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 팜플로나 도착과 연박
기타리스트들(전편 참조)을 떠나 팜플로나까지는 마지막 절반 정도가 시내를 걷는 길이었다. 트리니티 다리(Trinity Bridge)를 건너면서부터다. 다리를 건너고 벤치에 앉아 '바셀린 타임'을 갖고 난 후 아내는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트레킹화는 돌길, 물길, 진흙길을 끄덕 없이 걷게 해 주는 든든함이 있지만 길이 조금이라도 고분고분해지면 1초라도 서둘러 던져 버리고 싶은 답답함도 있다. 보통 배낭 바깥쪽 맨 아래에 슬리퍼를 매달고 다니게 되는데, 언제든 훌러덩 트레킹화와 두 겹의 양말을 벗고 빠르게 맨발이 되고 싶은 욕망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팜플로나는 황소를 풀어놓고 골목길에서 경주하는 것으로 유명한 '산 페르민 축제'의 도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이 축제와 투우, 음악과 춤과 술자리에 매료돼 아홉 번이나 이 축제를 찾으며 그의 첫 성공작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썼다고 한다. '요새도시'로도 유명한데, 순례자들에게는 사실 프랑스길에서 처음 만나는 큰 도시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이렇게 큰 도시를 만나면, 보통은 하루 정도를 더 쉬면서 잠시나마 '관광객 모드'로 바뀐다. 더구나 수비리에 이어 팜플로나에서도 알베르게를 잡지 못하고 작은 호텔 같은 곳에서 묵었기 때문에, 이튿날은 원래 목표로 했고, 팜플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예수 마리아 알베르게'에 일찌감치 줄을 서서 침대를 배정받았다. 그리고 하루를 쉬면서 중세의 도시를 거닐었다.
도시 어딘가에 아시안 마켓이나 대형 마트가 있고, 거기엔 한국라면이 있다. 고추장, 햇반, 김과 김치가 있는 곳도 있다. 라면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한국에 살면서도 그리운 게 라면인데, 그게 사나흘이든 한두 달이든 해외여행 중에서 라면이 안 그리울 리가 있겠는가! 물론 이 감정을 라면 안 드시는 분들에게까지 강요하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레온쯤에서 만난 아저씨는 "나는 뭐 한국에서도 라면을 잘 안 먹어서..." 하시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라면이 그 어느 국물에 들어가 있든 환영하는 편이라, 알베르게에 들어가자마자 감사한 마음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은 어느 국물에 들어있든 환영하는 편이라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에, 한동안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겠다고 덤볐다. 6개월이 지나도 '3일 차 도시'인 팜플로나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깨너머로 내 작업을 보던 아내는 말했다. "아직도 팜플로나밖에 못 갔어?" 내가 무슨 헤밍웨이도 아니고 어찌하여 팜플로나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아예 잊었고, 차라리 내 몸으로 다시 그곳에 가서 800킬로미터를 걸으며 새로운 버전의 기록을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오랫동안의 칩거.... 그리고 다시 1년이 더 지난 요즘, 아내의 목소리가 어깨너머로 들려온다. "아직도 팜플로나야?" 사실은 팜플로나 얘기를 한 꼭지 더 쓰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비석에 이렇게 써야 할지도 모른다.
평생 팜플로나까지밖에 못 간 놈
그래서 아마도, 다음은 아마도,
팜플로나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까지 간 얘기여야 할 것 같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