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사업은 종류가 하도 많아서, 기업이 받고 싶은 지원 사업을 발견해도 이미 모집 기간이 지난 경우가 빈번하다. 기업이 모든 지원 사업을 다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여기저기 흩어진 508개 사업을 한 곳에 모은 웹사이트가 있다. 바로 K-스타트업이라는 통합공고 플랫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사업이 다 등록된 것이 아니다. 지자체 사업이나 다양한 기관 중에는 등록이 안 되거나, 하지 못한 것도 많아서다.
그래서 지역이나 기관에서도 기업에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따로 안내서나 가이드를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지원 사업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중에, 공고된 문서를 기준으로 만드니 철 지난 정보도 많다. 기업은 플랫폼을 보고, 가이드도 보고, 지자체나 기관 홈페이지도 봐야 하니, 지원 사업을 찾다가 오히려 혼란이 가중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가이드북은 뒷북이 되곤 한다.
왜 이렇게 복잡할까? 단순히 종류가 많아서일까. 창업과 기업에 대한 지원 사업을 잘 살펴보면, 여러 축들이 교차하며 짜여 있다. 대략 살펴보면, 첫째 축은 생애주기나 업력이다. 예비(창업 전), 초기(3년 이내), 도약(3~7년), 스케일업과 글로벌이다. 둘째 축은 대상이나 자격이다. 나이(중학생/대학생·청년 29세/39세·중장년 40세·시니어), 성별(여성), 상태(예비·재도전/폐업), 소속(대학·연구실). 사람의 속성으로 나눠지는 가로축이다. 셋째 축은 분야와 기술로 AI, 딥테크, 그린, 관광, 산림, 스포츠, 소셜벤처…. 정권의 유행 따라 생기기도 한다. 넷째 축은 주관 부처와 기관이다. 중기부, 과기부, 문체부, 산림청, 지자체, 대학. 비슷한 기업지원인데 부처마다 자기 사업을 만든다. 그리고 다섯째 축은 지원 방식과 금액도 있다. 현금 보조금(사업화 자금), 연구개발, 실증, 상용화, 융자, 투자 연계(팁스), 공간(입주), 교육·멘토링, 바우처. 그리고 금액대(200만~2억?)도 있다.
대충 뽑아도 5개 축, 5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3차원의 우리가 5차원의 세계를 본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이 다섯 축이 교차하면, 그 조합이 폭발한다. “중기부가, 청년을, 초기 단계에, AI 분야 실증으로, 현금 5천만 원을 주는” 사업 하나가 있으면, 그 옆에 “지자체가, 여성을, 예비 단계에, 관광 분야로, 공간 지원하는” 사업이 또 있는 것이다. 5개 중에 하나만 바꿔도 새로운 사업이 된다. 이러면 거의 무한대로 신규 사업을 조합해 낼 수 있다.
한때, 나는 이러한 사업의 안내자를 해보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하는 지원 사업이 기업의 성장을 돕고 있다고 굳게 믿으며, 지원기업이 이 다양한 트랙을 잘 타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이 많은 사업을 연계한 기업의 성장 로드맵을 만들어 안내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 많은 사업을 정리해 보았었다. 그때, 이 여러 지원 사업이 마치 서울 지하철 노선도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창업자에게 어느 지원 사업 역에서 출발하고 환승해 나가, 유니콘 역에 도달하도록 노선도를 그려보자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나는 창업이라는 여정을 노선도에 따라 안내하는 사람인 것이다.
예를 들어, 아직 창업하지 않은 창업 희망 손님을 내가 만난다.
“안내해 드릴 출발역은 예비창업패키지입니다. 사업자등록도, 법인 설립도 하지 않은 예비창업자여야 평균 5천만 원, 많으면 1억 원을 사업화 자금을 받습니다. 자, 이 역에서 돈을 받았으면, 사업자등록을 합니다. 그리고 초기창업패키지 역으로 가십시오. 업력 3년 이내에 환승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지원받은 돈으로는 여기서는 제품을 고도화하는데, 곧 업력이 3년을 넘기니 창업도약패키지로 환승을 준비한다고 생각하십시오. 3년 초과 7년 이내가 타는 열차니까요. 지원금으로 연명하니 매출이 정체되고, 사업 모델이 한계에 부딪힐 겁니다. 그러면 사업 모델 재설계 프로그램이라는 여러 역을 거치면 됩니다.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최신 기술일수록 선정되거나 신규 사업이 생길 수 있으니 될 수 있으면 요즘 유행하는 기술을 제안서에 넣으십시오. 그러면 초격차 스타트업 프로젝트로 갈아탈 수도 있습니다. 딥테크만 태우는 열차니까 과감하게 피보팅을 합시다.
투자를 받고 싶습니까? 그러면 팁스 역으로 갑시다. 예비창업자 신분으로 여기까지 왔다면, 팁스 협약 과정에서 법인을 새로 세워야 합니다. 어떤 고객님들은 다양한 지원을 받기 위해 개인사업자, 법인사업자, 공동대표, 이종 창업, 동종 창업, 지역법인 등 다양한 사업자를 만듭니다. 다양한 열차의 티켓을 확보하여 보다 많은 지원을 받는 요령이 있습니다. 다만 또 이걸 가로막는 제한이 있을 수도 있으니 유의합니다.
만약 나이가 젊으면 더 좋은 지선도 많습니다. 만 39세 이하라면 청년창업사관학교 역으로 갈 수 있습니다. 창업의 전 과정을 패키지로 한 방에 보내주는, 가장 유명한 노선입니다. 아, 만 29세 이하이고 생애 처음 도전하는 것이라면 생애 최초 청년창업 지원으로 시작하는 편이 낫습니다. 혹시 중학생 자녀가 있다면 차세대영재기업인 육성 사업이 있고, 대학생이라면 학생 창업팀 유망 300이 있습니다. 대학생 하니 생각난 건데, 대학이 운영하는 창업중심대학이라는 노선도 있는데 이것은 대학생뿐만 아니라 누구나 지원받을 수 있으니 오해하면 안 됩니다.
창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습니까? IP 디딤돌이라는 역으로 가서 지원받으십시오. 그러면 그 아이디어를 지식재산으로 다듬어 다음 역까지 데려다줍니다. 아, 나이가 들어 청년 자격을 잃으셔서 당황스럽다고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십시오. 모든 노선을 연결해 보면, 종점이 없는 순환 노선이라 다른 자격으로 지원받으면 되니까. 만 40세가 넘으면 중장년 창업지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에게는 따로 여성창업 액셀러레이팅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몰라 결국 폐업을 하셨다고요? 오히려 축하드립니다. 이제 재도전성공패키지 지원을 받을 자격을 갖추게 되셨습니다. 실패해 본 사람만 탈 수 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경쟁하기 쉬운 자격을 갖게 되셨습니다. 아무 걱정 마십시오. 재창업자금까지 연결하면, 회사가 망해도, 사업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안내하는 상상을 했다. 이 노선도를 잘 익히면, 지원 사업만으로 반백 년을 버티는 회사를 설계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비창업으로 시작해서 초기와 도약을 거치고, 팁스로 투자받고, 청년에서 중장년으로 갈아타고, 망하면 재도전으로 부활하고. 우리 회사 이름은 ‘㈜이모탈’이나 ‘언데드㈜’ 정도로 해도 좋겠다. 내가 20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승객이 되어 지하철을 타고 모든 트랙을 다 돌아볼 텐데. 아쉽게도 20대로 되돌려주는 지원 사업만은 없다.
그래서 승객 대신 지원 사업 안내자를 해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모든 노선을 다 타는 승객 기업이 되려면, 기업은 사업자등록증과 법인을 끊임없이 추가하고, 사업에 따라 계속 다른 산업의 기술을 개발하고 도입하여 피보팅을 해야 한다. 그러면 정작 실제로 팔리는 제품과 서비스는 없을 것이다. 수익을 위해 제품을 시장에 파는 그것이 아니라, 지원 사업을 받기 위해 매출 실적을 만드는 기업이 된다. 기업들끼리 뭉쳐 가짜 매출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실적 삼아 지원 사업을 받는 끔찍한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내가 안내한 이 노선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왜일까? 열차 노선대로 따라가며 사업을 따내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일까?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 지원 사업 노선이 그리스 신화의 프로테우스처럼 모습이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 변화를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청년창업사관학교는 2011년부터 16년간 운영한 사업이다. 토스를 만든 이승건 대표가 여기서 나왔고, 직방을 만든 안성우 대표도 여기서 나왔다. 지금까지 1만 명에 가까운 청년 창업자를 배출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창업 사업 중의 하나다. 이 사업이 내년에 사라진다. 입주율 8%로, 넘쳐나는 창업 공간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업과 관련된 글로벌청년창업사관학교와 딥테크청년창업사관학교도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재도전성공학교(기존 재도전성공패키지와는 다름)라는 새 사업이 들어선다. 첫 창업을 돕던 공간이, 망한 창업자의 재기를 돕는 공간으로 성격이 바뀐다.
모두의 창업이라는 사업 때문에 청년창업사관학교가 사라지는 것이란 말도 들린다. 아이디어가 있는 온 국민을 지원하려니 토스와 직방의 인큐베이팅은 철거된다. 원래 정부 사업은 일몰 되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모두의 창업, 재도전성공학교, 초기창업패키지 투자연계형, 문체부의 관광 창업 프로그램, 산림청의 청년 산림창업, 딥테크의 해외 진출을 돕는다는 글로벌 창업허브. 과기부는 AX혁신기업 개발이라는 새로운 지원 사업을 만들었다. 이름이 바뀐 것도 있는데, 창업선도대학은 창업중심대학이 되었으며, 실험실 특화형은 규모만 바뀌며 아직 남아있다.
그런데 이것은 눈에 띄는 몇 개의 사업일 뿐이다. 주요 사업만을 봐도 저마다 생기고, 사라지고, 쪼개지고, 합쳐지고, 이름을 바꾼다. 오죽하면 정부의 통합 안내문에도 주의 사항으로 사업의 명칭과 포함 여부는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 지원 전에 반드시 원문을 다시 확인하라고 한다. 수많은 지원 사업 노선과 역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심지어 우리가 모르는 온갖 노선과 역이 숨어 있다. 그래서 찾아내면 없어지고, 때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지원받은 기업도 본인이 무슨 사업을 지원받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결국 안내자가 되려던 나는 길을 잃었다. 그렇게 나는 지원 사업의 안내자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원 사업 노선이, 계속 바뀌기까지 하는 이유는 뭘까? 수많은 이유와 사연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원인은 단순하다. 바로 기존 열차와 노선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편을 누구도 해결할 수 없다. 전체의 그림을 보며 조정해야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므로 이 노선도는 갈수록 복잡해진다.
생각해 보라. 그 5차원의 영역을. 기업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생애주기와 연령부터 성별, 지역 등 다양한 지원 대상, 어렵고 생소한 기술, 주관 부처 내부의 구조와 그 관계, 사업의 성격을 결정하는 지원 방식과 금액. 잘못 손대면 불공정이 되고, 특혜시비가 붙는다. 예산을 낭비할 수도 있다. 부정과 도덕적 해이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게다가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의 수혜와 밥줄이 매여 있다. 이 세상에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변수를 고려하여 열차와 노선을 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승객들이 얼마나 불편할까? 또 열차 승무원들과 역 관계자들은 또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래서 계속 불편을 호소하고, 개선한다. 그런데 그게 더 복잡하고 더 불편하게 한다. 하나를 개선하면 두 개의 혼란이 만들어진다. 지원 사업 열차에서 누군가는 너무 춥거나 너무 덥다. 누군가에게 공기가 탁하고 자리가 지저분하다. 옆자리 승객이 시끄럽다. 환승이 헷갈리고, 내릴 역을 지나친다.
그러면 승객은 가만히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니 불평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 탈락한 승객은 왜 나는 못 타느냐 민원을 넣어야, 다음에라도 자격이 넓어진다. 그래서 승객이 춥다고 하면 그 칸을 데우고, 누군가 덥다고 하면 에어컨을 튼다. 수요가 많다며 새 열차를 늘린다. 떨어뜨린 심사위원을 지목해 불공정과 전문성을 문제 삼으면, 다음부터 그 심사위원은 몸을 사리거나 배제된다. 지역에서는 특정 지원을 끊으려고 할 때, 기업은 다른 지역으로 옮기겠다 하며 지자체가 매달리게 한다. 이 지하철은 점점 좁고 불편해진다. 누구도 만족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지하철은 사고가 나면 안 된다. 열차가 멈추거나, 승객이 중간에 내려버리거나, 탈선하면, 승객은 피해자가 되고, 운영자의 실패가 된다. 그러니 운영자는 승객이 사고만 치지 말고 종점까지 조용히 가주기를 빈다. 게다가 운영자에게는 실적이 필요하다. 열차는 목적지까지 잘 달려야 하고, 승객은 만족해야 하고, 성공한 기업이라는 성과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그 성과를 만들어주는 것은 승객이다. 승객이 잘돼주지 않으면 실적이 없다. 성과의 열쇠가 승객에게 달려 있으니, 운영자는 승객의 눈치를 본다.
그렇다. 민원은 참 무섭다. 승객의 민원은 운영자를 일 못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일 못하는 주관기관에는 다음 사업이 없을 수도 있다. 사업 운영을 맡아야 예산을 받고, 조직이 유지된다. 여기에 기여하지 못하는 민원 야기자는 업무에서 배제된다. 그리고 승객은 이 사실을 안다.
이 복잡한 노선도, 모든 노선이 다 있지도 않은 숨은 열차, 나타났다 사라지고 이름을 바꾸는 역이 있고, 말 많은 승객과 눈치 보는 승무원들. 뭔가 해결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내가 누차 말하지만 생각해 보라.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 가야 할 곳은 시장인데, 왜 지원안에서만 돌고 돌아 제자리에서 확장해 나가는, 목적 없는 이 노선을 만들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