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후불제 인생I
사람들을 만나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쉽게 만났지만, 마음에서 그 관계를 내려놓지 못한다. 이미 공들인 시간은 매몰비용이 되었고, 쏟아부은 감정은 미련이라는 이름으로 발목을 붙잡았다. 마음이 떠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관계를 유지했다.
마치 고장 난 물건을 계속 쓰듯이, 손에서 놓아버리기엔 너무 많은 날들이 얽혀 있었다.
연락이 오면 반사적으로 답장했고,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열었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니까”, 또는“나만 참으면 괜찮겠지”라는 말로 설득했다. 나를 깎아내리면서도 끝내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낭비형 인간관계는 처음부터 낭비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다가 올때는 친절과 공감,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점점 한쪽으로 기울었다. 감정의 무게는 늘 내 쪽으로 쏠렸고, 상대는 그 기울기를 당연하게 여겼다.
나 또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었다. 신생 연구기관에서 일할 때였다. 기득권 직원들과의 첨예한 갈등 구조였다. 물과 기름이었다. 때마다 전문직 연구원을 뽑아놓고 평가했다. 그 모습이 보기 싫다며, 기회만 되면 하나둘 이직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존중받아야 할 전문성이 훼손되고 감정만 상했기 때문이다.
기회만 되면 전문직들은 이직했다. 솔직히 일부 직원들과는 감정이 상한 탓에 불편했고 대화를 나누면 더 피곤했다. 커다란 불신의 장벽을 쌓아 놓고 살았다. 웃는 날보다 허탈 웃음을 머금은 채, 침묵하고 돌아온 날이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관계를 놓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잠시만 먹고 사는 일 때문에 참자. 빨리 떠나면 되겠지.”
결정적인 순간은 아주 낯설게 찾아왔다. 이것저것 다양한 글을 써달라고 하고, 공공연히 가로채는 경우도 있었다. 전형적인 갑질관계였다. 함께하면 좋아지는 게 아니라, 함께 할수록 더 악화되는 감정의 악순환 고리가 작동했다.
매 순간 영혼이 고갈되었다. 말수는 줄어들었고, 억지 웃음조차 사치스러웠다. 이런 관계는 소모였고, 애정이 아니라 낭비였다. 그제야 처음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놓아주기로 마음 먹었다. 더 이상 나를 소모하지 않고 떠나기로 다짐했다. 그곳을 떠나던 날, 오히려 숨통이 트였다. 비워낸 자리에는 조용한 평온이 스며들었다.
낭비형 인간관계는 상대보다는, 내 삶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이해라는 이름으로 나를 지우고, 배려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감추는 순간, 그 상황을 묵묵히 견뎌내야 한다.
관계는 주고받는 것이지, 무작정 견디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아야만 했다. 계산하지 않고 관계를 내려놓을 때, 삶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악화된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었다. 나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선택 이후에야, 내 삶은 다시 제대로 된 관계를 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