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후불제 인생I
내 삶을 도마 위에 올리고 난도질하듯이 분류했던 적이 있다. 공공기관과 대학에 낼 지원서를 쓰면서, 내 삶의 흔적으로 두 갈래로 나누어 보았다. 그것은 한 줄의 스펙이 되는 것과 한 줄도 못되는 무용한 것이었다. 쉽게 말해,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쓸 수 있는 것과 이력서에 쓸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분류를 마친 후, 다시 돌아본 내 삶은 무척이나 초라했다. 이력서에 쓸 수 없는 시간들, 자랑할 수 없는 선택들, 설명하면 변명처럼 들리는 부끄러움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엔 초라하기만 했다. 열심히 살았다고 말하기엔 결과가 너무 없었고, 쉬었다고 말하기엔 마음이 너무 지쳐 있었다. 그 경계선 위에서, 나는 늘 미숙한 아이처럼 서성거렸다.
무가치하게 분류된 경험들은 조용했다. 실패라고 부르기엔 부족했고, 성공이라 말하기엔 애매했다. 그저 평범한 삶의 굴레에서 지나온 시간들이었다. 주로 새벽까지 혼자 글을 썼던 시간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성실함, 이유 없이 무너졌던 인간관계. 사실 나는 ‘가치 없음’이라고 분류된 것들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이력서 속에는, 내가 배운 것들을 증명할 수 있는 언어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남들처럼 뚜렷한 한 줄의 성취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거의 모든 경험들을 헛수고로 규정해버렸다.
문득 잔인한 의혹에 잠겨버렸다. 만약 나의 경험들이 전부 무가치하다면, 나는 무엇을 지팡이처럼 의지하고 지금까지 버텨온 걸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삶이라면, 왜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온 걸까. 그 질문 앞에 서 있을 때, 잔혹할 만큼 부끄러웠다.
내가 무가치하게 분류했던 경험들이 가장 많은 곳에서 내 삶을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패를 선택한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 덕분에, 지금도 새벽마다 글을 쓰는 법을 익혔다. 무가치하게 분류했던 것은 내 삶의 밑바닥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가치한 삶의 경험들을 달리 이해한다. 세상에서 그 값을 매기지 않았을 뿐이지, 내 삶 속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떳떳이 내세울 수는 없지만, 나를 지켜내기 위한 충분한 자산이었다. 어쩌면 무가치하게 분류한 삶의 경험이란, 평범한 경험들로 채워져 있기에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장 현금화할 수 없는 공백의 채권이지만, 나를 지켜낸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