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후불제 인생I
나를 싼 가격에 많이 파는 것도 지혜라고 보았다. 나눌 때는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게 미덕이라 배웠다. 그래서 조금씩 덤을 얹어 헐값으로 파는 게 아깝지가 않았다. 말 한마디, 시간 한 조각, 감정 한 움큼을 덧붙였다. 이미 손해라고 느끼기 전에, 익숙해진 태도였다. 그렇게 주고 나면 마음 한켠에는 희망이 생겨났다.
덤을 얻어주는 것은 처음엔 편하다. 갈등을 피하고, 착한 사람이란 이름을 얻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 착함이 습관이 될 때였다. 사람들은 점점 나의 시간과 노력을 당연하게 사용했다. 고맙다는 말은 줄어들고, 점차 요구만 늘어갔다. 나는 여전히 웃으며 응했지만, 마음은 마모되어 갔다.
모두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처음에는 값을 낮추어 불러도, 언젠가는 고가의 제값을 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나를 싸게 내놓는 법부터 배웠다. 부탁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무리한 요구에도 “괜찮다”는 말부터 먼저 꺼냈다. 나의 시간과 노력은 대가 없이 쓰기에 편한 사람일 뿐이었다. 나는 바쁘게 움직였고, 많은 일을 해내기도 했다. 관계의 회전율은 높았으나, 정작 영혼의 곳간은 늘 허기졌다.
내 삶은 박리다매(薄利多賣)의 상술에 저당 잡혀 있었다. 또 다른 다이소였다. 가격 균일가 정바카라을 통해 마진을 최소화하고, 압도적인 판매량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과 같았다. 단가를 낮추고 회전율을 높이는 형태였다. 얇은 이익이라도 많이 쌓아놓으면, 결국 남는 게 있다고 보았다. 물론 나도 그렇게 믿었다. 잠을 줄이고, 마음을 나누고, 감정을 갈아 넣으며 삶을 채워가는 방식이었다.
그럴수록 요청은 늘어났다. 하지만 경계는 흐려졌다. 나의 기준은 사라지고 타인의 편의가 우선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팔아넘기면서도, 이것이 인생을 배우는 과정이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퍼주었으나, 돌아온 것은 사용 후 폐기해도 되는 사람 같았다. 정치판은 물론, 대학과 공공기관에서도 똑같았다. 성취도, 존중도, 스스로에 대한 신뢰도 희미해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찾았지만, 그 누구도 나의 부재를 걱정하지 않았다.
사실 나를 헐값에 내놓은 건 나 자신이었다. 값이 싸니 소중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나를 대폭 할인 품목으로 내놓으면, 사람들은 내 가치보다 가격만을 볼 뿐이었다. 다이소와 같은 판매방식은 상품에나 어울리는 것이지, 사람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관계의 거래를 멈추어 세웠다. 대신 적정 기준을 세우고, 헐값에 요구하는 일들은 하나둘 사양하기 시작했다. 잠시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내 삶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제 내 삶의 매대에서 ‘할인’과 ‘덤’이라는 라벨을 떼어내기로 했다. 많이 불리지 않아도, 자주 찾지 않아도 된다. 내 삶은 흥정의 대상도 아니고, 급히 소진할 물건도 아니다. 내 삶이 싸게 팔리지 않으려면, 조금은 까칠하고 냉정해도 괜찮다. 나는 이미 충분히 제값을 받을 만큼 값진 사람임을, 반드시 온몸으로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