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도 지장 없는 재고 거리들

I후불제 인생I

by기안장


살다보면 덜어낼 것과 쌓아갈 것이 생겨난다. 한가한 휴일날이었다. 삶이 너무 빽빽했다. 휴식은 늘 부족했고, 해야 할 일은 줄지 않았다. 숨 쉴 틈조차 없어 보였다. 왜 이렇게 과잉된 생활을 살고 있는지, 그 이유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창고 속의 먼지가 덮힌 것과 같은 일거리들, 언젠가 쓸 거라며 미뤄 둔 관계들, 버리지 못한 인연들까지. 생활 속의 시간 관리는 포화 상태였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해서 더 채우려고 했다. 더 잘 살기 위한 것보다, 비워 내는 게 두려웠다. 재고 정리는 뒷전이었다. 보관해 놓으면 언젠가는 쓸모 있고, 버리면 또다시 필요해질 것만 같았다.

일거리도 같았다. 이미 끝난 일들도 마음 한켠에 남겨 놓았고, 지나간 일들도 삶의 자취라는 명목으로 보관해 놓았다.


이렇게 쌓아 둔 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졌다. 꺼내 쓰지도 못하면서 자리를 차지했고,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공간마저 막혀버렸다. 내 삶은 앞을 향해 더 나아가고 싶은데, 과거의 재고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렀다.

과부하가 걸리면, 이유 없이 지치기만 했다. 해야 일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막혔다. 나는 불필요한 것까지, 너무 많은 것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든, 일거리든 외면하지 못하고 대부분 수용하던 상태였다. 내 삶이라는 선반은 과잉된 무게에 이미 휘어져 있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를 위험한 상태를 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너무 지쳐 있을 때, 처음으로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구별했다. 지금 나에게 맞지 않는 목표, 의무처럼 엮인 관계들, 덜어내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것만 같은 일거리들. 오랫동안 품어온 미련 탓인지, 생활 속의 군더더기를 떼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완강했다.

하지만 하나둘 버려도, 내 삶에는 힘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비우고 비워도 전혀 현실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었다.

재고 정리는 포기 상태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나는 요즘도 재고 정리를 한다. 무언가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좀 더 가볍게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쥐고 가는 삶보다, 필요한 것만 들고 더 멀리 걸어가기 위해서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마음의 선반을 닦고, 남겨둘 것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이만큼이면 충분하다고, 이제는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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