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원의 주인은 고양이

나는 그녀를 콤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by백경화

새콤이가 몇 살인지 잘 모른다. 내가 봐 온 기간이 한 9년 되니까 아홉 살인가 보다 할 뿐이다. 새콤이는 아홉 살 정도 된 삼색이 고양이이다. 그리고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 산 주민이기도 하다. 많은 출산을 했지만 현재는 혼자 살아남은 강한 고양이이기도 하다. 잠을 자다가 우연히 내가 지나가는 모습만 봐도 졸졸졸 나와서 다리에 머리를 들이대고, 골골 노래를 부르는 다정한 고양이이다.

새콤이는 6년 전 네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다섯 마리로 시작을 해서 여섯 마리가 되었다가 현재는 콤 사모님 혼자만 정원을 지키고 있다. 동네에 전염된 허피스를 심하게 앓기도 했다. 보는 사람마다 임신한 거 아니냐고 할 만큼 퉁퉁했던 몸매도 지금은 많이 날씬해졌다. 작년에는 늦여름에 마지막 남은 아들을 먼저 보냈고, 겨울에는 허피스 예방 접종을 하러 갔다가 저체온증 증세가 보인다고 해서 수액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올봄엔 언덕 기슭에서 나를 보면서 꼼짝도 안 한 채 야옹거리기만 하는데 혹시 치매 증상으로 집으로 오는 방법을 잃은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덜컥 들어서 하던 일을 멈추고 언덕 기슭을 기어올라서 콤이를 안고 온 적도 있다. 바로 전에는 발바닥에 염증이 생겨서 한참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제는 부디 집 고양이로 사는 게 어떠냐 싶어 실내 생활을 적응시키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적어도 겨울철 잠만이라도 실내에서 자는 걸 적응시켜보려고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평탄하지 않는 바깥 생활을 하면서도 실내 고양이가 되는 것은 그렇게도 싫은 걸까?


초봄 즈음에 우리 집 정원에 오랜만에 '곱게 죽은 생쥐'가 발견이 됐다. 작년 늦여름 콤 사모님의 외동아들 징기가 고양이 별로 간 이후 없던 일인데 이건 도대체 누구의 소행일까? 콤 사모님은 이제 사냥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을 한 건가? 그리고 며칠 뒤에 또 '곱게 죽은 생쥐'가 발견되고, 또 며칠 뒤에는 오목눈이가 고운 자태로 누워 있었다. 아무리 콤 사모님이 사냥을 재개했다 할지라고 이렇게 단기간에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무렵 앞집 재색이가 우리 집 마당에서 약간 긴장한 채 앉아있는 것이 포착됐다.

우리 동네는 산밑 자락에 조성된 단지로 캣맘 캣대디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곳이다. 우리 집도 콤 패밀리를 시작으로 콤 사모님의 두 남편이라고 추정되는 수컷 고등어 두 마리도 살았었고, 유난히 얼굴이 크고 순둥한 치즈도 살았다. 징기가 있을 때에는 낯선 고양이에 대해 경계를 했지만 결국에는 서로 어울려서 잘 지냈다. 그러다가 징기가 가고 난 후 새콤이는 자기의 공간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게 거추장스럽고 싫은지 징기가 있을 때와는 다르게 다른 고양이들의 출입에 매우 날카롭다. 그래서 그런지 새콤이 눈치를 살피면서 밥만 슬쩍 먹고 도망 다니던 체다는 어느 날 한 번 내게 애정을 보이더니 그다음 날부터는 언덕 밑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앞집에 사는 재색이는 몇 달 동안이나 새콤이의 눈치를 보며 우리 집을 드나드는데도 새콤이는 아주 질색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재색이의 징징 우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이어 새콤이의 날카로운 경계 소리가 들리더니 바쁘게 재색이가 움직였고. 한참을 고요했다가 또 같은 상황의 반복. 뭔 일인가 싶어 나갔다가 곱게 누워 있는 생쥐의 비밀을 드디어 알게 됐다. 이 녀석이 새콤이에게 선물을 주려고 왔다가 새콤이가 당장 꺼지라고 위협을 하면 도망을 쳐서 상황을 주시하고, 괜찮나 싶으면 다시 쥐를 물고 와서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반복됐던 것 같다. 그런데 이날은 유독 재색이가 물러날 기세가 없었는지 새콤이는 짜증이 날 때까지 났고, 결국 새콤이는 그날 "아오, 지겨운 녀석, 그냥 내가 나간다!" 하듯이 하루 종일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때 같으면 잠깐 동네 마실을 나갔더라도 밥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면 어디서든 느릿느릿 나타났는데 그날은 아무리 불러도 나타나지 않았더랬다.

그러다가 우연히 정원에서 집 밖을 보는데 콤 사모님이 쫓아내서 다른 집으로 거처를 옮긴 체다와 한참을 마주 보더니 아주 흥미롭게 체다의 뒤를 따라갔고, 결국에는 살고 있는 집주인 차 밑으로 숨어 들어간 체다를 그 집 마당까지 쫓아 들어가서 그 앞에 편하게 누워서 체다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새콤아, 밥 먹으러 와. 새콤아!"하고 불러도 고개만 돌려서 나를 두어 번 확인만 할 뿐, 여전히 체다만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 중에 선물까지 찾아들고 온 재색이는 오매불망 새콤이만 기다리려는지 콤 사모님 밥그릇에 채워놓은 밥을 혼자 싹싹 해치우고는 우리 집 정원 한적한 곳, 자기 자리라고 정해 놓은 곳에서 망중한을 즐기더란 말이다. 재색이가 살고 있는 집의 이웃이 "우리 재색이는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아요."라고 하시는데 "재색이 며칠 전부터 저희 집에 있어요."라고 하면서 그동안 사연의 설을 풀었다.


그리고 며칠 전 아침. 낯익은 소리가 또 들리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른 점은 새콤이와 재색이가 약 네댓 발자국 정도의 거리를 주고 대치하고 있었다. 둘의 사이의 긴장감. 그리고 재색이의 징징거리는 소리와 새콤이의 경계성 하이톤이 맞부딪히는 상황. 사실 재색이는 우리 집 정원의 가운데까지 들어온 적은 없었다. 항상 정원의 경계의 위치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다시 말하면 언제든지 밖으로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했는데 그날은 다른 날과 다른 재색이의 대범한 행보를 볼 수 있었다. 저거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나가봤더니 둘 다 나의 등장을 확인. 재색이는 살짝 뒷걸음질을 쳤고, 새콤이는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내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내게 오던 콤이가 갑자기 유턴을 해서 재색이 쪽으로 걸음을 옮겨서 위협의 "하악!", 스프레이 '치지직'을 하고는 우아한 발걸음으로 내게 와서 몸을 비볐다. 이것은 무슨 상황인가........ 이날 재색이는 상처 하나 없는 곤줄박이를 물어왔다. 이 정도면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하고는 의기양양하게 정원 가운데까지 들어왔나 보다. 그런데 우리 콤 사모님은 그게 너무 싫었던 거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 정도가 되려면 곤줄박이가 아니라 참치 추르 정도는 되어야 했나 보다. 재색이의 슬픈 곤줄박이는 눈향나무가 만든 푹신한 쿠션 위에 고이 누워 있다가 남편이 좋은 곳으로 보내줬다. 그리고 새콤이는 역시 저녁밥을 먹을 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체다랑 데이트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우리 집 바로 밑 풀밭에서 어슬렁거리며 노는 체다의 모습을 보긴 했다.


우리 사모님이 본인의 왕국에서 즐겁게 지내다가 질병도 사고도 아닌 늙어서 죽기를. 고양이로서의 위엄을 지키느라 마지막 순간 왕국을 버리려고 하지 말고 오랜 기간 함께 왕국을 가꾼 친구에게 마지막을 함께 할 아량을 보여주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