다. 이후로 한동안은 아이들 방에 문을 열기 무서웠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불쑥 사라져 버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다. 노른자가 가고 난 후에도 정원 한쪽에 노른자의 자리를 마련하고 유채 때와 똑같이 노란 장미를 심었다. 유채와 노른자는 둘 다 풍성한 노란색 깃털을 가진 모란앵무였다.

노른자가 가고 상실감이 채 가시지 않은 날 밤에 꿈을 꿨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꿈속에서 나는 낯선 어딘가를 헤매다가 어떤 집 안으로 쓱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집에 사는 듯한 예닐곱 살 정도의 여자애들이 나를 불편한 듯 맞이(?)했다. 둘 중 적극적인 아이가 앞서 나와서 여기는 우리 집인데 너는 왜 우리 집에 들어왔냐고 따박따박 따져 묻기 시작했고, 조금 소극적인 아이는 약간 뒤에서 호기심 섞인 눈빛에, 다소 불편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버버버하다가 잠이 깼다. 잠이 깨서도 꿈을 꾼 건가, 잠을 잤던 건가 몽롱한 기분이 잠시 들다가 아! 이건 유채와 노른자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 순간, 너희들이 외롭게 따로 있지 않고 같이 있구나 싶어서 다행이다 했다. 특히 유채는 혼자 있는 거 너무 싫어하는데 노른자 언니랑 같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싶었다.

이 꿈을 꾸고 난 다음인지, 그전부터인지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그즈음에 코스모스를 읽기 시작했다. 코스모스가 어떤 바카라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읽어 볼 생각은 안 했다. 그러다가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생물에게 삶과 죽음은 뗄 수 없는 짝꿍인데 죽음의 상실감을 덜 힘들게 겪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세상에 질서랄까, 운명이랄까 뭐라고 분명한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여하튼 그런 것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문장 씩, 한 챕터 씩 꼼꼼하게 읽어가면서 아이들을 잃은 자바카라도, 상실감도 서서히 달래지는 듯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종교, 과학, 철학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서로가 등을 맞붙이고 있는 관계들이었구나.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지구 밖에 있던 별의 충돌의 결과로 시작되었고, 이 땅에서 죽어간 모든 것들은 이 안에서 순환되어 시간을 거쳐 다시 새로운 무엇으로 시작이 되고, 아주 죽어간 것 중 아주 일부만 아주 낮은 확률로 다시 우주로 날아가 별이 될 수 있는 것이구나. 이것이 윤회이고, 해탈이고, 천국일 수 있겠구나. 그리고 우리는 이런 순환과 질서를 살아가는 찰나의 존재들이구나. 내가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내 곁을 떠나갈지라도 그것들은 자연의 순환과 질서 속에서 단지 모습을 달리 한 채 나의 공간 안에 함께 있는 것이겠구나. 이런 것이 허황된 믿음이 아니라 인간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반복되어 온 질서의 한 부분으로 실존하는 순환의 연속이구나를 깨달았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게 아니듯 내 눈에 보이는 존재는 단지 그 존재만이 아니겠구나.


유채가 쉬고 있는 자리에는 에버골드를 심었다. 얼굴이 큰 겹꽃이 얼마나 풍성하게 오랜 기간 피어나는지 모른다. 꽃이 주렁주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수다스럽게 봄부터 가을까지 노랑노랑하다. 자리를 잘 잡고 성장하기 시작한 에버 골드는 재작년부터는 봉오리가 너무 많이 생겨서 꽃이 만개하면 바로 잘라내기 바쁘다. 개화를 대기하고 있는 봉오리들이 통통하게 물이 올라서 세상 구경을 재촉하느라 왁자지껄 하다. 그 가운데 서 있다 보면 꽃을 정리하면서도 성질 급한 봉오리들에게 "아니, 차분하게 순서 좀 지키라고!" 하며 잔소리를 해대게 된다. 반면에 노른자가 쉬는 자리에 심은 서프라이즈는 자리가 잘 안 맞았는지 원래 개체가 좀 약한 건지 꽃을 시원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겨우 나도 여기 있어라고 하듯 약한 꽃 한 두 송이를 시원치 않게 내주고는 꽃을 피우느라 힘을 다 했는지 줄기마저 썩어버리기 일쑤였다. 장미가 간 건가 다시 튼튼한 애들 심어야 하나 싶으면 뿌리로부터 흙을 뚫고 나온 약한 줄기가 "죽진 않았어"하고 생존 신고를 했다. 그러면서도 병치레도 많았다. 멀쩡히 있다가 잎이 까매지는 흑점병이 생기질 않나, 흰 가루병이 생기질 않나. 주변에 다른 애들은 멀쩡한데 혼자서만 유독 예민하게 신경을 쓰이게 했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 정원의 겨울을 준비하면서 에버골드는 아치를 태워서 키우기로 하고, 서프라이즈는 주변 환경을 오롯이 서프라이즈에 맞게 정비를 하기로 결심을 했다. 돌아오는 봄에는 이 공간이 노란빛으로 가득하게 만들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맞이한 2026년의 5월.

유채도, 노른자도 가장 예쁜 노란 깃을 달고 엄마를 보러 왔다. 추운 겨울을 지내고 왔으니 엄마가 준비한 놀이방에서 신나게 놀다 가렴. 사랑해, 내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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